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붕괴시대] ① 스포츠 덮치는 온난화 파장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스키장은 따뜻한 날씨 때문에 2019년 개장일을 예년보다 1주일 늦췄다. 11월 22일 일부 슬로프만 가동을 시작한 뒤 12월 말에야 18개 슬로프를 모두 열었다. 스키장경영협회에 따르면 협회 등록된 국내 스키리조트 18곳 대부분이 2019년 시즌 개장을 예년보다 며칠씩 늦췄다. 

지난 1989년 문을 열었던 충북 충주 주정산의 수안보 이글벨리리조트 스키장은 온난화와 이용객 감소 탓에 여러 차례 휴장을 거듭하다 지난 2017년 폐장했다. 겨울철 이상고온이 계속되면서 인공 눈을 더 만드는 등 개장 준비에 5억~7억원 이상 투자가 필요해지자 운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뜻하고 눈 적어진 겨울, 스키장 폐장까지 

▲ 국내 스키장 대부분이 충분히 춥지 않은 겨울 날씨 때문에 예년보다 개장 일정을 늦춘 데다 인공 눈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부담 등으로 경영상의 압박을 겪고 있다. 사진은 제설을 하고 있는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의 모습이다. ⓒ 용평 리조트 홈페이지

기상청이 발표한 ‘2019년 12월 기상 특성’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2.8도(°C)로 평년 기온인 1.5도보다 1.3도나 높았다. 스키장 가동에 중요한 적설량도 줄었다. 24시간 동안 새로 내려 쌓인 눈 중 가장 많이 쌓인 곳의 깊이를 뜻하는 최심신적설(最深新積雪)의 12월 합계는 0.3센티미터(㎝)로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 우리나라 주변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던 탓이다. 

국내보다 사정이 더 심각한 곳도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유럽 여러 나라에 걸친 알프스산의 만년설이 녹아 동계스포츠 광고촬영지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알파인 스텔비오 스키장과 스위스 샤르메 스키 리조트 등이 잠정 폐장했다. 문을 닫는 스키 리조트가 늘면서 부근에서 숙박업, 식당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주민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 기존엔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었지만 기후변화로 눈이 녹아 맨땅을 드러낸 해발 3000미터의 이탈리아 알파인 스텔비오 스키장. ⓒ KBS 뉴스

‘기후변화로부터 겨울을 보호하자’는 활동을 벌이는 미국 환경보호단체 POW(protect our winter)는 2012년 보고서를 통해 ‘미국 스키 리조트의 약 88%가 계절마다 제설에 의존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앞으로 인공제설 비용이 더 늘어 스키장 운영의 채산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계올림픽 열 수 있는 도시가 사라진다 

스키, 스노보드, 바이애슬론 등 눈 위에서 겨루는 종목이 많은 동계올림픽은 수십 년 내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워털루대학 연구진이 2014년 발표한 ‘기후변화는 동계올림픽 개최 장소를 제한할 것(Climate change will limit where the Winter Olympics can be held)’ 보고서를 보면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중국 베이징을 포함한 21개 역대 개최도시 중 13곳만이 2050년 동계 경기를 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2080년엔 그 숫자가 8개에 불과할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웨이 오슬로나 캐나다 밴쿠버 등 널리 알려진 동계스포츠의 성지도 이 8곳에 들어가지 못했다.

▲ 기후변화로 겨울철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동계올림픽을 열 수 있는 도시가 줄어들고 있다. ⓒ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1920~5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의 평균 기온은 0.4°C였는데, 1960~90년대에는 3.1°C로,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7.8°C로 상승했다. 이 기온이 21세기 중반에는 추가로 1.9~2.1°C, 21세기 후반에는 2.7~4.4°C 상승할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다.

해수면 상승과 잔디 질병으로 골프·축구 등 차질 

영국 내 130개 비정부기구가 모인 기후연합(the climate coalition)은 2018년 발표한 ‘기후변화가 어떻게 영국 스포츠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Game changer: How climate change is impacting sports in the UK)’ 보고서에서 동계 스포츠만 걱정할 일이 아님을 일깨워주었다. 로열트룬, 로열리버풀, 뮤어필드 등 스코틀랜드의 주요 골프장들이 21세기 내에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고, 영국 축구팀들은 잔디 사정과 무더운 날씨 때문에 매 시즌 평균 5주간 경기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 보고서는 경고했다.

지난 2017년 8월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0대 0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축구팀의 신태용 감독은 “잔디가 너무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다”고 작심 비판했다. 여름 폭염으로 심각하게 병든 잔디 때문에 잔디를 새로 심었지만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선수들이 뛰다가 걸려 넘어지는가 하면 패스한 공이 멈추기도 했다. 잔디가 경기력에 지장을 준 것이다.

▲ 지난해 10월 인천시 도원동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잔디 모습. ‘탈모’ 현상에 대한 지적으로 몇 차례 개보수작업을 했는데도 패인 부분이 듬성듬성 남아있다. ⓒ 정재원

우리나라 축구장은 서늘한 환경조건에서 잘 자라는 캔터키블루그래스 등 ‘한지형 잔디’를 심는데, 갈수록 여름 폭염이 심해지면서 잔디 밀도가 떨어지고 고온성 병충해가 증가하며 말라죽는 현상이 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운영처 시설팀 심성호 차장은 “전국의 월드컵경기장이 지어질 당시에는 한국 기온이 평균적으로 그리 높지 않아 문제가 없었지만, 2010년대 이후 국내 기후가 아열대화하면서 점차 잔디 뿌리가 썩고 곳곳이 파이는 등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잔디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여건이 안 돼 매번 잔디를 교체하고, 대형 송풍기를 더 돌리는 등 비용증가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 말에 나온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관리 매뉴얼’을 보면 경기장이 지어질 당시인 2001~2010년 8월 평균 최고기온 29.5도에 비해 2016년 평균 최고기온은 32.6도로 높아졌다. 곳곳이 벗겨지고 패인 ‘탈모’ 잔디에 선수들과 관중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잔디 아래에 난방과 냉각을 할 수 있는 ‘히팅 앤 쿨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경기장 한 구석에서 잔디 생육 실험도 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해당 사업을 접었다.

기후변화 적응 위해 막대한 비용 필요 

골프장들도 잔디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기후변화로 잔디 생육조건에 맞는 기온, 물, 일조량을 확보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여름철 이상기온으로 잔디 뿌리가 썩는 ‘썸머 패치’ 병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열린 한국골프산업박람회(KGIS) 심포지엄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잔디 환경 스트레스 대응전략’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스포츠업계는 기후변화가 경기 운영비용 등에 큰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3~11월 사이에 열리는 축구와 야구는 시즌 중반인 7~8월에 경기가 몰릴 수밖에 없는데, 기후변화로 폭염과 폭우, 태풍 등이 잦아지면서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 관중감소, 경기 연기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기장 안에 냉방장치를 가동하거나 폭우, 태풍 등을 차단하는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2022년 월드컵 개최지인 카타르를 보면 개막전이 열리는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의 기존 경기장에 6만석 규모의 냉·난방장치를 추가하는 등 개보수 공사비로만 3억 달러(약 3500억)를 썼다. 이는 가장 최근인 2019년 건설된 경기장 디지비(DGB)대구은행파크 건설비의 5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지출이다

▲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경기가 열릴 카타르 도하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냉방시스템 등을 추가 설치하는데 약 3500억원이 들었다. ⓒ KBS 뉴스

스포츠를 즐기려면 선수·관중도 ‘기후행동’ 나서야 

지난 2018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유엔(UN) 기후변화협약총회(COP24)에서는 ‘UN 기후변화를 위한 스포츠협약’이 발표됐다. 스포츠단체부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었다. 경기장 조명에 태양광전기를 쓰는 등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에 경기단체 및 관련기업들이 앞장설 것, 스포츠와 관련한 기후행동으로 시민들 간의 연대를 창출할 것 등이 포함됐다. 이 협약에는 2019년 9월 기준으로 14개의 국제연맹(IFs), 3개 올림픽 조직위원회(도쿄·베이징·파리) 등 80개 스포츠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윤희 선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도 기후변화가 스포츠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인식이 늘면서 선수들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후변화로부터 동계올림픽을 지켜주세요’ 등의 퍼포먼스처럼 기후변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자동차 사용 줄이기, 비행기 타지 않기 등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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