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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빼곤 쓸 수 없는 ‘공장과 노동의 역사’

기사승인 2020.01.28  17: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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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인천시립박물관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

지난해 10월 8일부터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2019 인천 민속문화의 해’를 맞이해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 특별전을 열었다. 광복 이후 인천 공업의 역사와 노동자의 생활문화를 소개하는 각종 유물과 영상이 전시됐다. 이 전시회는 1960년대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따라 부평(수출 4단지, 1969)과 주안(수출 5·6단지, 1973~1974)에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제조업 중심 공업도시로 변모한 인천의 과거를 돌아보고,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한 전∙현직 노동자들을 조명했다.

성냥∙설탕∙제분공장이 인천에 들어선 이유

   
▲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 전시회에서는 인천 노동 역사를 배경으로 한 전시물과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 윤종훈

전시장에 들어서면 성냥, 밀가루, 설탕 등 생활용품과 식품의 변천사, 그리고 이를 만든 공장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인천은 이들 제품의 원료를 수입하기 쉽고 서울이라는 최대 소비지를 끼고 있어 공장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입지였다.

인천의 대표 식품업체로 1952년에 설립된 대한제분은 1956년 기준 전국 소맥분 총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한국전쟁과 흉년에 따른 식량부족 문제에 대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60년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 주도로 ‘혼분식 장려운동’을 추진하면서 제분업이 활성화했고, 짜장면이나 라면, 칼국수 같은 밀가루 국수가 싼값으로 대중화했다. 이후 인천에는 1969년에 제일제당 공장, 1979년에 대한제당 공장이 들어섰다.

   
▲ 대한제분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 밀가루가 포장되고 있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1950년대 대한제분 밀가루 상표는 곰표, 코끼리표, 독수리표, 공작표, 암소표 등 동물을 사용했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인천-서울 화물차는 대부분 비누공장 차?

라이터가 발명되기 전인 1917년에 인천에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 성냥을 생산하는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세워졌다. 성냥 원료인 염소산칼륨을 수입하기에 지리상으로 유리했다. 고려성냥, 송현성냥, 조선성냥 등 인천 동구에 많은 공장이 들어선 가운데 1948년에는 대한성냥공업이 인천을 대표하는 공장으로 자리 잡았다. 1912년 지금의 중구 송월동에는 ‘애경사’라는 비누공장이 세워졌고, 1954년 이를 인수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창업됐다. 애경유지공업에서 만든 ‘미향비누’는 한때 한 달에 백만 개를 팔아 인천과 서울을 왕래하는 화물 차량의 대부분이 ‘애경유지’ 차량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애경유지공업에서 생산한 미향비누 광고. 광고 속 비눗갑에 한자로 ‘인천공장근제’라고 쓰여 있다. ⓒ 윤종훈

비 오는 날 파전과 함께 곁들여 먹는 막걸리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1지역 1탁주공장’ 정책에 따라 11개 양조회사가 모여 1974년 부평구 청천동에 인천탁주합동회사를 세웠다. 막걸리를 쌀로 만들 수 있는 법이 통과되자 1990년 양조장 업계 최초로 쌀막걸리를 출시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시장을 열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소성주’는 인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대표 쌀막걸리로 자리 잡았다.

   
▲ 인천탁주합동회사에서 만든 향가 막걸리와 소성주가 전시돼 있다. ⓒ 윤종훈

제분∙방직공장 터에 들어선 중공업공장

생활용품뿐 아니라 산업기반시설의 발전상도 살펴볼 수 있다. 인천항이라는 물류 환경을 배경으로 도시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와 목재, 유리, 화약, 철근 등 수요가 많아지면서 산업기반시설의 기자재를 생산하는 공업이 활성화했다. 1930년대 일본은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으면서 인천 동구와 미추홀구 일대 해안이 매립돼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게 된다. 이 지역이 오늘날 인천의 임해공업지대라 불리는 곳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일진전기, 동국제강, 현대제철 등은 1930년대 건설된 제분공장과 방직공장, 중공업공장 등의 터에 들어섰고 지금 인천 산업의 근간이 됐다.

   
▲ 동구의 동쪽 해안에 나란히 서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일진전기, 동국제강, 현대제철 등 공장들은 1930년대에 건설된 공장 터에 들어섰다. ⓒ 윤종훈
   
▲ 1959년 한국화약 인천공장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1962년 부평 새나라자동차(한국GM 전신)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의장.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1957년 설립된 인천 판유리공장 준공식.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의 복구와 현대 건축양식 보급으로 급증한 판유리 국내 수요를 대부분 충당했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1970년대 인천 판유리공장 내부 모습. ⓒ 국가기록원
   
▲ 현대제철 중형제강 연속주조반에서 착용하는 작업복장. 고온의 쇳물이 튀어도 쉽게 불에 타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졌다. ⓒ 윤종훈

한국 최초 여성 노조지부장이 벌인 일

인천에 정착한 노동자들은 소박한 살림살이를 꾸리고 직장 공동체를 만들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8년 동구 만석동에 있던 동일방직 인천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탄압한 사건을 소개한 전시물들이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동양방직에서는 1966년부터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인천산업선교회의 도움을 받고 노동운동이 전개됐다. 당시 동양방직은 다른 공장들보다 월급도 많고 식사와 기숙사를 제공해 여성 노동자들이 선망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휴일 근무와 잔업, 철야노동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등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 작업복을 입은 동일방직 노동자들. ⓒ 이총각
   
▲ 동일방직에서 노무관리의 일환으로 마련한 사내 축제 ‘미스동일선발대회’.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당시 1,400여 명 여성 노동자들은 작업장에 솜먼지가 많아 무좀이나 땀띠, 버짐으로 고생했다. 1972년 동일방직 노동조합에 주길자 씨가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지부장에 선출되면서 임금 인상이 체결되고, 탈의실이나 목욕실 설치, 생리휴가와 기숙사 설립 등 여성 조합원들의 복지가 개선됐지만 회사측 압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 동일방직 노동조합 집행부 단체사진. 우리나라 최초 여성 지부장 주길자(가운데) 씨와 제3대 지부장이 되는 이총각(뒷줄 왼쪽 셋째) 씨가 보인다. ⓒ 이총각
   
▲ 이총각 동일방직 전 노조지부장은 전시 영상을 통해 ‘가톨릭노동청년회(J.O.C)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밝혔다. ⓒ 윤종훈

유신 말기였던 78년 2월 21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정기대의원 투표 날 새벽 6시에 회사와 한 편이 된 남성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로 들어와 투표하러 오는 여성 조합원들 얼굴과 옷에 똥물을 뿌렸다.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사건’이다. 노조는 사건 닷새 전 파출소에 보호신청을 했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방관만 했다.

   
▲ 1978년 2월 21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대의원 투표일에 회사 사주를 받은 남성 조합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뿌리는 등 민주노조 탄압의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 윤종훈

노골적인 노동조합 탄압에 당시 이총각 동일방직 지부장을 비롯한 여성 조합원들은 단식과 시위 투쟁에 나섰지만 이를 빌미로 같은 해 4월 1일 이 지부장을 포함한 124명이 집단 해고됐다. 해고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마저 좌절됐다. 2001년 정부는 동일방직 해고 조처가 부당한 해고임을 인정하고 해직자 중 일부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노동운동으로 기록됐다.

   
▲ 회사측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다 해고된 박남수 코리아스파이서 전 노조위원장이 법정 투쟁 9년만인 1990년 복직해 작업복을 새로 받아 입는 ‘착복식’ 행사를 열었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박남수 전 노조위원장이 해고무효 확인 및 임금 청구와 추가 임금상승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자료들을 모아놨다. ⓒ 박남수
   
▲ 자동차 동력전달장치와 변속기를 제작했던 박남수 코리아스파이서 전 노조위원장은 전시 영상에서 ‘내가 만든 부품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대단한 일을 한 마냥 마음이 뿌듯했다’고 회고했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1986년 5월 3일 인천 주안역 앞 시민회관 일대에서 벌어진 인천5∙3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사진들이 전시의 끝을 장식했다. 이날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은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투쟁은 87년 6월항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한 노동자들은 87년 7월부터 9월까지 노동환경 개선, 노동3권 보장, 권익 향상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투쟁에 들어갔다. 인천에는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영창악기, 경동산업 등 주요 기업들이 파업에 들어가며 1,500여 개 노동조합이 새롭게 결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인천5∙3민주항쟁 시위 현장 사진.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아직도 풀지 못한 노동운동의 숙제들

동일방직, 반도상사, 코리아스파이서, 현대제철… 파업과 투옥 등 온갖 고초를 겪었던 인천의 노동자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일했고 사람답게 살고자 적극적으로 투쟁했다. 그들의 헌신과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경제의 발전을 이끌었고 과거보다 근무 여건이나 급여 등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 산재사고, 노조탄압 문제 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인천 공업의 발전과 노동자들이 투쟁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는 2월 16일까지 열린다.


편집 : 박동주 기자

윤종훈 기자 yoonjh23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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