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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괴물’을 만들지 말라

기사승인 2020.04.06  18: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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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자의 시선2] ‘4.15총선, 이것만은 바꾸자’ ① 스토킹 범죄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 대립과 갈등 너머(Beyond)에 있을 법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시선2]의 첫 주제는 ‘4.15총선, 이것만은 바꾸자’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총선 현장은 코로나 재난까지 겹쳐, 그 어떤 비전도 정책도 상실한 채 우리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내일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4.15총선을 통해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와 행동을 제안한다. (편집자)


‘괴물’은 당신들이 만들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공범자 공익근무요원(24)은 9년 동안 끔찍한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박사’로 알려진 조주빈(24)에게 400만원을 건네고, 여아 살해 청부도 했다. 여아는 스토킹 피해자의 딸이다. 지난 28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고등학교 사제지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피해자는 자꾸 만나자는 협박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직장을 바꾸며 이사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스토킹 가해자의 신상공개를 원한다’는 이 청원은 6일 6시 현재 48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가해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상습협박 혐의로 겨우 1년 2개월 실형을 받았다. 현행법으로는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9년 동안 계속된 피해자의 고통은 다시 묵살됐다.

국회가 방치한 스토킹 범죄

세상을 읽지 못하는 국회는 국민의 삶을 위협한다. 국회가 제 역할을 방임하는 사이 스토킹 범죄는 진화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스토킹 처벌법’은 15대 국회(1999년)부터 매회 발의됐다. 20대 국회에만 7번 등 그동안 14번이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빈번한 발의 횟수는 사안의 심각성과 동시에, 의원들의 무지와 무책임을 드러낸다. 여성은 가해자의 일방적인 애정 욕구로 성적 대상이 돼, 가정폭력과 강간, 살해 등 강력 범죄로 발전했다.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방화살인 사건의 범인 안인득(43) 씨는 당초 조현병 범죄로 주목받았지만, 1년 전부터 이웃 여고생(19)을 스토킹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안 씨는 여고생을 따라다니고, 집 앞에 오물을 투척하고 욕설을 하는 등 위협행위를 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직접적인 상해를 입거나 기물 파손이 없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안 씨의 스토킹은 지속됐다. 그는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려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스토킹 당사자를 포함해 5명을 죽이는 등 총 21명의 사상자를 냈다.

같은 해 5월 KBS 기획 보도 ‘여성 살인의 전조(前兆), 스토킹’에 따르면, 2018년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진 살인과 살인 미수 사건 381건 중 여성 피해자 사건 30%에서 범행 전 스토킹이 발생했다. 스토킹은 개인 간에 벌어지는 애정행위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의 일부다.

   
▲ 지난해 4월 경남 진주 방화살인 사건의 범인이 여고생을 따라다니는 CCTV 영상을 유족들이 공개했다. 스토킹은 여성 살인의 전조 현상으로 지적된다. ⓒ KBS뉴스

총선을 앞두고 n번방 사건 관련 법안들이 모든 정당에서 쏟아져 나왔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음란물 유통과 소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폭넓게 이뤄지는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겼다.

국민의당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가 SNS로 신상을 알아내고 협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스토킹 방지법’과 ‘그루밍 방지법’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스토킹 처벌 특례법’을 제정해 스토킹 범죄의 정의와 범죄 유형을 구체화하고 범죄 피해자 범주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스토킹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통해 스토킹 범죄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피해자 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미래통합당도 스토킹 행위를 ‘범행 준비 단계’로 규정하고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59세, 그리고 83%

20대 국회까지 여성 안전 관련 법안이 홀대받아온 배경에 국회의원 남녀노소 구성비가 있다.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59세로, 83%가 남성이다. 이들이 여성이 겪는 사이버 스토킹 범죄의 공포감과 변화하는 디지털 세태를 제대로 읽어낼 리 없다. 여성 의원은 17%에 불과하다. 공직선거법 47조는 정당이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사문화한 지 오래다.

거대 양당의 여성 인재 발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0 총선 승리를 위한 여성당 선포식’과 전국 여성당원 여름정치학교에서 “여성 인재를 발굴해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며 “여성공천 30%를 분명히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월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도 “여성과 청년 공천에 핵심 방점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미래통합당에서 유일한 4선 여성인 나경원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지역구 여성 공천 30%를 강행 규정으로 바꾸겠다고 장담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여성 후보는 각각 12.6%와 10.9%에 불과하다. 전체 등록 후보로 확대해도 여성은 19.1%에 그친다.

입법 행위는 냉정한 현실 판단 능력에서 시작된다. 여성의 일상적 공포에 공감조차 못 하는 남성 의원이 여성 안전법을 위해 헌신할 수는 없다. n번방 사건을 두고 황교안(63)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 1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호기심으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발언해 뭇매를 맞았다. 여성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성착취 범죄 사건을 호기심 차원으로 바라보는 그의 성인지 감수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누리꾼들은 황 대표가 형사부 검사 시절, 음란물을 유포한 청소년들을 기소하지 않은 점을 들어 그의 성인지 감수성이 수십년 전과 다르지 않음을 개탄했다.

   
▲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여성 미성년자 피해자들에게 신상정보와 영상 유포 등을 빌미로 협박을 일삼고 괴롭혔다. n번방 사건에도 폭넓게 스토킹 행위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 한겨레TV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

괴물은 여성의 고통을 외면하고 제대로 입법 활동을 하지 않은 ‘당신들’이 만들었다. n번방 사건은 신상정보와 영상유포를 협박한 디지털 성범죄다. 유아를 성적으로 가학하는 유아 음란물방이나 ‘여교사방’ ‘여군방’ ‘여중생방’ 등 이름만으로도 끔찍한 방들이 하루에 수십 개씩 생기고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지인능욕방’에서는 n번방 참여자 주변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과 딥페이크 영상도 공유됐다. 채팅방 참여자가 성희롱 발언을 하지 않거나 영상을 공유하지 않으면 강제퇴장 당했다. 그들은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자신들 ‘취향’에 맞게 방을 선택하고 입장했다. n번방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참여자 신상공개 문제나 처벌 규정을 두고 상반된 의견이 오간다.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정의와 처벌의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이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 법안이 처음 발의됐을 때, 그 후 14번이나 발의된 스토킹 법안을 위해 ‘일하는 당신’이 있었다면, 피해자의 딸이 조주빈에게 살해 위협을 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해자는 수시로 가공스런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죽든지, 당신이 죽든지.’ 피해자는 지난 9년간 수차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바꾸고 직장을 옮겨 다니며 공포에 떨었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까지 쓰게 됐다.

n번방 사건이 폭발력을 가지고 뉴스에 등장하고, 검색어 순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의식 있는 개인들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역대 최고인 270만을 기록했고, 국회 국민청원도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1호 법안의 영예를 얻었다.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 21대 국회는 사이버 스토킹을 제대로 범죄로 규정하고,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엄한 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 법 제정을 약속하고 실천할 일꾼을 뽑아야 한다. 사이버 스토킹 범죄를 뿌리 뽑을 젊은 여성에 주목하자. 5060 남성이라면 그간의 국회활동과 발언을 검증해 투표로 심판하자. 총선 후에도 재촉하고 끊임없이 요구하자. 더 이상 ‘괴물’을 만들지 말라고. ‘괴물’은 당신들이 만들었다고.


편집 : 김태형 기자

장은미 기자 josinrun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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