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권영지 기자

여자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 주위에 ‘이상한 아저씨들’이 자주 출몰했다. 알몸에 긴 외투만 걸치고 학교 주위를 배회하던 ‘바바리맨’, 학교 앞에 차를 세운 채 하교하는 여학생들을 보며 혼자 성욕을 풀던 ‘변태남’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낯선 남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 선생님이 수업 중 떠든 여학생에게 칠판지우개를 던지더니 “또 그러면 다음엔 가슴을 맞출 줄 알라”고 폭언한 일도 있다. 수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 교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밖의 변태남과 학교 안의 비교육적 교사들이 아니라 충격에 빠진 우리들에게 ‘공격의 화살’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입고 나가서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러니?” “나쁜 일 생기면 그 시간에 돌아다닌 사람 책임이지!” ‘여자는 항상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존재’ ‘무슨 일이 생기면 처신을 똑바로 못한 네 책임’이라는 경고와 질책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성범죄를 저지른 ‘그 남자들’을 잡아서 벌주는 것이 아니라 ‘당한 여자들’을 손가락질 하고 낙인찍는 분위기에 우리는 주눅 들면서 길들여졌던 것 같다.

▲ 지영이 남학생에게 스토킹을 당하자 아버지가 "단정하게 입고 다니라"며 지영을 꾸짖고 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

그래선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볼 때, 밤길을 뒤따라온 남학생 때문에 지영이 겁에 질렸던 장면에 유독 눈길이 갔다. 버스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난 지영이 문자를 받고 달려 나온 아버지를 보고 주저앉아 울 때, 아버지가 한 말은 놀랍게도 “치마가 짧다”며 “단정히 입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절대 아무나 보고 웃으면 안 된다” “바싹 긴장하고 피해 다녀야지” “바위가 굴러오는데 못 피하면 못 피한 사람 책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토킹’을 저지른 남학생을 혼내거나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 보였다. 그 장면에서 지영은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넘어갔는데, 그런 순간들이 쌓여 지영의 정신에 깊은 병이 들었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아챌 수 있었다.

지난해 1월 벨기에 몰렌빅에서는 한 공공기관 주최로 ‘당신은 무엇을 입고 있었나’ 전시회가 열렸다. ‘강간당한 여성은 자극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한 전시회였다. 강간 피해 생존자들이 입었던 18가지 의상이 소개됐는데, 두꺼운 보온복과 파자마, 캐릭터 티셔츠 등 그저 평범한 옷들이었다. 사실 온몸을 베일로 가린 무슬림 여성들도 성폭력 피해에 시달린다. 성폭력은 늦게 다니거나 특정한 옷을 입은 피해자 잘못이 아니며 법과 윤리를 무시하고 성욕을 해소하려 한 가해자의 잘못임이 명백하다.

세계적인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의 물결 이후에도 가해자가 “강간이 아니었다” “서로 좋아했다”고 변명하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또 피해자에게 ‘당할 짓을 하지 않았나’ ‘조심했어야지’하고 질책하는 시선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변명과 편견이 용인되면 ‘뻔뻔한 가해자’와 ‘삶이 파괴되는 피해자’는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김지영의 아버지 같은 부모가 딸들의 ‘몸조심’만 챙긴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안전하고 건강한 곳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딸들의 옷차림과 귀가 시간을 단속하는 대신, ‘무관용’의 원칙으로 성범죄자들이 설 곳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시민들이, 그리고 국가기관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편집 : 이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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