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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박물관’으로 돌아온 우리 학교

기사승인 2020.02.01  13: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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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⑩ 여주 여성생활사박물관

“아하, 옛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남한강이 흐르는 여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부지역 교통 요충지였다. 여주 인근 16개 나루에는 한양으로 가는 물자를 실은 배들이 줄지어 드나들었고 마을들이 번성했다. 육로 교통까지 발달한 여주는 지금 11만 명쯤 사는 중소도시다.

그중에서도 여주시 강천면은 남한강 한가운데 떠있는 강천섬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를 거쳐 흘러 내려온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수운 중심지였다. 강천이란 지명은 ‘편안할’ 강(康)에 ‘내’ 천(川) 자를 써서 말 그대로 ‘편안한 강’이란 뜻이다. 물살이 급하지 않고 두 강이 합류하면서 강폭이 넓어 ‘모든 배들이 편안하게 쉬어 가는 곳’이란 데서 유래했다.

   
▲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굴암리 여성 생활사 박물관 전경. ⓒ 윤상은

강천섬에서 나와 강천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1km쯤 가면 좁은 시골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2층짜리 폐교 건물이 나타난다. 1971년 개교해 1999년까지 440명이 졸업한 강천초등학교 강남분교다. 어린이들이 줄어들자 분교는 본교인 강천초등학교에 통합됐다. 아이들이 떠난 이 건물은 지난 2001년 여성생활사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천연염색가인 이민정 관장이 30년 동안 수집한 여성생활 관련 유물 3천여점으로 박물관을 설립한 것이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강 한가운데 펼쳐진 강천섬 풀밭에는 요즘 캠핑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남이섬의 1.3배 정도 되는 이 섬은 가을이면 은행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인근 신륵사와 명성황후 생가, 세종대왕 영릉 등을 보고 이곳 강천섬에 들렀다 잊지 말고 가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여성생활사박물관이다.

   
▲ 오래 전 아이들이 뛰어다녔을 복도는 박물관 내부 통로이자 전시실로 바뀌었다. ⓒ 윤상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옛 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 ‘체력은 국력’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쓰인 동상들이 남아있다. ⓒ 윤상은

유물에서 여성 중심 가족공동체를 본다

2층짜리 폐교 건물은 곳곳이 전시관으로 채워졌다. 관람 시작점인 2층 제1∙2전시실에서는 여성의 옛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가부장제 사회였다. 가부장이 집안과 나라를 이끌었다. 하지만 가족공동체의 생활 구석구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여성이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생계 수단인 농사 일은 물론, 베를 짜서 옷을 만들고, 매일 음식을 차리는 등 가족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데 여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진열된 유물에도 여성의 노고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베틀은 뻐근한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베를 짜는 어머니를, 인두와 다리미는 뜨거운 열 앞에서 빨개진 여성의 볼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옆으로 진열된 비녀는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도 사람들에게 단정해 보이려고 아침마다 머리를 단장하는 여성의 마음씨가 담겨 있는 듯하다.

 
제1∙2전시실에는 여성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첫 번째부터 가마, 국수틀, 다림질 도구, 비녀 등 장식품, 베틀, 백동장 ⓒ 윤상은

선조들의 생활상과 지혜를 한눈에 

 
제1전시실에는 신라 토기(첫 번째)와 고려 청자(두 번째)가 진열돼 있다. ⓒ 윤상은
 
1층 천연염색 전시실(첫 번째)와 천연재료로 물들인 천(두 번째).

여성생활사박물관 전시품 중 상당수는 이민정 관장의 수집품이다. 이 관장은 천연염색 전문가로 활동하며 취미로 다양한 문화 유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제1전시장에서 고대 유물인 신라 토기부터 고려 청자 등 오래된 문화유산도 만날 수 있다. 비녀 괘불노리개 버선본집 골무 바느질그릇 씨아 종이삿갓 경대 재봉틀 실꾸리 떡살 다식판 돌다리미 베틀 은가락지 물레 등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사용하던 살림도구와 생활용품들도 전시돼 있다.

1층으로 내려와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에 가면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천연염색 전시장이 나온다. 조상들은 베를 짜거나 짐승의 가죽과 털 등으로 옷감을 만들고, 식물의 잎과 줄기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해 옷감에 물을 들였다. 흙과 진흙도 좋은 염색 재료였다. 천연 염색은 한번에 진한 색이 나오기 어려워 두세 번 염색을 반복하는 정성이 들어간다. 기계로 합성 화학 염료를 빠르게 물들이는 것보다 느리지만, 자연의 색을 고스란히 천에 담을 수 있다.

문화∙역사가 살아나는 기획전

 
여성생활사박물관의 기획전 ‘제7회 왕후를 만나다’ 1전시실 ‘마음으로 만난 고종’에 고종 문집이 있다. ⓒ 윤상은

1층 천연염색 전시관 옆에는 기획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여성생활사박물관은 기획전을 통해 상반기에는 옛 풍습을 조명하고, 하반기에는 역사적 인물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2일부터 올 1월 31일까지 ‘제7회 왕후를 만나다’ 기획전이 열렸다. 제1전시실에서는 고종문집 ‘주연집’(珠淵集)이 전시됐고, 제2전시실에서는 인동장씨 장사원가(張師遠家)의 기증유물이 전시됐다. ‘주연’은 고종황제의 호라고 한다.

고종의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는 지적과 난국 속에서 황제에 올라 독립을 꾀하고, 끊임없이 개혁∙개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가 있다. 제1전시실 ‘마음으로 만난 고종’에서는 고종 문집을 전시해 한 인간으로서, 군주로서 고뇌하던 고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서로운 눈’을 뜻하는 서설(瑞雪)이란 시에는 그의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다.

서설에 백성들 풍년 맞이하리니
백성이 먹으면 나 또한 먹으리 
또 이처럼 융성한 때에 
가난한 이는 어찌 옷 입을까?

이런 시를 비롯해 37개 주제, 39수 시가 전시됐다. 자연에 관한 감상과 서정적인 내용을 담은 시와 선대 임금들을 칭송하거나 후사를 튼튼히 하고자 하는 심정, 치세와 애민이나 군신 간의 정리를 표현한 시 등으로 나누어 전시됐다.

교정에 아이들 웃음소리 다시 들리고…

 
여성생활사박물관은 ‘2019 박물관 문화가 있는 날’에 민속 장난감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 윤상은
   
▲ 1층 교육실에서는 궁궐 한복 체험과 다도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윤상은

여성생활사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문화 체험을 진행했다. 지난해 9~12월 매주 마지막 주 수∙금∙토∙일요일에 ‘민속 장난감 만들기’ 활동이 이어졌다.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은 톱질로 나무 토막을 썰고, 사포로 표면을 문질러 나무 장난감을 만들었다. 목공예 체험을 처음 한 어린이가 엄마에게 “톱질 학원 보내줘”라고 할 만큼 흥미를 끌었다. 박물관은 상시 체험으로 궁중 한복 체험과 다도 교육도 진행한다.

유물소장품과 특별기획전시회, 야생화 연못 반딧불이 밤하늘보기 등 ‘볼거리’와 천연염색체험, 전래놀이 다도 예절교육 도자공예체험 버선만들기 자전거타기 등 ‘즐길거리’, 메주쑤기 장담그기 김치담그기 떡만들기 등 ‘먹을거리’가 많은 박물관이다. 눈으로 유물을 보기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감으로 우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서 사람들은 시골길을 차로 달려 박물관을 찾는다.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최유진 기자

윤상은 기자 nadf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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