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

취재진을 향해 큰절을 하자 숱이 적은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치고는 정정해 보인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많은 말을 했지만, 곤란한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을 얼버무렸다. 인근 도로에서는 신천지에 심취해 가출한 자녀를 둔 부모들이 그를 규탄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구세주’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모습이었다.

▲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만희 총회장이 큰절을 하고 있다. ⓒ KBS

예수가 이 세상에 다시 온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 신천지 신자들이 어떻게 그가 신의 대리인이라고 믿는 것일까? 교주를 ‘재림 예수’라 칭하는 일부 교회를 빼고, 기성 기독교에서는 마태오 25장을 들어 구세주가 언제 올지에 관해 알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를 믿는 이들은 예수가 재림하든 안 하든, 저마다 자기만의 예수를 그린다. 그들에게 예수는 자기 삶을 구원한 구세주, 또는 살아갈 방향을 제시한 예언자이니 당연하다. 같은 교회를 다녀도 각자가 생각하는 예수는 다 다르다. 재림 예수를 상상하는 일은 자기 인생과 세계를 고찰하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고, 모든 인생은 다 제 각기다. 20세기 초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포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앙을 떼어낸 ‘역사적 예수’를 찾았다. 위에서 말해주는 예수 말고, 그보다 더 실감 나는 개인적인 예수상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최소한 그럴듯한 재림 예수일까? 성화 속 예수의 생김새를 가진 사람? 부정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는 지도자? 

올 새해 첫날 넷플릭스가 내놓은 문제작 <메시아>(Messiah)는 예수가 지금 시리아에 홀연히 나타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구불거리는 장발에 야윈 얼굴, 서양 성화에 나오는 예수와 흡사하다. 옷차림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청바지에 후드티다. 검소하면서 평범한 차림새가 더 신뢰감을 준다. 예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중동의 흔한 30대 남성 모습이기도 하다. 

그가 비범한 사람이라는 건 생김새가 아니라 표정에서 드러난다. 토네이도가 덮쳐와도, 납치당한 상황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는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를 ‘알마시’, 아라비아어로 예수라고 부르면서 미디어도 그를 알마시라고 부른다.

▲ 튀니지계 벨기에 배우 메디 데비가 주인공 ‘알마시’ 역을 맡았다. 그는 1985년생인데, 예수가 제자들을 모아 유다 전역을 돌아다니던 연배(대략 30-33)와 비슷한 34세이며, 아라비아어가 모어이다. ⓒ 넷플릭스

그는 몇 마디 말만으로 사람을 흔든다. 모래 폭풍을 일으켜 전쟁을 멈추게 하고, 시리아인들을 이스라엘 국경 광야로 이끌더니 처음 본 상대의 과거와 심리 상태를 알고 위로한다. 그를 감시하는 CIA 요원과 ‘신 베트’(이스라엘 첩보 기관) 요원마저 그에게 홀리듯 빠져든다. 그는 기적도 일으킨다. 총 맞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아이가 살아나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 보인다. 미국 대통령에게 ‘전 세계에서 미군을 철수하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자신을 유혹하는 창녀에게 옷을 덮어주고 일으켜 세운다. 어떤 이념도 종교도 내세우지 않고 말 한마디, 손짓 하나로 세상을 요동치게 한다. 

그를 사기꾼이나 리플리 증후군 환자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를 예언자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그는 ‘위험인물’이다. 신약성경 속 예수는 같은 유대인들과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받았다. 상황은 바뀌었지만,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2천 년의 시차와 상황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돌린다. “당신의 구세주는 누구입니까?” 

신성을 모독하는가,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가?

▲ 드라마 <메시아> 포스터. "그가 당신을 개종(convert)시킬까요?" 라고 쓰여있다. 'convert'에서 'vert'를 흐리게 처리해, 속인다는 뜻의 'con'으로도 읽히도록 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 예고편이 공개되자, 무슬림 국가인 요르단의 왕립영상위원회는 넷플릭스에 <메시아>를 방영하지 않도록 요청했다.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서는 5천여 명이 드라마 방영 금지 청원에 사인했다. 알마시가 이슬람 종말론에 나오는, 세상을 혼란케 하는 ‘알마시 앗 다잘(가짜 메시아)’을 연상케 해 이슬람 교인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쿠란과 교리서 하디스에 따르면, 가짜 메시아는 믿지 않는 자이면서 메시아를 자처하는데, 실명한 오른쪽 눈에서 사악한 힘을 얻는다. 그가 나타나면 고리대금업이나 사채업 등 불법 행위가 합법이 되고, 곳곳에서 사탄 숭배가 벌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알마시의 묘사가 ‘알마시 알 다잘’과 일치하지 않자, 다음 시즌을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기독교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천주교 신부는 드라마가 재림 예수를 향한 사람들의 갈망을 재촉하리라 우려했다. 알마시의 의뭉스러운 행보도 예수답지 않다며 “그는 내 예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몇몇 기독교 매체는 종교와 상관없이 신앙의 본질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며 드라마를 추천했다. 조연을 맡은 유대교 신자 배우 토머 시슬리는 드라마가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자 “우리는 받은 교육과 경험, 신념 그리고 믿음에 따라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본다”면서 “이 드라마는 그런 개인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 않으면서 질문을 던진다”고 대변했다. 

드라마 완성도에 관한 상반된 평가

종교관만이 이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는 요인이 아니다. 조연들의 곁가지 이야기와 모호한 묘사가 드라마 완성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CNN,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평론은 조연들의 비중이 큰데, 알마시와의 연결이 모호해 전체 흐름이 엉성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나 우파는 메시아를 의심하고 위협으로 본다는 설정을 탐탁지 않게 보기도 한다.

반면, 영국 <가디언>과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 캐나다 <글로브앤메일> 등은 드라마의 모호함과 복잡한 인물 구성이 시청자의 흥미를 끌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며 호평했다. 루시 맨갠은 특히 드라마에서 기성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알마시를 다르게 조명하는 방식을 보여준 점을 짚으며, 미디어를 다루는 부분이 드라마의 깊이를 한층 더 파 내려갔다고 평했다.

평론가 대부분이 극의 표현이 모호하고 줄거리가 복잡하다는 데 동의하는데, 그에 관한 평가는 갈리는 게 흥미롭다. 특히 평론가와 매체의 거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게 인상적이다.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을 제외한 영어권 국가 매체들은 드라마의 모호함과 복잡함에 호의적이다. 토머 시슬리 말마따나 받은 교육과 경험, 신념 그리고 믿음에 따라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유독 미국 평단에서만 조연의 비중이 커지면서 주인공 입지가 불안해져 주제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권위 있는 기구가 음모적으로 그려지는 묘사를 불편해하는 이유가 뭘까? 단 하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싶은 미국 매니페스토가 평론가 한 명 한 명의 교육과 경험, 믿음에 스며들어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드라마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보편적 존재로서 예수를 그리고자 했다. 드라마를 둘러싼 반응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보편적인 예수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 치열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믿는 건 무엇인가?’


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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