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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괴테의 길 따라 ‘야반도주’했다

기사승인 2020.01.27  21: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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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교양특강] 조문환 작가, 공정여행 놀루와 대표

“괴테는 태어나기 2000년 전 로마의 거대문물을 그랜드 투어했고, 연암은 자기가 살던 시대 선진 문물을 탐사했어요. 괴테는 과거를 반추하고 싶었고, 연암은 지금 세상을 보고 싶었던 거예요. 열하 기행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연암을 만들어냈고, 괴테의 1년 6개월 그랜드 투어는 오늘날 괴테를 만들어냈어요.”

   
▲ 조문환 작가가 연암과 괴테를 따라 인문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박서정

주민 공정여행 놀루와 대표이기도 한 조문환 작가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괴테와 함께 떠나는 이탈리아 인문기행’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는 시인 겸 작가로서 집필활동을 하면서 협동조합인 ‘주민 공정여행 놀루와’ 대표로서 다양한 인문여행을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괴테를 따라 이탈리아·로마 인문기행> <시골 공무원 조문환의 하동 편지> <섬진강 에세이,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 <바람의 지문> 등을 출간했다.

하동군청 과장으로 일하던 조 작가는 정년을 7년 앞두고 퇴직한 뒤, 여행을 떠났다. 2017년에는 석 달 동안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들고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고, 지난해부터는 연암 박지원의 여정을 참고하며 중국을 오가고 있다. 혼자 여행하면서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등 ‘사고’도 많이 쳤다. 그는 “누군가 정해 놓은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것도 여행일 수 있지만, 내가 주관해서 떠나는 게 진정한 여행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공직이라는 틀도 누군가 정해 놓은 패키지여서 진정한 (인생) 여행을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괴테와 연암, 중년에 집을 떠나다

   
▲ 18, 19세기를 산 연암과 괴테는 비슷한 연배에 귀족 신분이었다. 괴테는 30대 후반에, 연암은 40대 초반에 로마와 열하로 인문기행을 떠났다. ⓒ 조문환

“괴테는 37세에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부 한 명만 구해서 1년 반 동안 여행을 떠나요. 몇 달 뒤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요. ‘내가 여기에 와있다, 이탈리아에. 걱정하지 마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괴테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무장관으로 재직했다. 그는 37세에 ‘야반도주’를 떠났다. 조 작가는 “인생의 야반도주를 떠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괴테는 이미 23세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날개는 있었지만 써먹을 수 없다'고 썼다”면서 “독수리보다 강한 날개가 있었지만 아무 필요 없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인물이지만 끊임없이 인생이 무엇인지 갈등한 것이다.

   
▲ 조문환 작가는 연암이 다녀온 길을 따라 중국 하북성‘열하’일대를 여행했다. 위는 연암이 다녀온 길이고, 아래는 조 작가가 방문했거나 다녀올 지역이다. ⓒ 조문환

“오호라, 내가 여기서 한번 울고 싶구나. 여기가 정말 울고 싶은 땅이구나.”

우울증이 있던 연암은 마흔살까지 폐인과 같은 생활을 했다. 저자거리에서 상인들과 밤새 술 마시고 토론하며 보냈다. 1780년 5월, 팔촌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사신으로 떠나게 된다. 연암은 요동반도로 가는 길에서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을 보고 통곡한다. 조 작가는 “좁은 조선 땅에서 보다가 끝이 안 보이는 거기서 목놓아 울고 싶은 것”이라며 “40년 동안 살아오면서 분출하지 못했던 고뇌”라고 설명했다.

길에서 만나는 역사

   
▲ 조문환 작가는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괴테가 다녀간 길을 참고했다. 빨간 선은 괴테, 파란 선은 조 작가가 다녀온 길이다. ⓒ 조문환

중국 심양은 병자호란의 출발점으로 우리 역사와 밀접하다. 조 작가는 “현재는 비행기를 타고 심양에 갈 수 있지만 한 달 꼬박 걸었던 연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18시간 배를 타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배에서 일출을 보며, 연암을 떠올렸다. 그는 “연암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수행원에게 ‘자네는 길을 아는가’라고 물었다”며 “인생의 길을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1736년 병자호란 당시 심양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서 조선인 50만 명이 붙잡혀 간 곳이었다. 조 작가는 “연암이 다녀온 길이 이런 아픈 역사가 담긴 길이었다”고 말했다.

괴테는 볼로냐에서 “신앙심이 예술을 높였지만, 신이 지배하면서 침몰시켰다”는 말을 남긴다. 조 작가는 이를 두고 “괴테가 볼로냐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테는 속이 뒤틀리고 아니꼽고 더러웠던 자기 속내를 외쳐버린 것이다. 조 작가는 “연암 또한 <일신수필>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고 소개했다. <일신수필>에 따르면, ‘일류’ 선비는 오랑캐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하고, ‘이류’ 선비는 오랑캐를 토벌해야 한다고 열 올린다. 연암은 스스로를 ‘삼류’ 선비라 일컬으며, 실용적인 청나라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 작가는 “당시 정부와 정조에 반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테의 여정에 큰 획을 그은 세 도시가 있어요. 베네치아에서는 예술에 관한 시각, 로마에서는 건축물, 나폴리에서는 자연경관에 관한 시각을 키웠어요. 로마를 대제국으로 만든 것은 ‘인재’라고 생각해요. 관용, 동맹, 지도층의 헌신이 로마제국을 만들어낸 힘이에요.”

조 작가는 괴테와 연암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다, 자기만의 여정을 걷기도 했다. 그는 우리 인생에 때로는 괴테나 연암이 여행에서 행한 자명(自鳴, 스스로 욺)과, 괴테와 여정을 함께한 화가 티슈바인처럼 ‘야반도주’에 동행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걸을 때는 적게 되고, 적으면서 걸었다는 뜻으로 직접 만든 말인 ‘걷자생존’을 강조하며,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원종원, 안치용, 이택광, 김용락, 조순환, 권순긍, 조효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현균 기자

이자영 박서정 기자 outsidebox94@gmail.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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