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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추방의 첫걸음, 판결문 공개

기사승인 2020.01.09  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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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발언대]

   
▲ 박두호 기자

흔히 사법부를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입법부가 제도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행정부가 억울한 피해를 막지 못했어도 법원이 재판을 제대로 하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탄희 판사의 사표파동을 계기로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은 이런 기대를 참담하게 무너뜨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은 ‘상고법원 설립’이라는 조직이익을 위해 박근혜 행정부와 ‘재판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엄벌 받아야 할 사람이 일시적이나마 무죄판결을 받고, 강제징용노동자와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등은 재판지연, 판결번복 등의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

지난 3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제왕적 대법원장’이 전권을 휘두르는 조직구조를 깨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권은 물론 일선 법관 인사권까지 행사하고,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손발처럼 움직였던 구조가 재판 거래와 판사 블랙리스트 등 비리의 온상이 됐다고 본 것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법원 인사 등 사법행정에 외부 전문가와 일선 법관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 등이 없어져 판사들이 승진을 덜 의식하고 재판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 법원은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법 개혁은 절실하다. ⓒ Pixabay

이런 제도개혁으로 판사와 판결의 독립성을 높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민이 원하는 사법개혁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판사들의 인권의식과 사고방식이 국민의 생각과 괴리될 가능성이 있고, ‘전관예우’라는 말이 상징하듯 재판에 부정한 거래가 개입될 여지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죄 지은만큼 벌을 받지 않고, 힘없는 이들만 중벌을 받는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의심은 아직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구심을 추방할 첫걸음은 판결문 전면 공개다. 지금은 대법원 판결문을 제외한 하급심 판결 대부분을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를 철저히 삭제한 뒤 기본적으로 모든 판결문의 열람을 허용해서, 일반 시민도 유무죄 판단의 기준과 근거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어두운 거래’를 통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나올 여지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동시에 미국처럼 시민배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민배심제도는 일반인들이 재판에 참석해서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제도다. 선진국들이 이런 제도를 운용해 온 결과, 시민의 상식적 판단이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도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적용 대상 재판이 제한적이고, 배심원 평결이 권고적 효력만을 갖고 있어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명실상부한 시민배심제가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은 무너지는 ‘최후의 보루’를 목격하는 충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안겼지만, 이를 계기로 사법개혁을 제대로 한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추방하는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나라, 법이 억울한 이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양안선 PD

박두호 기자 dooh5@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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