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위성정당’

▲ 신지인 기자

지난해 12월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비례의원 선출에 중점을 둔 법안이다. 승자가 의석을 독점하는 지역구의원 비율을 줄이고, 비례의원 선출에 정당지지율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바꾼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이를 역이용해 비례의원 선출만을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눈 뜨고 코 베일 위기에 처한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인사들 역시 위성정당들을 만들었다. 3개월 전만 해도 선거법 개정은 죽은 표를 살려 민의를 반영할 비책인 양 취급되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표는 버려진 표인 동시에 ‘버린 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각 정당이 가진 약한 정체성에 있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가치관이나 이념보다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하거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대하는 시각차에 따라 모인 집단이다. 정당이 명확한 정체성을 띠지 못하니, 유권자들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구의원 선거와 비례의원 선거에서 각각 다른 정당을 택하는 ‘교차선택’을 할 가능성도 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원래 단순 다수결제도의 단점인 사표를 방지하는 한편으로 전문가와 소수의 목소리를 의정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비례의원 결정권은 대개 정당 내 극소수가 독점한다. 지역구 의원 투표는 후보자의 당락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지만, 비례의원은 ‘정당 내 극소수가 작성한’ 명부에서 순차적으로 결정된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당원 4백만 명 중 678명, 곧 0.017%만이 비례의원 순위 결정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당원 6천명 중 선거인단 수를 100명(1.6%)으로 잡아 비율상으로는 조금 나을지 몰라도, 공천 신청자 531명을 일주일 내 심사한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기할 수는 없었고 공천파동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정의당과 열린민주당이 당원과 선거인단의 뜻을 반영해 비례후보 순서를 정했다. 전체적으로 국민은 정당을 선택할 권한만 있을 뿐, 비례의원들을 검증하거나 당락을 결정지을 수 없다. 사표를 방지하려던 선거법 개정안이 한 표의 효용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 오는 15일 치러질 제21대 총선의 핵심이슈는 단연 위성정당이다. 인공으로 쏘아올린 위성은 언젠가 추락하기 마련이다. ⓒ Pixabay

가뜩이나 정당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 정치 구도에서 위성정당 간판으로 선거를 치른 결과는 정당 정치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개정된 선거법이 정당지지율을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이 되도록 한 것이다. 비례후보가 능력이 모자라도 지도부의 친분관계에 따라 상위 순번에 배치되면 의원 배지를 달게 된 것이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무당층이 18%에 육박하는 것은 정치적 무관심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한국갤럽 4월 7~8일 조사 결과 참조). 국민은 민의를 잘 대표하는 정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가져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두 거대 정당은 의석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이상한 선거제도와 정치현실을 만들어 놓고 민의를 대변하겠다고 한다.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좋은 선거가 아니다. 새 국회가 구성되면 그들을 탄생시킨 선거법부터 손봐야 할 형편이다, 살모사(殺母蛇)처럼.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희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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