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유해 콘텐츠’ 차단 방송법 개정 시급

지난해 1월 한 BJ가 술 취한 상태로 운전하며 ‘음주운전 생방송’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이었지만, 별다른 제재 없이 2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7월에는 한 유튜버가 개인방송 중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침대 위로 내던지고, 목을 조르고, 여러 차례 얼굴을 때리며 학대해 경찰이 출동했다. 9월에는 ‘청소년 자살 송’ 영상이 인터넷방송을 통해 유행하기도 했다.

음주·동물학대·성범죄도 조회수만 올린다면…

일부 BJ는 성범죄까지 저질렀다. ㄱ 씨는 방송 도중 여성 지인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얼굴을 폭행해 경찰에 입건됐다. 최근에는 BJ들이 ‘합방’(합동방송) 중 여성 BJ를 성희롱해 논란을 일으키자 사과문을 올린 사례도 있다.

이들은 선정적인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려 조회수와 수익을 올린다. 이를 위해 성소수자나 장애인을 조롱하는 혐오 콘텐츠를 만들고, 꼴페미∙한남충 같은 단어를 사용해 젠더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개인방송은 방송법이 규정하는 ‘방송’이 아니라는 이유로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 방송과 인터넷 개인방송 규제 비교.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은 인터넷 개인방송이 방송법 규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 국회입법조사처

유튜브나 아프리카TV는 ‘방송’처럼 보이지만 ‘방송’이 아니다. 방송법에서 규정하는 ‘방송’은 지상파방송, 종합유선방송, 위성방송, 중계유선방송 등에 한정된다. 인터넷 개인방송 콘텐츠는 전기통신사업법의 규제를 받는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된다. 정보통신 콘텐츠도 심의규정을 준수해야 하므로 성행위와 관련된 묘사나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 등은 제재를 받는다. 다만 그 기준이 지극히 모호하다.

개인방송 주 소비자는 청소년

작년 1월 경희대 연구진이 방통심의위 의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 13~18세 중·고등학생은 하루 두 시간가량 개인방송을 시청한다. 플랫폼 별로는 유튜브(36.4%), 아프리카TV(16.8%), 트위치TV(16.6%), V앱(11.7%), 네이버TV(11.6%) 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적절한 콘텐츠는 특히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의 개인방송 콘텐츠 소비 증가에 맞물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해성 영상이 문제라는 점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지만, 개인방송 규제를 놓고는 말이 많다.

▲ 김성수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전부개정법률안'은 전송수단에 관계없이 공중에 송신하는 내용물을 ‘방송프로그램’으로 규정한다. 이 개정안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부가통신사업으로 분류되던 티빙, 푹, 넷플릭스 등의 OTT(유튜브 제외)를 통신이 아닌 방송의 영역으로 포괄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 김성수 의원실

개인방송에 공적 책무 부여 논란

2008년 1월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발의안은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유통하고 제공하는 사업자(넷플릭스 등 OTT), 그리고 이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공급하는 자(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 등)도 방송사업자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게 되면 크리에이터도 등록∙신고 절차를 거쳐야 해 인터넷 방송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콘텐츠 내용도 규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방송협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제공하는 미디어 서비스는 방송법이 규정한 방송의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며 “방송이 아닌 것을 방송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인터넷 방송이 공정성∙공공성을 유지하는지 심의받고, 품위유지∙건전성 등 엄격한 심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면 재미가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해당 사항을 위반하면 방통위 등으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벌금∙과태료 등을 부과받게 되므로 인터넷 방송 산업이 축소될 수도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리란 우려도 있다. 방송법에서 규정하는 ‘방송 콘텐츠’는 대중매체로 전파되므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방송은 공공재인 주파수를 활용하는 데다 불특정 다수 대중을 향해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보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한정된 소수 방송사업자가 콘텐츠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서 공적 책무 수행 규제가 정당해진다. 인터넷방송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양방향적 매체다. 플랫폼 사업자나 크리에이터가 시장에서 독점력을 부여받은 적도 없으므로 국가에 의한 공적 책임 부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규제 반대측 주장이다.

적극적으로 규제에 나서는 외국  

독일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지만, 인터넷 개인방송 콘텐츠 규제에는 적극적이다. SNS에 차별이나 혐오 표현이 들어간 게시물을 올리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플랫폼 사업자는 혐오 표현이 발견된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기타 불법 콘텐츠를 7일 안에 삭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5,000만 유로(약 645억 원)에서 500만 유로(65억 원)까지 벌금을 물린다.

개인방송에 관한 직접 규제는 아니지만, 일본은 2016년부터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대책법’을 시행중이다. 일본 법원은 한 혐한 단체가 교직원조합에 난입해 혐오 발언을 한 행위에 436만 엔(약 46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 역시 길거리에서 여성을 성희롱하는 캣콜링에 최대 750유로의 벌금을 매긴다. 

국내 학계 규제 반대 많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개인방송 사업자를 방송사업자에 포함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대 권은정 박사는 "1인 미디어는 콘텐츠 생산의 개방성과 상호 작용성, 개인 문화예술 활동으로서 의미 등에서 기존 방송 매체와 구별되므로 방송 영역으로 포괄해 규제하는 방안은 부적절하다"며 "1인 미디어 창작자의 시장 참여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가장 낮은 수준의 신고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방송을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인터넷 개인방송 산업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규제를 가로막는 강력한 논거다. 그러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의 자유는 구별되어야 한다. 공론장에서 약자를 공격해 시민을 향한 혐오를 조장하고, 이목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콘텐츠가 ‘공적 방송’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재 없이 유통되는 것은 곤란하다. 수십에서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가 제작하는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보다 영향력이 크다.

문제가 있는 콘텐츠에 공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그런 콘텐츠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범죄를 부추길 수도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최소한의 규제라도 필요하다. 국내 온라인 영상서비스 시장 규모는 올해 8,000억 원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무분별한 개인방송 콘텐츠가 범람하지 않도록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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