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드러낸 한국사회 밑바닥] ④ 언론

‘전염병 대유행’ 같은 재난 상황에서 언론은 정보전달자와 공론장 구실을 동시에 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으로 정부와 의료기관 등이 합리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공적 토론의 장’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 상당수는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가 하면 혐오감을 부추기고 전문가들이 만든 대책을 근거 없이 비판하는 등 재난 보도의 표준을 크게 일탈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우한 폐렴’ 고집하는 일부 언론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원인 불명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세계보건기구(WHO)는 1월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2019’로 명칭을 잠정 결정했다. 정부는 1월 13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 코로나)라고 불렀으나 언론은 ‘우한 폐렴’과 ‘신종 코로나’를 혼용했다. 청와대는 1월 27일 기자들에게 ‘우한 폐렴’이 아닌 ‘신종 코로나’로 불러 달라고 당부했지만 대다수 언론은 지키지 않았다. 일부 언론사만 ‘앞으로 우한 폐렴 명칭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문은 <한겨레>가 1월 28일 지면에서, 방송은 SBS가 1월 20일 8시 뉴스에서 ‘우한 폐렴을 쓰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 <한겨레>가 1월 28일 내보낸 ‘알림'. ⓒ <한겨레>

<중앙일보>는 2월 25일, <동아일보>는 2월 29일까지 ‘우한 폐렴’과 ‘신종 코로나’를 함께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우한 폐렴’과 ‘우한 코로나’를 사용하다 3월 2일부터 ‘우한 코로나’와 ‘코로나’를 함께 쓰지만 3월 31일 현재까지도 ‘코로나19’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조선>은 2월 13일 ‘WHO 공식 명칭은 ‘코비드-19’ 정부는 ‘코로나 19’로 부르기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WHO는 '코비드-19(COVID-19)'로 명칭을 정했는데 정부는 한글 표현으로 ‘코로나19’를 쓴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선>은 WHO와 정부의 공식 명칭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WHO 명칭 사용이 ‘중국 눈치 보기’?

<조선>은 1월 29일 사설 ‘’우한 폐렴’ 反中 안되지만 與는 국민 건강 먼저 걱정하길’에서 ‘질병에 지역명을 쓰지 않는 것은 WHO의 권고사항일 뿐, 일본뇌염, 중동호흡기증후군,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지역명은 널리 쓰고 있다’며 ‘중국이 아닌 미국과 일본이 진원지라면 청와대가 나서서 표기를 바꾸라고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라 비판했다.

중국에 항의하지 않고 눈치만 본다는 내용도 나온다. 1월 28일 ‘靑 ‘우한폐렴’이란 병명 모두 바꿔… 네티즌 "中엔 왜 저자세로 나가나"’ 기사에서도 우한폐렴을 쓰지 못하게 하는 정부는 중국에만 저자세를 유지한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2월 12일 ‘’오사카 폐렴’이었다면’이란 제목의 기자 칼럼에서 ‘작년 한국과 일본의 무역 분쟁 당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SNS에 죽창가를 올려 반일 감정을 부추겼다’며 ‘일본에게는 모질게 대했는데 왜 중국은 극진히 배려하냐’고 지적했다.

▲ ‘우한 폐렴’이란 프레임으로 정부를 공격해온 <조선> ⓒ <조선일보>

WHO 새로운 표준은 메르스 이후

‘스페인독감’의 최초 발생지는 미국 아니면 프랑스 내 미군기지로 추정된다. 당시 1차세계대전 참전국은 전시검열을 해 언론들이 독감 전염 실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참전하지 않은 스페인은 언론들이 이를 상세히 보도해 세상에 알려졌고 자연스레 ‘스페인독감’이란 오명을 얻었다. ‘스페인독감’은 잘못된 것이지만 대부분 질병은 발생지의 이름을 붙여온 건 사실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 강에서 유래된 ‘에볼라바이러스’, 우간다의 지카 숲 이름을 딴 ‘지카바이러스’, 일본뇌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그런 사례다.

▲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질병 명칭으로 소비가 위축돼 양돈업계가 힘든 시기를 보냈다. ⓒ Pixabay

그러나 2015년 WHO는 질병 명칭 표준 지침을 새로 만들었다. 질병에 지역, 사람 이름, 동·식물 이름 등을 사용하면 특정 집단을 향한 낙인효과로 혐오와 불필요한 도살, 경제 타격까지 부추긴다며 이를 배제하기로 했다. 돼지콜레라,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인체에 무해하지만 용어가 주는 공포감이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양돈업계가 타격을 받았다. 일본뇌염, 중동호흡기증후군은 WHO 지침이 바뀌기 전에 발생한 질병이고, 코로나19는 WHO 새로운 지침 이후에 생겨난 질병이기 때문에 동일 선상에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조선>이 ‘우한 폐렴’을 고집한 이유

‘우한 폐렴’이나 ‘우한 코로나’를 고집하는 <조선>의 목적은 정부 비판이다. 전염병에 중국 프레임을 씌워 중국 혐오심을 키우고 자연스럽게 ‘중국인 입국 금지’ 프레임으로 연결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연결해 문재인 정부에 ‘좌파, 사회주의’ 프레임을 씌우고 보수 세력을 결집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김서중 공동대표는 <조선>의 프레임에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언론으로서 ‘우한 코로나’라는 명칭이 혐오와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인지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중국 사회주의가 위협이라 생각하는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려는 현 정부에 부정적 인식을 심으려고 (우한 폐렴을) 고집스럽게 쓴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WHO가 ‘신종 코로나’로 명칭을 잠정 결정하고 이후 ‘코로나19’로 확정한 것을 국내 언론도 하나 둘 따르기 시작하고, 국민들도 ‘코로나19’라는 명칭을 사용함에 따라 ‘우한 폐렴’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정부가 2월 20일 보도 자료에서 실수로 ‘대구 코로나19’라고 표기해 사과를 했음에도 보수언론은 다시 명칭 프레임을 이용했다.

▲ '대구 코로나'를 빌미로 정부를 공격한 보수언론. ⓒ <조선일보>

<중앙>은 2월 24일 칼럼 ‘감염병 떠넘기기’에서 특정 지역 혐오 조장을 이유로 ‘우한 폐렴’을 반대한 정부가 ‘대구 코로나19’라 표현해 지역 혐오를 부추기고 코로나 사태 책임까지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2월 29일 칼럼 ‘’우한 폐렴’이 혐오라면 '대구 코로나'는 더 큰 혐오… 지금 중요한 건 위생’에서 정부의 대구 혐오 감정은 용납할 수 없으며 혐오가 아닌 위생에 신경 쓰라고 했다. 

<중앙>은 2월 29일 칼럼 ‘바이러스의 은유’에서도 특정 지역 이름을 쓰면 혐오가 생기며 이는 전염병보다 감염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우한 폐렴’ 명칭이 지역 혐오를 부추긴다는 WHO 권고에 따른 정부를 중국 눈치 본다고 비판하던 보수언론은 ‘대구 코로나19’라고 실수한 부분에서는 반대로 대구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한 것이다.

무분별한 ‘중국인 입국금지’ 보도 

코로나19 발생 초기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정부가 중국 입국 금지 조처를 취하지 않아 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 대처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중앙>은 2월 24일 1면 머리기사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 주말 폭발적으로 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친 문재인 정부의 방역 실패가 혹독한 대가를 초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은 이에 앞선 2월 21일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안 한 韓·日만 감염자 급증’ 기사에서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를 한 나라 대부분은 확진자 수가 진정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감염자가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 <중앙>은 2월 24일자 1면 머리에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 <중앙일보>
▲ <조선>은 2월 21일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안 한 한∙일만 감염자 급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 <조선일보>

중국인 입국 금지 요구가 계속해서 나오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월 27일 서면 브리핑에서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지 않는 것이 '중국 눈치보기'라는 일각의 주장은 유감"이라며 "국제 전문가들도 중국인 전면 입국 제한이란 봉쇄 효과는 제한적이라 진단하고 있다"고 했다.

감염병 전문가에 ‘비선’ ‘사회주의자’ 낙인

중국인 입국 금지 쟁점은 ‘범학계 코로나19대책위원회' 해체로 이어졌다. <중앙>은 3월 3일 ‘의료계 “진보진영 ‘김용익 사단’ 이진석 실장이 코로나 실세”’ 기사에서 비선 자문 의혹을 제기했다. 그들이 중국인 입국 금지 여론을 수렴하지 않아 방역에 실패했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이 기사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친하다고 들었다”며 “이 교수의 의견이 이 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또 의료계 익명 소식통을 통해 “서울대 교수 출신인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정점으로 한 '의료 사회주의자'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 <중앙>은 3월 3일 ‘문재인 정부 코로나 방역 비선’ 의혹을 제기했다. ⓒ <중앙일보>

이재갑 교수는 페이스북에 <중앙> 기사를 공유하고 “전문가 의견이 비선자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하되다니”라며 “죄송하다, 비선자문은 이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에 자문을 하던 ‘대책위’는 그렇게 자진 해체됐다.

3월 15일에 방영된 <저널리즘 토크쇼 J>에 따르면 이재갑 교수는 김용익 이사장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는 사이고, 청와대 이진석 실장과는 5년 전 메르스 때 한 번 대화를 해보고 그 뒤로는 통화조차 한 적 없는 사이다. 당사자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최대집 회장과 익명의 취재원 말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전세계 공유된 ‘한국 방역 대책’

코로나19는 3월로 접어들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속히 퍼졌다. 중국 입국자를 초기에 차단했던 미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확산세가 커지며 중국발 입국자를 차단하지 않아 문재인 정부 방역 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하던 보수언론의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와 ‘대책위 비선 자문’ 프레임도 동시에 깨졌다.

3월 26일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최근 어쩔 수 없이 미국 사이 국경을 폐쇄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중국 등 해외로부터 외국인 입국 금지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결정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WHO 사무총장과 네덜란드 대표부의 요청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는 세계 각국에 공유되기도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3월 27일 WHO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각국 대표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정례 화상 브리핑에서 한국의 코로나19 경험을 알렸다. 그는 "한국은 특별입국절차와 밀접 접촉자 14일간 출국 금지 등을 통해 필요한 이동과 여행은 저해하지 않으면서 해외 유·출입에 따른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WHO 사무총장과 네덜란드 대표부의 요청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가 세계 각국에 공유됐다. ⓒ <연합뉴스>

박홍원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중국발 입국 금지 공세를 편 보수언론의 보도를 두고 “‘현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내통하는 좌파정권이다’라는 주장과 연결 짓기 위한 것”이라며 “외교 관계를 고려한다면 중국에 강경하게 대응한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문제라는 얘기를 더 많이 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국경을 닫은 나라가 오히려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시점에서도 중국발 입국 금지를 아직까지 얘기하는 것은 언론 스스로 문제점을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마스크 품귀’보다 심각한 ‘객관 보도 품귀’

마스크는 불안을 차단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차단 여부는 불확실하나, 마스크 의존도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 불안을 더 부추겨 ‘마스크 대란’을 자초하는 데도 언론이 기여했다. 일부 언론은 정부가 마스크 300만 장을 중국으로 ‘유출’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마스크 5부제 시행을 두고 ‘사회주의’라 폄하했다. 

<조선>은 2월 1일 ‘외교부 "중국에 마스크 300만 장 지원"…네티즌 "조공하나"’라는 제목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은 마스크를 사재기’하고 ‘인터넷에선 '마스크 조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은 2월 4일 사설 ‘마스크 대란…메르스 겪고도 배운 게 없었던 정부’를 통해 ‘중국이 한국산 마스크의 블랙홀이 되다시피 하면서 국민은 불안과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 외교부가 1월 30일 발표한 '중국 의료물품 지원계획'. 언론은 이를 두고 '마스크 조공' '마스크 블랙홀'이라는 표현을 썼다. ⓒ 외교부

이런 보도는 실제 상황과 거리가 멀다. 이들이 근거한 것은 1월 30일 발표된 외교부 의료물품 지원계획이었다. 우한 지역에 마스크 200만장,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 방호복·보호경 각 10만개 등 의료물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물품들은 '중국유학총교우회'와 '우한대총동문회'에서 제공한 것으로, 정부는 이 물품을 항공기와 대중교통이 차단된 우한으로 긴급공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민간 예산 물품을 정부가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가 문제되는 이유는 사실 확인이라는 저널리즘 기본 원칙을 어겼을 뿐 아니라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박홍원 교수는 “현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를 취한다’는 주장과 연결 짓기 위한 악의적 보도 행태”라고 지적했다.

마스크 5부제가 사회주의?

3월 9일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 달 만에 마스크 생산량을 660만장에서 1000만장으로 늘렸지만 턱없이 부족하자, 마스크 5부제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처럼 정부가 마스크 생산과 공급에 관여하자 ‘마스크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대두했다. 3월 8일 <동아일보>는 ‘김순덕의 도발’이란 난에 ‘공적 마스크가 드러낸 ‘문재인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은 ‘정부가 마스크 생산과 유통, 판매와 분배까지 100% 관리하는 문재인표 사회주의’라고 지적했다. 이와 비슷한 논조는 3월 5일 <세계일보> ‘“사회주의 국가 배급 보는 줄”… ‘마스크 대란’에 뿔난 민심’과 3월 24일 <한국경제> ‘'마스크 5부제' 부른 정부 개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부를 비판하려는 의지가 강한 나머지 이중 잣대를 들이대 논조가 혼선을 빚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위 칼럼에서 마스크 수급시장에 정부가 개입한 것을 근거로 ‘사회주의’라 비난했지만, 다음 날 ‘‘마스크 대란’ 대만은 어떻게 해결했나…모범 사례로 떠올라’ 기사에서는 마스크 생산량을 조절한 대만 정부를 높이 평가했다.

▲ 정부 개입을 두고 이중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동아일보> 칼럼 '김순덕의 도발'(왼쪽)과 일반 기사.(오른쪽) ⓒ <동아일보>

김서중 민언련 공동대표는 “‘마스크 사회주의’란 표현으로 언론의 의도가 비로소 명확해졌다”며 “정부의 좌파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복성경 부산민언련 대표는 “한 단면만 가지고 사회주의라 평한 것은 진중한 고민 없이 수사를 남용한 것”이라며 “언어를 가지고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으로서 심각한 오류를 보인 사례”라고 말했다.

외신 호평에도 아랑곳 않는 ‘정부 공격’

상당수 보수언론은 편향적 시각으로 정부의 방역 대책을 비난하는 데 몰두하고 있지만 외신 보도는 달랐다. 2월 27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사이비 종교와 보수세력이 한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기사에서 “서울은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종교와 정치가 계획을 틀어지게 했다”고 진단했다. 이 기사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의 예시로 “중국인 입국 금지가 유일한 대책”이라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발언과, <중앙>가 2월 24일 1면 머리로 내보낸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인용했다.

외신들은 우리 정부의 대처가 ‘민주적’임에 주목했다. 미국 ABC 기자는 2월 24일 “대구는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완전 봉쇄 없이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며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한국의 대처가) 우리에게 삶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스트리아 <디 프레세>도 3월 1일 “코로나19 확산에 맞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투명하고 체계적이며 민주적인 대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3월 11일 <워싱턴포스트> 조쉬 로긴의 칼럼은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책임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는 다른 국가들이 한국과 계속 거래를 하고 한국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길 원했다”고 입국금지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대처를 좋게 평가했다.

▲ 3월 9일 열린 정부합동 외신브리핑에서 한 외신기자가 질의하고 있다. ⓒ KTV 유튜브 캡처

이런 외신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일부 보수언론은 우리 정부와 사회의 코로나 대처 성과를 ‘자화자찬’으로 폄하하려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3월 11일 ‘방역 자랑하다 뻘쭘해진 정부’라는 기사에서 9일 열린 '정부 합동 외신 브리핑'을 ‘자랑과 읍소로 44분이 흘렀다’며 평가절하했다. 이 기사는 ‘독일 기자가 배석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제쳐 두고 김동현 한국역학회장을 손으로 지목하면서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며 방역 전문가와 정부를 갈라 치려는 듯한 의도를 보이기도 했다. 3월 9일 <한국일보>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해외 상황을 열거하며 설명한 것을 두고, 중국 정부가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시작될 때 보인 태도와 비교하며 정부가 ‘다른 나라에 훈수’를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 <한국일보>는 17일, 진단 키트 관련 기사가 논란에 휩싸이자 홈페이지에 ‘유감’을 표명하는 알림 글을 실었다. ⓒ <한국일보> 홈페이지

일부 언론은 우리 정부의 행보를 비판하기 위해 코로나 사태에 관한 외국 소식을 오용하거나 편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일보>는 3월 15일 ‘한국 코로나 키트, 비상용으로도 적절치 않다’는 기사에서 한국에서 사용중인 코로나 진단키트가 미국에서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지난 11일 개최한 청문회에서 마크 그린 의원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서면 답변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적절하지 않으며, FDA는 비상용으로라도 이 키트가 미국에서 사용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며 한국 진단키트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보도는 오보였다. 당장 그 청문회에서 로버트 레드필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장이 "한국 방식은 분자 진단법, 그린 의원이 언급한 내용은 혈청학적 진단법"이라며 그린 의원의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는 내용이 이어졌음에도 기사에는 그린 의원의 문제제기 부분만 잘라 인용한 것이다. 또 <한국>은 이를 근거로 같은 날 ‘미국 FDA 뭐라고 하든… 정부 “국내 진단키트 정확성 확신”’이라는 기사를 내며 정부를 비판했다.

‘비판을 위한 비판’ 반복하는 포털 환경

3월 26일 방송된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는 언론의 이런 성급한 ‘권력 비판’을 다뤘다. 방송에 출연한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상당수 언론과 기자들이 ‘우리는 비판을 하는 존재이고, 우리가 하는 비판은 늘 옳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며 “오만을 버리고 사실 앞에 좀 더 겸허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준희 진행자는 “수집된 사실에 대해 새롭게 보는 게 비판의 핵심”이라면서 “요즘 우리 언론은 ‘비판’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이를 위해 ‘사실은 신성하다’는 말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왼쪽)와 진행자 정준희 교수(오른쪽) ⓒ TBS TV <정준희의 해시태그> 캡처

언론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에 전문가와 언론인들은 다양한 이유를 꼽았다. 이 대표는 자극적인 소재를 쓰려는 기자들의 속성과 한 언론사가 기사를 내면 모두 따라 쓸 수밖에 없는 포털 문화, 그리고 포털에서 소비되며 유통기한이 짧아져 기사를 가볍게 쓰고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된 데서 이유를 찾았다.

3월 22일 방영된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김덕훈 KBS 기자는 언론사 수익이 네이버 포털 페이지 뷰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페이지 뷰가 코로나 문제에 집중돼 있으니 “(언론사들이 기사를) 일단 내고 보자는 식이 됐다”고 진단했다. 정치적인 동기도 이유로 꼽혔다. 박홍원 부산대 교수는 “언론이 정부가 무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파적 목적이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언론이 정파적 목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길게는 대선에서 정권 교체, 짧게는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기 비판’과 ‘상호 비평’ 뿌리내려야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를 겪으며 전염병 대응 체계는 크게 개선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의 보도행태는 달라진 게 별로 없을뿐더러 선거를 앞두고 정파성이 더 짙어졌다. 언론학자와 시민단체들은 상당수 보수 언론이 감염병 확산 방지보다 원색적인 정부 비난에 몰두한 나머지, 저널리즘의 표준을 크게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린다. 필요한 정보 전달이나 합리적 비판보다는 정보의 왜곡과 무조건적 비난이 성행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 ‘코로나19 관련 보도가 과도한 공포를 조장한다’는 응답이 38.8%였지만, 한 달 뒤 같은 질문으로 물은 결과 49.3%로 10%p 넘게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 중앙재난대책본부의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는 언론사 취재진. ⓒ <연합뉴스>

재난 보도와 관련한 언론의 잘못된 행태를 중단시키려면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이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서중 민언련 대표는 “한국 언론계에는 다른 언론사 비판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데 건강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면 언론사 간 비판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도 “언론 간에 토론과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며 “그런 계기가 없으니 잘못된 보도문화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결과가 빚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자 스스로 재난보도준칙이나 감염병보도준칙 등을 숙지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도 중요하다. 전국언론노조가 1월 30일 발표한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긴급 지침’도 하나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이 지침에는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공식 병명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복성경 부산민언련 대표는 “언론노조의 지침 발표는 언론 종사자 스스로 재난 보도가 위험 수위에 놓여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뜻”이라며 “기성언론이 1인미디어나 신생 매체와 경쟁하려면 내부에서도 예리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염병은 우리 사회가 눈감아온 병폐들까지 남김없이 드러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펼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는가 하면, 고립돼 있으면서도 서로 혐오하고 배제하고 ‘위험의 정치화’를 꾀하는 모습들도 목격된다. 직격탄을 맞은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 무한 연기된 채용시험에 공부할 곳조차 폐쇄된 취업준비생, 일하는 부모의 갈 곳 없는 어린이, 영세 요양원과 정신병원에 버리다시피 방치해온 노인과 환자들은 우리 정치경제 체제와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벌거벗겨 놓았다. 그럼에도 힘있는 세력들은 부끄러운 참상을 얼른 가리고 싶은 걸까? 일부 교회는 구원의 주체가 되기보다 질병 전파의 매개체가 되고 있고, 상당수 정치세력과 기성 언론은 정략과 정파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대로 가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우리 사회가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병폐는 다시 잠재된 채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까. 비영리 대안 매체 <단비뉴스>가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단면들을 부각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편집 : 박서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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