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신수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를 받는자리에서 “고용연장에 대해서도 본격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대통령이 생산인구 감소 대응과 노후복지 차원에서 ‘고용연장’을 거론하자 일부 언론이 이를 ‘정년연장’으로 해석하며 ‘총선용 선심정책’ 등의 비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계속고용제도'를 뜻한다고 반박했다. 이 제도는 이미 노동부가 추진방침을 발표한 것으로, 기업이 60세 이상 중고령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도록 지원하되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 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법으로 강제하는 정년연장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떤 이름이 됐든 중고령 노동자가 ‘일하는 기간’을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노인복지를 해결하는 대책이 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노인이 가난한 나라’로 손꼽힌다. 한국의 상대적 노인빈곤율은 2017년 기준 4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OECD 평균 노인빈곤율의 약 3배나 된다. 노인자살률도 OECD 1위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2015년 기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18.8명의 3배를 넘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자살 원인 1위는 생활고다. 한창때 자녀교육비 등으로 수입을 다 털어 쓰고 개별적 노후대비를 못한 데다, 국민연금을 받는 비율이 전체 노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공적 복지가 취약한 현실이 그 배경에 있다.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됐지만 가난을 해결하기엔 너무 부족한 금액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YTN 뉴스

따라서 노후복지를 제대로 확충하려면 비정규직 차별 개선 등으로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줄이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가난한 비정규직 청년은 가난한 노인이 되기 쉽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에서 소외된 '나쁜 일자리'를 줄이고, 차별대우가 없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고령화 대책인 동시에 청년실업 대책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 일자리, 비정규직 일자리에도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없어지고 보수 등에서 차별이 줄어든다면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이런 노력 없이 중고령 노동자의 고용연장만 추진한다면 노인을 위한 ‘나쁜 일자리’는 늘고 청년 일자리는 줄어드는 ‘세대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노인’의 법적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시절이니 고용연장 논의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아직 건강하고 경제활동 의사가 있는 중고령층에게 일할 기회를 넓혀주는 것도 노후복지의 한 방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년연장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1980~2016년 전체 취업자 중 고령층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할수록 청년층 비중은 0.8%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온 것처럼 세대 간 고용대체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청년과 노인이 이런 ‘제로 섬 게임(상대몫 뺏기)’을 벗어나 ‘윈윈(상호이익)’을 이루려면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전면적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면서 은퇴노동자의 노후복지도 확보해야 한다.


편집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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