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들의 시선] ⑬

새해다. 촛불정신을 구현할 숱한 사회개혁 과제들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4·15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어떻게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까 당리당략에 충실하다. 다시 언론이다. 개혁의 성공도, 선거혁명도 제대로 된 언론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3년 전 촛불에서 언론의 야누스적 두 얼굴을 확인한 바 있다. 언론이 망가졌을 때 권력은 부패했고, 언론이 살아있을 때 촛불혁명이 가능했다. 신년 첫 [청년기자들의 시선]은 언론이다. 청년기자들이 언론사 사장이 되어 언론의 시대적 사명과 역할을 주문한다. (편집자)

<KBS 사장 신년사>

뉴스가 달라져야 신뢰가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KBS 사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0년 경자년은 공영방송 KBS가 47년이 되는 해입니다. 신년이지만 오늘 쓴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우리 KBS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방송사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애정 어린 말씀으로 받아들여주십시오. 최근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로 여러분이 의기소침한 것으로 압니다. 정경심 교수 자산관리인이었던 김경록 한국투자증권 PB 인터뷰 논란으로 녹취록 전문을 공개해야 했던 일, <시사직격> ‘한일관계’ 편에서 친일매국적 인식을 드러냈다고 질타받은 일, 단독보도를 위해 독도 소방헬기 영상을 미공개했다고 오해받은 일.... 이미 충분히 내부 반성을 했지만, 다시 이 사안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일들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KBS 신뢰도 저하는 처참한 수준입니다. 이제 만년 2등입니다. 앞서 예를 든 일들이 있기 전 지난해 8월, <시사저널>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를 조사해보니 우리는 15.3%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39.2%를 기록한 종편 채널 JTBC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치가 얼마나 민망하고 송구스럽던지요. 신뢰도와 영향력이 종편 채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오늘이 KBS의 현주소입니다. 석 달 전인 작년 10월에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시민들은 40년째 동결된, 선진국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인 2500원의 수신료조차 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공영방송 KBS는 생존조차 불확실한 위기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공영방송은 다른 언론보다 기대치가 높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기본’이 되어버리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숙명입니다. 우리는 시민의 기대치를 충족하면서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년 4개월 전 파업 때 마주한 뼈아픈 현실을 기억하시는지요? 정권과 유착한 과거를 청산하고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고자 제작을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을 때, 우리는 세상의 관심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공영방송의 뉴스, 드라마, 예능 등의 프로그램이 제대로 방송되지 않는데도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인터넷 콘텐츠가 우리 프로그램을 대체했습니다. KBS가 미디어 생태계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처절하게 느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존재감을 잃은 지금의 KBS에 만족하십니까? 처음 입사했을 때 세상을 바꾸겠다던 포부와, KBS의 구성원이 됐다는 자부심을 여전히 지니고 있습니까?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시스템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공영방송이란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떨어지는 시청률을 끌어 올리고 떠난 젊은 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보도형식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2016년부터 디지털 네이티브 뉴스 <크랩>을 출범해 쉽고 친근한 뉴스로 조회수를 올리고, 방송 뉴스를 쉽게 다시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취재 뒷얘기를 온라인에 공개해 관심을 유도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반세기만에 최초로 메인뉴스 간판에 여성 앵커인 이소정 기자를 세우는 변화를 꾀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제작하는 콘텐츠에 우리만의 특색이 있습니까? 디지털은 가야 할 길입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어 시대에 맞춰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하기 급급합니다. 가벼운 소재를 고르고 젊은 시청자에게 익숙한 영상콘텐츠를 만들어 관심을 유도하지만 전혀 획기적이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전달’에만 익숙한 방송 문법을 탈피해야 합니다. 디지털의 문법은 ‘소비자’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시청자와 소통하고 시청자가 참여하는 크로스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그 안에 저널리즘을 녹여내야 합니다.

▲ 방송뉴스와 달리 디지털 문법에 맞게 형식을 바꾸고 가벼운 소재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일방적인 전달에만 매몰되어 있다. 시청자와 소통하고 시청자가 참여하는 획기적인 멀티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 KBS

지가 메타가 이집트 혁명 당시 시민들이 직접 제보한 콘텐츠로 만든 <이집트에서의 18일>같은 크라우드 소스 다큐멘터리를 보십시오. 기자 내레이션 없이 시민들 증언만으로 얼마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무려 11년 전에 만들어진 <탄광 끝으로의 여행>같은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또 얼마나 재밌습니까? 워싱턴D.C.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웹사이트 <호미사이드 워치 D.C.>는 워싱턴 D.C.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사건을 취재해 보도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 유저들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언제든 범죄에 대해 제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디지털 저널리즘이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하고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시너지를 내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디지털 전환이 우리가 겪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줄 수는 없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입니다. 언론환경이 변하고 뉴미디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다 핑계입니다. 신뢰는 저널리즘의 가장 큰 자본입니다. 언론이 난립할수록 뉴스를 기본으로 하는 저널리즘은 중요해지고, 저널리즘에서 신뢰의 가치는 더더욱 빛을 발합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같은 신문들이 아직도 신뢰를 브랜드 가치로 내세워 강고하게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분골쇄신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죽을 각오로 이전의 낡고 고루한 KBS와 결별하고 보도의 신뢰성을 높여야 합니다. CNN이나 BBC 뉴스는 뉴스마다 리포트 길이가 다릅니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기사에 시간을 더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리포트의 형식도 길이도 천편일률적입니다. 시청자의 관심과 호응을 끌 수 있겠습니까? 포맷은 어떻습니까? 영향력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충분합니까? 뉴스의 신뢰도는 심층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하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이슈 앞에서도 2분 남짓한 리포트로 일관합니다. 형식도 신선하지 않습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취재원도 선진국 공영방송에 비해 부족합니다. 전문가들은 형식과 내용에서 우리 뉴스가 분석력과 심층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사전 제작한 짧은 리포트만 연속해서 나열하는 구태의연한 제작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 시대는 변했는데 KBS는 여전히 낡고 고루한 제작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 KBS

뉴스의 내용을 획기적으로 바꾸려면 출입처 관행을 끊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 출입처에서 받아오는 내용을 앞 다퉈 보도하느라, 뉴스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리포팅 시간을 일정하게 배당받습니다. 공영방송 KBS가 출입처의 나팔수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출입처에서 제공받는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공공재인 전파를 낭비하고 국민의 귀중한 시간을 소모해선 안 됩니다. 출입처 제도가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에 도달하는 디딤돌이기도 합니다만, 출입처 대변인이 되어 보도의 신뢰성을 심각히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출입처를 벗어나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로 세상을 취재하고 탐사하십시오. 보도 자료에 의존하고 기자회견을 받아 적는 수동적인 취재에서 벗어나 길이가 길고 분석력이 돋보이는 뉴스를 만드십시오. 새로운 포맷을 기획하고 뉴스 가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리포팅 길이를 할당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시청자와 소통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고 보도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작방식을 고민해봅시다. 신년에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한국 방송 보도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뉴스로 신뢰를 회복할 때,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새 지평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김정민 기자)

 

<한겨레 사장 신년사>

능동형 언론이 됩시다

'한겨레 사우 여러분, 2020년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갈수록 기사의 정확성과 타당성 여부에 따른 리스크가 폭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그 때문에 체계적인 게이트키핑 강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풀이됩니다. 뉴스의 설득력을 높이지 못하면 독자의 수용성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불안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을 향해 뜻과 마음을 모아간다면, 깊은 밤 뒤에는 밝은 세상이 올 것으로 점쳐집니다. 올 한 해 한겨레 사우 여러분과 가정에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2일 드린 인사말 일부를 각색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제외한 모든 문장의 서술어를 피동형으로 바꿨습니다. 우리가 기사에서 많이 쓰는 표현들입니다. 사우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우리가 평소에 피동형 문장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피동형 문장은 주체가 없어 책임성을 흐립니다. 내용이나 행위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모호합니다. 우리는 기사에서 ‘알려졌다’, ‘전해졌다’, ‘우려가/지적이 나온다’고 말하는데, 누가 알렸는지, 전했는지, 우려하는지, 지적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표현은 소문이나 추정, 또는 기자 개인의 의견을 마치 사실처럼 보도한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출처가 없어 독자가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근거조차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기사에 쓰는 모든 글자에 전달자의 책임을 담아야 합니다. 보도 문장을 능동형으로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치인의 수사가 피동형으로 범벅될 때, 우리는 ‘유체이탈식 화법’이라고 비판합니다. 책임을 요리조리 피하고 남 얘기하듯 말하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생명인 언론에서 말끝마다 피동형 표현으로 책임을 피한다면 독자들은 우리 기사를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한겨레>는 기사에서 피동형 문장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12월 31일 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신문>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총 90개 기사에 피동형 문장이 얼마나 많은지 조사했습니다. 기사에서 피동형 문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겨레>가 14.53%로 가장 높았습니다. 우리는 기사 1개당 피동형 문장을 2.27개 사용했는데, 이 역시 가장 많았습니다.

이날 조사한 <한겨레> 기사 22개의 전체 344개 문장 중 50개가 피동문이었습니다. 이 중 ‘~것으로 보인다’를 8회 사용했고, ‘우려가/지적이/목소리가 나온다’, ‘풀이된다’, 그리고 ‘방침이다’의 명사형 종결어미 표현을 3회씩 썼습니다. ‘비판이/전망이/관측이/평가가 나온다’, ‘알려졌다’, ‘분위기다’라는 말을 2회씩, 기타 표현을 13회 활용했습니다.

특히 6면 ‘고민정 대변인 불출마 ·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출마’ 기사에서는 문장 13개 중 8개를 피동문으로 썼습니다. 이 기사에 나온 정보는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이라는 익명 출처에 의존했습니다. 정보의 정확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출처에서도, 문장 표현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피동문 내용의 출처나 근거를 덧붙이지 않은 문장 비율이 가장 낮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비율 역시 78%에 이르러 80%를 웃도는 3사와 차이를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고작 하루 치 신문을 조사한 결과에 불과합니다만, 우리가 관습적으로 피동형 문장을 남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피동형 문장 사용 빈도를 비교한 12월 31일 자 4개 신문. <한겨레> 6면 ‘고민정 대변인 불출마 ·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출마’ 기사에서는 전체 문장 13개 중 8개를 피동문으로 서술했다. 정보 출처는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이라는 익명 취재원이다. ⓒ 김은초

우리 <한겨레>는 2007년 1월 ‘취재보도준칙’을 제정해 국내 언론사 중 가장 구체적인 언론윤리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언론 불신의 벽을 허물고 올바른 진실과 정확한 사실을 추구하는 신문 본연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준칙 19조(출처의 명시)에는 “기사의 바탕이 된 모든 정보의 출처는 최대한 정확히 밝힌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5조(취재원의 실명 표기)에서는 ‘사실과 관련된 정보가 아니라 의견이나 주장, 추측 등을 수집해 보도할 때에는 실명 표기를 원칙으로 한다. 익명으로 표기된 의견은 독자에게 ‘필자의 주관적 견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절대 남용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취재원을 드러내지 않고 피동형 문장으로 은근슬쩍 처리하면서, 우리가 만든 이 준칙을 어기고 있습니다. 단순한 남용을 넘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2020년에는 우리 기사에서 피동형 문장부터 덜어냅시다. 더 꼼꼼한 취재와 사실 확인으로 정보의 출처를 밝히고 능동형 문장으로 바꿔나갑시다. 미디어 지형의 변화에 맞서 콘텐츠 품질을 높이겠다는 우리의 목표는 전달 방식을 바꾸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탈진실 시대’에 언론사마다 팩트체크를 외칩니다. 가짜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피동형 보도 문장으로 진위를 모호하게 하는 기사를 쓰는 건 언론의 자가당착입니다. 단순히 서술어 하나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뉴스 품질과 설득력을 높여 언론 불신의 ‘위기를 탈출하고 밝은 미래를 여는 첫걸음’입니다. 능동형 언론이 되려는 노력은 독자의 신뢰로 보상받을 겁니다. 신뢰는 세상이 요구하는 저널리즘의 회복이면서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임을 기억합시다.

(김은초 기자)

 

<대구MBC 사장 신년사>

‘컬러풀 대구’를 만드는 공론장

반갑습니다. 사장 임지윤입니다. 2020년 새해를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대구 MBC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논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다들 바쁜 시간 기꺼이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에 계신 디지털 미디어팀 운영을 맡고 있는 도성진 기자님에게 묻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만든 뉴스 중 가장 뉴스답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게 있었나요? 옆에 계신 윤창준 PD님에게도 묻겠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은 게 뭐였나요?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데요. 먼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다양한 디지털 실험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최초의 시민구단, 대구 FC를 단순한 경기 중계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만든 ‘축구도시’나 기자들이 직접 셀프 카메라로 뉴스를 보도하는 ‘바로봉뉴스’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아들 군 복무 특혜나 대구 천주교의 각종 비리 등 권력 감시와 더불어 지역 현안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저널리즘 기본 의무인 ‘권력 감시’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사장이기 전에 함께 현장을 뛰어다녔던 동료로서, 그리고 지역 주민으로서 1년 동안 대구시민을 위해 땀 흘린 여러분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 드립니다.

▲ 대구MBC가 디지털 뉴스 실험 콘텐츠로 제작 중인 ‘바로봉뉴스’. 기자가 셀프 카메라 형식으로 현장을 취재한 뒤 유튜브를 통해 보도한다. 위 사진은 지난해 7월 30일 윤영균 기자의 ‘대구 시청 신청사 유치전 과열 양상’ 현장 리포트이다. ⓒ 대구MBC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사회적 소수로 취급되던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공론장’을 복원해야 합니다. 대구는 ‘컬러풀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국가별로 옷만 형형색색 갖춰 입고 거리 행진을 펼친다고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는 세상이란 영화 속 주인공 뒤에서 보이지 않는 엑스트라로 살아가며 입김으로 손을 녹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산업재해 처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날 선 시선을 견뎌야만 하는 성서공단 외국인 노동자들, ‘교육 거점 도시’를 앞세워 각종 대학이 즐비하지만 졸업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대구 청년들, 보수적인 도시 분위기 속에 ‘퀴어 축제’를 겨우 개최하는 성 소수자들,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더욱더 다양한 사람을 카메라 앞과 뒤에 모셔야 합니다. 미디어는 사회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여론을 형성하는 거대 권력입니다. 뉴스 속에 나오는 인물뿐 아니라 생산자인 우리 역시 사회 전체를 담는 작은 그릇 속에 있습니다. 영국 BBC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장애인이나 임신한 여성이 방송을 진행합니다. 이들의 출연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겼고 시청자 스스로 편견의 눈을 제거할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앵커뿐 아니라 제작진 다수가 비장애인 중년 남성에 스카이 대학 출신인 한국 언론과 비교하면 세상을 담는 저들의 그릇은 크고 넓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미디어란 그릇에 담아야 할 능력은 ‘공감’과 ‘관용’입니다. 나와 다른 이들의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바라볼 줄 알고 존중하는 자세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면서 우리는 저널리스트로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좀 더 노력한다면 대구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송출할 수 있습니다. 대구 달서구 도원동에 ‘옛날 통닭’을 만드는 성실한 청각장애인 갑돌이와 상인동에서 ‘양념치킨’을 파는 성실한 동성애자 갑순이의 경쟁을 스페인 유명 축구팀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치열한 라이벌 게임인 ‘엘 클라시코’ 못지않게 그려내 봅시다. 굳이 대구가 ‘치킨의 본 고장’이라는 걸 홍보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찾아오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도 ‘창업’의 장단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나 성 정체성에 관한 왜곡된 인식도 완화할 수 있고요.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던 재미없는 뉴스가 일상 속에서 가볍고 유쾌한 뉴스로 유통될 때 우리가 구축하는 공론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리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소비자가 직접 자기 의사를 개인 미디어로 표현하는 ‘뉴미디어’ 시대입니다. 즉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전달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스크린 속 화려한 주인공 이야기는 이제 지루한 소설에 불과합니다. 정치인, 교수, 연예인 등의 삶을 받아쓰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우리 이야기를 재미있는 스토리로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시청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도전은 무용지물로 끝날 것입니다. 성별, 연령, 직업, 국적 등 저마다 다른 삶에서 느끼는 생각들을 우리가 ‘대구MBC’라는 공론장을 통해 모으고 전할 때 대구는 진정한 ‘컬러풀 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재정이나 앞으로 방향성에 관해 걱정하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언제나 질문 또는 비판할 지점이 있다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수평적인 토론을 원하는 동료입니다. 여러분께서 모바일 시대에 어떤 콘텐츠를 만드는 게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에 저 역시 여러분의 미래를 고민하겠습니다. 대구MBC가 2020년에 대구 시민이 즐겁게 찾는 방송 공론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지윤 기자)


편집 :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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