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윤재영 PD

삼계탕, 프라이드치킨, 닭강정 등으로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닭들이 자라는 공간은 대개 마리당 0.05제곱미터(㎡)다. 인쇄용지(A4) 크기보다 좁다. 그런 곳에 갇혀 사육되는 닭은 날갯짓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한다. 돼지는 일반적으로 폭 60센티미터(cm) 정도의 축사 공간에서 자란다. 진흙에서 뒹굴고 땅을 파헤치는 등의 타고난 습성은 잊어야 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대량생산하듯 공장형 축사에서 대규모로 키워지는 가축은 그래서 면역력이 매우 떨어진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 전염병이 돌면 밀집 사육되는 가축들이 한꺼번에 감염되거나, 예방적으로 대규모 살처분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에 국내 축산농가들이 홍역을 치른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공장식 축산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값싼 고기를 더 많이 공급하려는’ 자본주의적 선택의 결과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경제적인’ 방식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청소도,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대량 사육을 하다 보니 대다수 축산 농가들은 질병을 막으려고 살충제, 항생제 등을 많이 쓴다. 좀 더 빨리 살을 찌워 무게를 늘리려고 성장호르몬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축산물이 우리 식탁에 올라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살충제 계란 파동’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성장호르몬이 들어간 고기로 만든 햄버거 등을 먹고 아이들이 비만체질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 날갯짓도 할 수 없는 좁은 케이지에서 대량 사육되는 닭은 살충제, 항생제 성분이 포함된 알을 낳는 경우가 많다. ⓒ KBS

가축전염병이 돌 때는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적 살처분’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멀쩡한 동물들까지 대거 생매장에 가까운 죽음을 맞는다. 생명 있는 동물들에게 못할 짓인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재정지출, 담당 공무원과 노동자의 심리적 충격 등 부작용도 심각하다. 더군다나 가축전염병 종류는 갈수록 늘어나고, 찾아오는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공장식 축산은 또 환경에도 큰 해를 끼친다. 대규모 밀집 사육되는 동물들이 배출하는 분뇨와 메탄가스 등은 토양, 수질, 대기 오염을 낳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 살처분한 동물 사체를 매장할 때는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특히 더 심각하고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도 말 못할 고통을 겪는다.

이런 사회적, 환경적 비용들을 다 계산했을 때도 과연 그것이 ‘값싼 고기’일 수 있을까. 이제는 공장식 축산이 사회에 전가하는 ‘숨은 비용’을 드러내고 ‘동물복지농장’으로 과감한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경기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살충제 달걀 파동과 동물복지농장 도입의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보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타고난 습성에 맞게 키우는 동물복지농장이 밀집사육 농장보다 경제성에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축전염병을 감안하지 않을 때는 공장형 축산이 유리하지만, AI 등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고려해 비용 대비 편익비율을 계산했을 때는 동물복지농장이 1.028로 밀집사육농장의 0.996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12년부터 동물복지 5개년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산란계(닭)의 일반케이지 사육금지 및 돼지 스톨 사육금지 등의 적극적 정책을 펴고 있다.

동물권을 존중하는 축산은 인간을 위해 더 필요하다. 고기를 싸게 많이 먹겠다는 욕심이 동물에게 지나친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환경까지 해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당장은 생산비용이 오르더라도 결과적으로 더 경제적인 동물복지축산을 과감하게 확산시켜야 한다. 정부는 해마다 살처분에 막대한 예산을 쏟을 게 아니라 공장형 축산 농가를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하도록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육식을 줄이면서 ‘건강에 좋은 고기 제값에 사먹기’로 발걸음을 맞출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각급학교 급식 등 공공부문에서 동물복지농장 제품을 우선 구매하고, 저소득층에게는 바우처(무료상품권)를 지급하는 정책도 추진하면 어떨까. 그러면 동물복지 뿐 아니라 국민 건강과 환경, 사회통합에 이르기까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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