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외국인공포증’

▲ 민지희 기자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때 프랑스에 있는 친구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괜찮냐?’ ‘응.’ 얼마 뒤 유럽에 확진자가 급증하자 그 친구에게 되물었다. ‘괜찮아?’ ‘아니.’ 유럽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전혀 달랐다. 마트에 갔는데 동양인을 투명인간 취급해 물도 못 샀다는 얘기, 마스크를 하고 밖에 나가면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오해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요즘은 통행금지령이 내려져 차별받을 일도 없다’는 푸념이 더 가슴을 아리게 했다. 

외국인공포증, 곧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그리스어로 ‘낯선 사람’을 뜻하는 ‘제노스’(xenos)와 ‘공포’를 뜻하는 ‘포보스’(phobos)를 합친 말이다. 이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방인을 혐오하는 말인데, 어떤 범죄나 사회 문제를 외국인 탓으로 돌릴 때도 사용된다. 코로나19로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국가가 31일 현재 181개 나라로 늘어났다. 한국인은 혐오까지는 몰라도 기피의 대상이 된 셈이다. 

▲ 제노포비아는 코로나 사태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로 나타났다. ⓒ Pixabay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1532년 스페인 군대 168명이 잉카 군대 8만을 이길 수 있었던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적에 관한 정보력이다. 스페인 군대를 이끌던 피사로는 출전하기 전, 탐험가 코르테스가 아즈텍제국을 정복하고 남긴 기록을 보고 적에 관한 기본정보를 알고 있었다. 반면 잉카제국은 유럽에 관한 정보가 전무했다. 아무도 이웃 나라 아즈텍이 스페인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을 문자로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사로가 전쟁 준비를 마치고 잉카 황제 알타우알파를 만날 때 환영을 받았다. 

둘째 요인은 총을 비롯한 전쟁 준비였다. 스페인 군대는 총을 쏘고 나팔을 불며 전투를 시작했고 인디언들은 처음 보고 듣는 광경과 굉음에 도망치기 바빴다. 스페인 군대는 그들을 살육하며 알타우알파를 끌어내렸고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셋째 요인은 유럽인이 갖고 간 균이었다. 유럽인은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균에 항체가 형성돼 있었지만, 인디언은 전혀 면역이 안 돼 몰살되다시피 했다. 유럽인은 이래저래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찌 보면 혐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 외국인 입국 제한은 ‘방어적 혐오’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하거나 전염병의 원인을 모두 특정지역이나 집단에 돌려버리는 것은 ‘방어적 혐오’를 넘어서는 인종차별이나 지역차별이다. 우리나라 또한 중국 우한으로부터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중국인 전체 입국 금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한 원인은 국내 감염자 수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근본 원인은 무분별하게 생태계를 파괴해온 인류 전체의 업보이다. 개발에 앞장선 선진국과 거대자본의 죄가 훨씬 크긴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간끼리 총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인류가 힘을 합쳐 바이러스에 맞서야 하는 전혀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인류가 서로 반목하고 혐오할 게 아니라 화합하고 연대해서 공동전선을 펴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작명인데, 실제로는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에 그쳐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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