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임지윤 기자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정치가 직업인 정치인들 스스로 자주 쓰는 말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정치를 특정 목적에 맞춰 너무 공작적으로 악용하지 말라는 뜻. 단, 언제나 자기 자신은 그 대상이 아니다. 다른 정치인을 비난할 때 주로 쓴다.  

세월호, 조국, 선거법 개정…. 우리 사회에 큰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야는 상대를 비난하면서 이 말을 동원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 와중에서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가 4월에 잡힌 시진핑 주석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아직도 ‘중국인 입국금지’ 조처를 시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여당은 야당이 국민의 불안한 공포 심리만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역설한다. 대구에서 급격하게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날 때도, 신천지교회 이만희 총회장이 ‘박근혜’ 이름이 적힌 시계를 차고 기자들 앞에 설 때도, 외신이 우리 정부의 투명하고 신속한 대응을 칭찬할 때도 여야는 이 말부터 꺼내며 공방전을 벌였다.  

코로나로 인해 국정과 국민 생활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이런 말과 삿대질을 서로 해대면서 정쟁을 멈추지 않는다. 총선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경쟁을 벌이는 결전, 승리를 위해선 온갖 비난과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 게 그들의 본능이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난리를 치르는 지금도 이런 본능을 절제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 두 거대 정당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으로 국민이 고통받는 가운데 '위성정당'을 창당해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 KBS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두 거대 정당이 앞장서서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또 하나의 난리를 보탰다. 헌정사에 길이 남을 전대미문의 난장판. 헌법정신도, 윤리도, 체면도 찾기 어렵다. 소수정당도 원내 진출을 하게 해서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겠다는 법 개정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결국은 모든 기성정당에 수많은 신생정당들까지 얽히고설켜서 의석 하나라도 가져가기 위해 아비규환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는 코로나일 뿐? 

정당과 정치인이 총선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러나 이런 난국에서는 경쟁을 벌일 때 벌이더라도 비난과 음해를 일삼으며 혐오와 증오, 절망을 양산해내는 폐습은 삼가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도를 넘는 경쟁을 자제해 선거의 악습을 바꿀 수도 있다. 또 여야 모든 정치인들이 코로나 난국 타개에 관해서는 공조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 정치개혁에 디딤돌을 놓을 수도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지난 26일 1560억 유로(약 212조 원) 가량의 추가예산을 승인했다. 이때 야당인 녹색당의 카트린 괴링-에카르트 원내대표가 행한 연설은 우리 정치인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 가운데 이 위기 바깥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상하고 위급한 상황이며, 그래서 우리의 대답도 비상해야 합니다. 브링크하우스 씨(여당인 기독민주당 의원), 제게 주신 감사를 되돌려 드립니다.  이 상황에서는 경쟁보다 협력과 협동을 앞세워 자유를 되찾읍시다.”

위기는 기회라고들 한다. 오히려 이럴 때 우리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위한 경쟁과 협동의 시범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어둠 속의 불빛과 같은 새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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