[4.15 총선특집] 코로나가 바꾼 선거운동 풍경

지난 2일 저녁 6시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경의중앙선 덕소역 1번 출구 앞. 파란색 모자와 점퍼 차림에 커다란 손팻말을 든 선거운동원 8명이 옆 사람과 1미터(m) 이상 간격을 두고 두 줄로 마주 서 있다. 하얀 마스크와 파란 장갑에도 각각 숫자 ‘1’을 써 넣은 이들은 남양주병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 김용민(43) 후보 운동원들이다. 전철역 출구 건너 거리에서는 김 후보가 1톤(t)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에 자원봉사자 2명과 함께 올라 연설을 하고 있었다. 유세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음악과 춤은 없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이따금씩 역에서 나오는 행인에게 명함을 건네던 캠프 관계자는 “과거 선거방식이 완전히 깨졌다”고 말했다. 

음악·춤 없고 운동원들도 ‘물리적 거리’ 유지

▲ 경기도 남양주병 선거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덕소역 앞에서 선거포스터를 들고 서 있다. Ⓒ 김계범

“그동안에는 예비후보자 공천이 확정되면 선거대책본부 발대식도 하고, 선대위원장, 특보단, 고문단 등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임명장도 수여하고 이런 행사들이 있었어요. 선거 사무소 개소식도 하고.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전혀 그런 행사들을 할 수가 없었어요.” 

이 관계자는 유세장에서 음악을 틀거나 춤을 추는 것도 중앙당에서 금지했고, 마스크 착용 등 선거운동원들의 코로나19 예방조치 지침도 세밀하게 내려왔다고 전했다. 정의당도 각 캠프에 ‘대중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의 유세를 지양한다’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피켓 등을 들어 정책을 알린다’ 등 지침을 내려 보냈다. 민중당도 지역구 캠프에 ‘악수를 하지 말 것’ ‘피케팅과 인사로 홍보에 주력할 것’ 등을 주문했다. 

코로나 사태는 전국 모든 출마자들의 유세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군소정당 소속이거나 무소속인 후보, 정치 신인들은 더욱 큰 고충을 겪었다.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알리기 위해 기성 정치인보다 유권자를 더 자주, 더 가까이에서 만나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갑에 출마한 정의당 김지수(26)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마스크를 쓰다 보니 우리 후보자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며 “캠프 전체가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고, 그동안 봐 왔던 선거들과 양상이 달라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강용준 정의당 부산시당 사무처장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후보일수록 최대한 많은 유권자들을 만나야 하는데, 악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명함도 동의해 주시는 분에게만 건넬 수 있다”며 “기왕에 인지도가 높은 후보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던 신지예(29) 서울 서대문갑 무소속 후보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얼굴이 꽤 알려졌지만 역시 이번 유세 기간에 고전했다. 신 후보는 “서대문구에는 대학교가 많은데, 대학들이 오프라인 개강을 늦추면서 길에서 젊은 유권자를 만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유세도 ‘기울어진 운동장’

▲ 부산 동래구에 출마한 정의당 박재완(54) 후보가 얼굴을 가리지 않기 위해 투명 위생마스크를 쓰고 지난 11일 수안역 근처에서 유세하고 있다. Ⓒ 강찬구

이렇게 대면 유세가 어려운 상황이라 출마자들은 온라인 선거운동에 힘을 쏟았다. 정치 신인인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유튜브,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활용했다. ‘진짜 용민’이라는 뜻의 유튜브 채널 ‘찐용민TV’는 후보가 지역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약을 소개하는 모습 등 50여개 동영상을 올렸는데, 지난 12일 기준 구독자수가 9천여 명을 기록했다. 캠프 관계자는 “지금은 ‘깜깜이 선거’가 된 상황이라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 유세’에서도 군소정당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정의당 소속인 중랑갑 김지수 후보의 유튜브는 지난 12일 기준 구독자 37명에 ‘가장 많이 본 영상’ 조회수가 201회, 남양주병 장형진 후보는 구독자 13명, 조회수 119회, 노원병 이남수 후보는 구독자 19명에 조회수 22회에 그쳤다. 선거 캠프에 인력이 부족해 올리는 영상 수가 적고, 후보자 이름으로 검색해 들어오는 시청자도 적기 때문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부산 북·강서(을)의 최지은(39) 후보는 같은 날 구독자 약 2만6400명에 최대 조회수 약 1만3000회를 기록했다. 최 후보의 유튜브는 촬영과 편집을 전문적으로 했고, 같은 당의 유명 정치인이 찬조 출연하거나 중앙당 채널과 연계해 기획한 콘텐츠가 있었다.

각 정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도 구독자·조회수에서 큰 차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 ‘씀’은 12일 기준 구독자 10만7천여 명에 최대 조회수 52만 회를 기록했고, 지난 5일 게시된 ‘우리는 더불어민주당입니다! 지역구는 1번, 비례는 5번!’ 영상도 조회수가 2만 회였다. 미래통합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도 구독자 19만7000여 명에 이번 선거와 관련해 조회수가 2만 회를 넘는 영상이 여럿이었다. 반면 정의당의 채널은 구독자 8800여 명이고 이번 선거 관련 영상들은 평균적으로 조회수 1천 회가 되지 않았다. 민중당의 공식 채널은 구독자가 3400여 명이고, 이정희 전 의원(전 통합진보당 대표)이 출연한 총선 홍보 영상이 조회수 10만을 찍은 것 외에 다른 선거 영상 조회수는 1천 회가 되는 것이 드물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당 장형진 후보, 민주당 최지은 후보, 미래통합당, 민중당의 유튜브 채널. 거대정당과 군소정당은 온라인에서도 격차가 컸다. Ⓒ 유튜브 캡처

지난 지방선거에서 인상적인 포스터로 화제를 모았던 신지예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도 강렬한 메시지와 사진을 담은 포스터와 명함, 홀로그램 도색을 한 독특한 디자인의 유세차, ‘SNL(신지예의 나이트 라이브)’ 등 독창적 콘텐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지역구에서는 큰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신 후보는 “서울시장 출마 때는 청년들에게 맞춰 선거를 치렀지만, 지역구 선거는 높은 연령층의 표심을 얻어야 한다”며 “많은 분들이 포스터 등을 기억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지만 득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확실한 감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소독제, 마스크, 영상편집...비용 부담까지 설상가상

군소 후보들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내야 하는 기탁금 1500만 원부터 부담인데, 코로나 사태로 바이러스 차단을 위한 마스크, 손소독제 등 ‘안 쓸 수 없는 비용’이 추가됐다. 서울 중랑을에 출마한 민중당 이소영(33) 후보는 “평범한 비정규직 청년이 자기 생계를 유지하면서 1500만 원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마스크·손소독제 등) 선거운동원들 것도 캠프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늘었다”고 밝혔다. 무소속 신지예 후보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해야 해서 품이 더 들고,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제작인력을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권자들과 접촉을 못 하기 때문에 방송기능이 있는 유세차량이 더 중요해졌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대여하면 대당 1200만 원 정도 드는데, 예산이 적기 때문에 트럭을 빌려 자체적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군소 후보들은 선거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소영 후보는 “기성정치인들은 후원금도 많이 받을 수 있는 풀이 있지만, 새롭게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은 클 수 있는 기반이 아무것도 없다”며 “군소정당들은 TV 토론회도 나가지 못한다”고 성토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정한 TV토론 초청 기준은 ‘국회의원 5인 이상이 추천한 후보자’ ‘직전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총수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언론기관이 실시해 공표한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정당에서 추천한 후보자’ 등이다. 이 후보는 “선거 기탁금 내는 것에 차등을 두고 군소정당 후보도 토론회에 나가게 해 줘야지, 청년들에게 벽을 두는 현실은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정의당 강용준 사무처장은 “전면적인 선거공영제(선거운동을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하고 선거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탁금과 선거비용 보전 기준을 하향하는 등 제도적 수정이 필요하고, 온라인 선거운동은 평상시에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후보자와 입후보를 원하는 사람이 직접 하는 온라인 선거운동은 공직선거법 59조에 따라 선거운동 기간에 제약받지 않지만, 제3자의 운동은 금지되고 있다.

▲ 지난 11일 부산 연제구 망미주공아파트 대로변에서 김해영 연제구 민주당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기호 ‘1’이 적힌 장갑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강찬구

‘현장에서 끌어안고 보듬는 정치’ 더 힘들어져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13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은 ‘비대면의 온라인 정치’가 됐으며 이로 인해 군소정당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더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현장에서 끌어안고 보듬으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정치’를 더욱 보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이런 ‘비대면의 정치’ 국면에서는 정치 참여의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도록 기발한 소통 방식으로 연대를 가능케 하는 대항기술과 대항주체가 형성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환경에서도 규모가 큰 정당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소수의 목소리가 약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소통방식과 기술,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자원이 양대 정당에 너무 쏠리는 것을 바꿔야 한다”며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의석수가 적더라도 당비 납부 비율이나 지지율 등에 맞게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하는 ‘당비납부 매칭펀드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현역의원이 아닌 출마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들을 바꿔야 한다”며 군소정당이나 비현역 후보들도 일상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경희대 김윤철 교수는 군소정당과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선거 환경을 바꾸기 위해 정치관계법 개정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김윤철

정의당 선거캠프 관계자는 “유권자와 정치권은 청년들이 정치에 나오기를 원하지만 실전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청년 후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업난, 주거, 교육 등 청년 의제가 정치를 통해 해결되려면 유권자들도 청년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밀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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