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장은미 기자

“당신의 집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아파트 광고 문구로 귀에 익은 이 말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네 반지하 집과 너른 잔디 정원을 둔 박사장네 이층집은 두 가족의 실질적 ‘신분’과 ‘삶의 질’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대도시 대학가와 도심의 쪽방들은 이 시대 청년들이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드러낸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0월 ‘대학가 신(新)쪽방촌’ 기사에서 서울 사근동 한양대 일대의 불법 ‘쪼개기’ 원룸 실태를 고발했다. 건축물 대장에는 1가구로 돼 있지만 3개 층 16가구로 쪼갠 건물에서 4.5평짜리 방에 세든 청년은 세탁기, 냉장고, 책상, 침대를 간신히 들여놓고 드라이어와 화장수 등은 주방싱크대에 놓고 쓰고 있었다. 창문 없는 화장실엔 곰팡이가 피고, 변기에 앉으면 세면대에 다리가 닿고, 옆방에서 문 여닫는 소리까지 진동으로 전해지니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집이었다. 서울 곳곳에 있는 이런 ‘신쪽방촌’에서 적잖은 대학생, 취업준비생, 초보직장인 등이 수천만원 보증금에 몇십만원 월세를 내며 ‘곧 떠날 테니 참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연세대학교 중문 쪽에 위치한 원룸·하숙촌 모습. <한국일보>는 지난해 10월 ‘대학가 신(新)쪽방촌’ 기사에서 서울 사근동 한양대 일대의 불법 ‘쪼개기’ 원룸 실태를 고발했다. 서울 곳곳에 있는 ‘신쪽방촌’에서 적잖은 대학생, 취업준비생, 초보직장인 등이 수천만원 보증금에 몇십만원 월세를 내며 ‘곧 떠날 테니 참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 홍연

홀몸 노인 등 빈곤층이 모여 사는 서울 동자동 쪽방건물을 부유층이 투자자산으로 소유하고, 고급아파트인 ‘타워팰리스’보다 평당 임대료를 높게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 전에 드러났다. 없는 사람의 주머니를 터는 ‘빈곤 비즈니스’는 대학가에서도 기승을 부린다. 방 쪼개기는 불법이지만 당국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적발돼도 과징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건물주들은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인 14㎡(4.2평)에 못 미치는 방을 겁 없이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대학의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고, 역세권에 청년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짓는 것을 물리력으로 막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의 20~34세 청년가구 중 20.2%가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공간에 살고 있다. 그것도 평당 임대료를 강남아파트보다 비싸게 물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이 탐욕스런 빈곤 비즈니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최저주거기준을 어기는 임대사업자를 단속하고, 이행 강제금을 ‘살 떨릴 만큼’ 올려야 한다. 잘게 쪼갠 방들을 원상복구 하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청년 주거시설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대학 기숙사는 원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야 하고, 역세권의 청년임대주택도 과감히 늘려야 한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에게 5평 정도의 주거공간을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에 임대하는 청년임대주택은 주민들이 ‘빈민 아파트’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주춤하고 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서울시 인허가를 받은 청년주택은 1만 6341실로 목표치인 3만 1000실의 절반에 불과했다.

청년들도 직접 나서야 한다. 오는 4월 총선에서 각 정당에 청년주거 정책 제시를 요구하고, 현실적 대안을 내놓는 후보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직접 따지고 요구하지 않으면 현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햇빛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쪽방, 고시원, 원룸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고 화가 나는가. 그렇다면 일어나서 ‘빈곤 비즈니스’에 저항하고, 청년 몫의 주거복지를 목청 높여 요구해야 한다.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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