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조천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 이사

“정부가 기후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게 더 큰 위기입니다. 기후대응을 해야 한다고 요란스럽게는 하는데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조천호(59) 이사의 말이다.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내고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로 일하는 조 이사는 지난달 20일 ESC(대표 한문정)가 청소년기후행동의 헌법소원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데 앞장섰다. ESC는 성명서를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의 기온 상승을 막으려면 지금 당장 전 지구적으로 전시 수준의 대응을 해야 하는데, 기후위기를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는 권력은 제대로 된 결정과 해결을 하지 않고 있다”며 “헌법소원에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지속가능성이 달려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 19명은 지난달 13일 “기후변화가 생명권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데 국가가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후위기 방관 정부·국회는 헌법 위반”).

과학자단체 ‘청소년기후행동 헌법소원 지지’ 성명

지난달 26일 <단비뉴스>와 전화로 인터뷰한 조 이사는 과학자, 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ESC의 회원 491명 중 과반인 274명이 설문조사에 응했고, 이 중 94% 찬성으로 성명이 채택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헌법소원이 미래세대가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조 이사는 “우리 헌법이 생명권, 건강권, 환경권 등 국민 기본권을 보호해야 하는데, 실제로 환경부 등에서 시행하는 법령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며 “청소년들이 살아야 할 미래에 환경과 기후 조건이 무너지면 삶의 조건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이사. 지난달 26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청소년기후행동의 헌법소원을 높이 평가했다. ⓒ 조천호

조 이사가 청소년기후행동을 응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27일 청소년기후행동이 주도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에서 조 이사는 지구온난화 실태를 주제로 거리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에서 “윗세대는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마음껏 배출하고 이익을 누려왔는데, 지금의 어린 세대와 다음 세대는 아무런 이익도 없이 점점 거세지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 이사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빗대 기후위기 대응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으면 의료 시스템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처럼,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르면 제어 불능의 상태로 넘어 간다”며 “지구가 자기회복력을 완전히 상실해 그때부터는 인류가 뭘 하든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또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온실가스를 배출해서 지구 온도를 1도 높여 놨다”며 “여기서 0.5도가 더 올라 1.5도를 넘게 되면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서 항상 기후위기를 느끼면서 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유엔(UN)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인류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지구 기온 상승을 억제해야 극단적 기후변화를 피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줄이고, 2050년까지 실질적 탄소 증가가 없는 ‘순 제로(net zero)’ 배출을 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 조천호 ESC 이사가 지난해 9월 27일 청소년기후행동이 주도한 결석시위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거리 강연을 하고 있다. ⓒ 이나경

말로만 요란, 실질적 대응 안 하는 정부

지난해 출간한 저서 <파란하늘 빨간지구>에서 조 이사는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이미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저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정부 주도의 강력한 ‘저감 정책’을 촉구했다. 특히 2050년까지 석탄 발전을 거의 중단해야 하고, 2050년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0년 대비 75~90%를 감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말만 요란하다’는 그의 지적처럼 우리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국제적 비난을 자초하는 수준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등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붐 앤 버스트(Boom and Bust) 2020’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석탄 발전량은 2018년에 비해 3% 줄었지만 한국은 2022년까지 총 7기가와트(GW) 규모의 석탄발전 용량을 추가하기 위해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대부분 석탄발전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일부 회원국은 여전히 신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 그린피스 등, ‘붐 앤 버스트 2020’ 보고서

청소년기후소송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한 이병주(56· S&L파트너스) 변호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 억제목표인) 1.5도 기준을 달성하려면 우리나라의 2030년 온실가스 배출목표치가 약 2억3000만t이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정부의 2030년 목표는 5억3600만t으로 지나치게 높다”고 꼬집었다.

국내 언론 ‘적극적 의제 제시’ 역할 아쉬워

조 이사는 국내 언론의 기후위기 보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언론이 우리 사회에 곧 닥쳐올 위험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고, 강력한 의제들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국내 언론은 너무 약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세먼지, 코로나19와 달리 기후위기는 당장 보이진 않지만 곧 닥쳐올 위험”이라며 ‘아직 잘 보이지 않는 위험’을 언론이 적극적으로 경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는 특히 언론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에서 산불이 났다거나 어디서 빙하가 녹는다더라 하는 수준에 그쳐 아쉽다”고 덧붙였다.

조 이사는 기후위기 보도를 모범적으로 하는 언론사로 영국의 <가디언>을 꼽았다. <가디언>은 지난해 5월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이나 ‘기후위기(climate crisis)’,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 등으로 용어를 바꿔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온화하고 중립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로 인류가 직면한 위험을 전달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5월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바꾸는 등 환경 위험을 적확하게 전달하는 표현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 <가디언>

조 이사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보면 기후위기는 결핍보다 욕망의 과잉 때문에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며 “과소비 등 현재의 생활방식과 산업구조를 바꾸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이 위기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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