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박서정 기자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가장 큰 요소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주장했다. 기업가가 기술혁신 등을 통해 낡은 제품이나 생산방식, 유통구조 등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게 창조적 파괴인데, 이것이 경제발전을 이끄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이다. 아이폰을 선보인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으로 세계를 연결한 마크 저커버그 등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제 지형을 바꾼 대표적 기업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슘페터는 혁신적 기업가들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게 하려면 사회 구성원의 도전 정신을 일깨우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가는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떨까.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려는 도전 정신이 충분할까. 정부가 ‘혁신성장’을 내걸고 창업자금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긴 어렵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과감히 도전하기에는 ‘실패 이후의 삶’이 너무 막막한 현실 때문이다.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아래 시들어 가는 창업기업들이 허다하고, ‘폭망’ 후에 삶의 최저선을 받쳐 줄 사회안전망은 몹시 허술하다.

▲ 스티브 잡스 당시 최고경영자가 아이폰 신형 모델을 소개하며 활짝 웃고 있다. ⓒ flickr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동반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도입한 지 3년이 됐지만 이런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1년 전보다 가계소득이 3.6% 늘고 상·하위층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이 5.47에서 5.26으로 줄어드는 등 분배 지표는 조금 나아졌다. 최저임금 인상 등 중하층 가구의 소득을 높이고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 공기업 등 ‘안정적 일자리’를 위해 서울 노량진에 몰려드는 ‘공시족’은 오히려 늘었다.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우니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치면서 허술한 사회안전망의 문제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이 일자리를 잃고, 영세자영업자의 수입이 끊기고, 공연예술인이 설 무대가 없어 끼니를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선 ‘역시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일자리가 최고’라는 인식이 더 굳어진다. 창조적 파괴의 도전의지는 더욱 움츠러든다. 만일 ‘재난 기본소득제’가 작동해서 사회적 약자들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떨까. 창업에 실패해도 최소한의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고 재기를 꿈꿀 수 있다면 어떨까. 백 마디 혁신성장 구호보다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더 확실한 도전의 방아쇠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안전망을 갖추려면 돈이 들고, 증세에는 저항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 등 다주택자들에게 물리는 보유세를 올리고, 에너지과소비 제품에 탄소세를 물리는 등 ‘일거양득’의 조세전략을 과감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부익부빈익빈’의 주범인 부동산투기도 잡고, 기후위기에도 대응하면서 복지확충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반환점을 돌아선 소득주도성장이 성공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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