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KBS ‘최경영의 경제쇼’ 이봉수 교수 인터뷰

20일 KBS 1라디오 ‘최경영의 경제쇼’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봉수 교수가 출연해 45분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12.16 부동산 대책’ 등 최근 경제뉴스 보도까지 포함해 한국에서 특히 경제저널리즘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단비뉴스>는 KBS의 허락을 받아 방송 녹취록과 유튜브 영상을 함께 올립니다. 원래 말할 요지를 적은 방송원고는 시간이 모자라 방송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그 부분도 문답체로 바꿔 녹취록에 합쳤습니다. (편집자)

▲ 이봉수 교수가 KBS ‘최경영의 경제쇼’에 출연해 최 기자와 대담을 하고 있다. ⓒ KBS

“언론의 자유에 ‘가해의 자유’는 없다” 

최경영 기자(이하 최): 언론인 출신으로 국내 최초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을 설립해 미래의 언론인을 가르치고 계신데요. 어느 때보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이유, 뭐라고 보시는지요?

이봉수 교수(이하 이): 언론의 자유도가 높을 때 가짜뉴스가 창궐하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데가 우리나라입니다.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보면 한국은 2016년 70위에서 올해 41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근데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38개국의 언론신뢰도를 조사했더니 우리가 38위로 꼴찌입니다. 우리나라는 독재정권 시절에 언론의 자유가 너무나 절실했던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이제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너무 남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는데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죠. 언론의 자유에 ‘가해의 자유’는 없잖아요. 자유의 남용으로 언론의 신뢰가 무너지면 공적 토론의 장, 즉 공론장이 건강하게 작동할 수 없고, 결국 민주주의마저 위협하게 됩니다.

최: 기성언론의 정통성이나 위상이 추락한 지도 오랩니다. 경제보도만 봐도 진영논리에 빠져 편파보도가 심각할 지경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얘기한 한 판사처럼 저희 프로그램부터 낮은 자세로 제대로 경제뉴스를 보도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적나라하게 얘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교수님은 과거 신문사 경제부장과 시민편집인도 역임하셨고 영국에서 경제저널리즘으로 학위논문도 쓰셨는데, 지난 6월 한 세미나에서 ‘가짜뉴스가 한국경제를 망친다’며 후배들을 매섭게 질타하셨습니다. 경제뉴스 보도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가짜뉴스’도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요?

경제뉴스가 왜곡되는 특별한 이유 셋

이: 제가 마흔일곱에 영국에 유학 간 이유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데 언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규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의 주범 중 하나가 한국언론의 잘못된 경제보도입니다. 반성을 안 하니까 지금까지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거죠. 우리나라 경제뉴스에 특히 왜곡보도가 많고 가짜뉴스가 횡행하게 된 데는 3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막강한 경제권력인 재벌이 광고를 지렛대로 경제뉴스 보도를 상당 부분 입맛대로 요리한다는 겁니다. 재벌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chaebol’(재벌)로 등재돼 있을 만큼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지요. 제가 <한겨레> 경제부장 때도 겪었지만 경제부가 삼성의 편법 증여 문제를 계속 비판했더니 광고탄압이 들어왔어요.

둘째, 선진국의 많은 신문들은 광고수익과 구독료 수익이 5:5, 또는 6:4 이런 식인데, 우리는 8:2, 심한 데는 9:1 로 광고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광고주 입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경제 기사는 통계가 많이 인용되는데 통계를 선별적으로 오용·남용하면 일반인들이 잘 알 수가 없고 오히려 믿음이 가기 때문에 가짜뉴스가 사실처럼 돌아다니죠.

▲ <조선일보> 기사 ‘재산세 폭탄 맞은 가구, 강남 2.6배 성동 110배’에는 서울시 상공에 폭탄이 떨어지는 그래픽이 사용됐다. ⓒ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실

최: 가장 심각했던 보도,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신다면…

이: 수십년간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과장보도가 보수언론의 ‘세금폭탄’ 프레임입니다. <조선일보> 9월 23일 보도인데 ‘재산세 폭탄 맞은 가구, 강남 2.6배 성동 110배’라면서 서울에 수십 발 폭탄이 떨어지는 그래픽까지 동원했죠. 한 해 올릴 수 있는 재산세 법적 상한선이 30%예요. 성동구는 그렇게 오른 가구가 2017년 149가구에서 2019년 1만6420가구로 110배가 늘었다는 거죠. 근데 성동구는 ‘마용성’이라 해서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 곳이잖아요.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이고 훨씬 더 많이 내야 하지만 한 해 30% 이상은 못 올리게 돼 있어요. 성동구 집주인들에게 집값 오른 것은 ‘폭탄’이 아니라 ‘폭죽’이죠.

최저임금 보도는 어땠습니까?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최저임금을 키워드로 2018년 보도량을 조사했더니 한 신문은 4343건을 보도했고 대개 수천건씩 보도했어요. 대부분 ‘해고도미노’ ‘고용참사’ ‘물가폭등’ 같은 부정적인 제목을 달아서 보도했죠. 그런 언론의 폭격 속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중단됐죠. 근데 올해 들어 고용이 개선되고 있는 점은 보도를 거의 안 해요. 물가가 진짜 폭등했습니까? 지금 물가가 거의 안 올라서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죠.

경제기사에 끼어든 정파성 ‘경제가 파탄 났다’

최: 왜 이런 보도가 쏟아지는 겁니까?

이: 언론의 정파성 때문이죠. 정치보도에만 정파성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 경제가 파탄났다고 공격하는 게 대중에게 훨씬 잘 먹혀 들어가고 정권에 큰 타격을 줍니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까요? 통신사인 <뉴스1>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추석 때는 이런 부정적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냅니다. ‘추석 통행료 무료 120억원 ‘혈세’ 보전...아랫돌로 윗돌 괴기.’ 근데 그보다 2년 전인 2015년 추석 때는 같은 <뉴스1>이 이렇게 보도합니다. ‘“정부가 160억 공짜로 쏜다”...14일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아주 좋게 보도했는데, 차이는 그때가 박근혜 정부 시기하는 겁니다.

최: 그런데,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이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고 혹시나 있을 위기에 대해 경보를 울리는 것이라고 보면, 조금 과한 경고성 보도는 미리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 지나친 게 문제죠. 보수언론이 올 여름에 재정적자가 심각해질 거라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사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면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야 마땅하죠. 국내에서 정부 대 보수정당, 그리고 언론이 한창 공방전을 벌일 때 권위있는 국제 관계 평론 잡지인 <Foreign Affairs>가 IMF(국제통화기금) 평가를 인용해서 ‘판정’을 내렸죠. 한국은 독일보다도 훨씬 재정이 건전한데 너무 ‘modest’, 그러니까 중도적인 재정정책을 쓴다고 지적한 거예요. 재정 위기 관련 뉴스는 ‘fake news’(가짜뉴스)라고 콕 집어 지적했죠.

▲ <Foreign Affairs>는 독일과 한국을 비교해 한국이 너무 중도적인 재정정책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 IMF WEO

위기 부추기는 ‘경제 위기’ 보도 

최: 잘못된 경제 저널리즘이 ‘위기’를 부추긴다고 하셨는데요. 생각해보면 올해처럼 경기침체 우려가 컸던 시기에는 더욱 타격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경기 순환 사이클에서 후퇴 국면에 들어간 걸 가지고 위기라고 계속 강조하면 실제로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97년에 외환위기가 닥쳐올 때 한국 언론은 ‘한국경제가 괜찮다’고 애국주의적 논조를 펴고 외국 언론은 한국경제를 마구 후려쳤죠. 특히 월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블룸버그> 같은 경제뉴스 전문 통신사들은 한국상황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보도했는데 결과적으로 위기가 발생했으니까 외국 언론보도가 정확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세계적 경제뉴스 공급기관들은 과장보도를 해도 실제 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쳐 보도내용을 사후에 현실화하는 자기달성효과가 있거든요. 그걸 경제뉴스의 자기달성효과(Self-fulfilling effect)라 부르더라고요.

최: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실생활에서 화폐가 거래되고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건데… 뉴스나 보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게 말이 되냐, 이렇게 얘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아파트 값 보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파트 값이 조금 오르는 낌새가 있다고 칩시다. 한동안 기사를 쓰지 않아 기사 압박을 느끼는 기자가 그것을 발제하면 취재지시가 떨어지고 기사가 만들어지겠죠. 기자는 아파트 값 인상의 진원지인 강남에 가서 거기서도 가장 많이 오른 아파트를 사례로 집어넣어요. 흔히 실거래가가 아닌 부르는 값, 즉 호가로 보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쨌든 기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런 기사가 나가면 아파트를 내놓았던 사람도 ‘내가 너무 싸게 내놓았나’ 하면서 매물을 거둬들입니다. 아파트 값이 뛰기 시작하는 거죠. 내릴 때는 반대 현상이 발생합니다. 무리하게 작성한 기사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크게 안 떨어질 아파트 값이 폭락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어서 크게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지만요.

이런 게 경제보도의 지렛대 효과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식도 마찬가지예요. 폭락장세에서 ‘검은 목요일’ 뭐 이런 식 보도가 나오면 더 폭락하는데 실은 살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개미군단은 겁을 집어먹고 이때 다 팔아치웁니다. 기관들은 싸게 사죠. 나중에 다시 오르면 개미들은 땅을 치죠. 경제뉴스에서 중요한 건 과장보도를 하지 않는 겁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2월 16일 투기수요 억제를 뼈대로 하는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KBS

‘공급확대’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

최: 이번 ‘12.16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언론 보도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 보수신문과 경제지들은 수요억제가 아니라 공급확대를 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수요를 옥죄는 규제를 남발해 또 집값 폭등이 우려된다며 부동산을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거죠. 이때 시장논리는 사실 투기꾼 논리입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진짜 시장입니까? 투기판이지. 수도권 주택보급률이 98%가 넘는데도 자가보유율, 곧 자기집 가진 비율은 50%도 안 되는 것은 집을 투기 목적으로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게 맞죠. 공급도 어느 정도는 해야 되겠지만 공급물량의 상당부분은 투기꾼 몫으로 떨어집니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이들이 집을 내놓게 하는 정책이 상책이죠.

그러려면 보유세를 올려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나라 보유세 실효세율은 형편없이 낮아 선진국의 1/3~1/5 수준이에요. 그 땅 넓고 인구 적은 캐나다도 2015년 기준으로 0.78%예요. 우리는 0.16%였고요. 집 몇 채 갖고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은 보유세 많이 내야죠. 소득주도 성장 이전에 불로소득을 차단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사람을 뭐라고 부릅니까? ‘불한당’이라 하죠. ‘아니 불’에 ‘땀 한’, ‘무리 당’. 우리나라에는 불한당이 너무 살기 좋은 곳입니다.

최: 우리 언론이 공급확대를 계속 외치는 이유가 뭡니까?

이: 첫째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야 신문사가 광고수입을 올립니다. 아파트 분양광고는 신문 전면 몇 페이지에 걸쳐서 내는데 방송에는 맞지 않아서 신문이 독점하죠. 2005년에 조사를 해봤더니 조중동은 전체 광고지면의 22%가 부동산 광고였습니다. 그리고 취재원이 편향돼 있기 때문에 공급확대 목소리만 크게 전해집니다. 제가 2019년 2월까지 1년간 <연합뉴스>를 검색해봤더니 공급우선 정책을 주장하는 국민은행 스타자문단 부동산 전문위원이 기사 81건에 등장하고,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이 기사 42건에 인용됐습니다. 이분들은 부동산 큰손들 자산관리해주는 전문가들입니다. 반면에 투기수요 억제를 주장하는 선대인 경제연구소장, 김광수경제연구소장,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는 한 건의 기사에도 인용되지 않았습니다. 기사 쓸 때는 균형을 잡기 위해 대립하는 의견 둘을 들어보라는 ‘투 소스’(two source) 원칙도 전혀 지켜지지 않은 거죠.

같은 통계, 전혀 딴판인 기사

최: 최근 경제뉴스는 트렌드가 같은 통계를 가지고 전혀 다른 보도를 한다는 겁니다. 마크 트웨인은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며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어떻게 같은 고용률이나 같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 등을 가지고 전혀 다른 해석과 근거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언론보도를 떠나 경제학의 근간까지 흔들린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이: 지난 6월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전혀 다릅니다. <조선>은 ‘실업자수 5월 기준 사상 최대...3040·제조업 취업자 감소 장기화.’ 제목이 아주 부정적이죠. <한겨레>는 ‘5월 취업자 26만명 증가...생산가능인구 고용률도 역대 최고.’ 제목이 아주 긍정적입니다. 둘 다 통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경제 기사는 이처럼 어떤 통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선>은 취업을 포기했던 여성들이 경제활동인구로 유입돼 실업률은 올라갔지만 취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은 제목에 반영하지 않았죠.

최: 사회기사의 경우, 예를 들어 흉악범죄나 성범죄를 보도할 때 또는 질환 관련된 보도를 할 때는 구체적인 사실을 묘사하지 않는 등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경제뉴스를 보도할 때는 그런 기준점이 전혀 없나요?

규제가 ‘암’이라고? 콴타스항공과 세월호의 경우

이: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경제보도에서 중요한 건 균형감각입니다. 경제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 문제처럼 선악이 분명하지 않은 때가 많아요. 규제만 하더라도 공무원들이 힘을 유지하기 위해 괜히 끼고 있는 것도 많지만 꼭 필요한 것도 많거든요. 근데 지난 정권에서 규제는 ‘암’이라며 ‘규제 단두대’로 보내야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청와대에서 규제개혁대회를 했을 때 저는 ‘규제는 더 강화해야 하는 것도 많다’는 칼럼을 썼습니다. 환경, 인권, 안전에 관한 규제 중에 그런 게 많지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가 어딘지 아십니까? 콴타스항공이에요. 거기는 1951년 이래 사망사고가 없었어요. 6~7년 되면 비행기 팔아버려요. 사고는 헌 비행기 사 간 항공사에서 나는 거죠. 객실 승무원도 힘센 남자를 많이 채용해요. 사고 났을 때 대비하는 거죠. 좀 불친절하긴 하겠지만. 세월호 참사도 선박 분야 규제완화가 ‘고물선’을 들여와 증·개축하게 만든 주범이었죠. 선박 내구연한이 우리는 30년인데 일본은 20년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의 퇴역 여객선을 싸게 사서 곱게 페인트칠 해서 다니다가 사고 난 겁니다.

‘근로자’란 말 속에 끼어든 이데올로기

최: 경제 보도에서 제목이 너무 과장돼 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습니다.

이: 경제용어를 쓸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 언론에는 ‘경제위기’란 말이 툭하면 등장하는데, ‘경기침체’ 정도는 몰라도 ‘경제위기’란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올해는 ‘Recession’(경기후퇴) 정도가 적당한 용어였죠. ‘Recession’이란 말도 AP 통신에서는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쓸 수 있게 규정해 놨어요. 우리는 ‘경제위기’ 심지어 ‘공황’ ‘패닉’이란 어마어마한 말을 함부로 쓰죠. 경제보도에서도 언어의 공공성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언론은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이런 식으로 부르는데 ‘분식’은 ‘화장’이라는 뜻이니 그렇게 나쁜 말이 아니죠. 영어로는 ‘Accounting fraud’니까 ‘회계사기’로 번역해야 맞죠. 미국에서는 기업이 회계사기 치면 정말 살아남지 못하죠. ‘근로자’란 말도 ‘노동자’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부지런할 근’자니까 노동자는 무조건 부지런히 일해야 하나요? ‘근로기준법’이란 법 이름도 말이 안 되죠. 부지런히 일하는 기준을 정한 법인가요? 근데 말이란 게 한번 만들어지면 생명력이 얼마나 긴지 여론조사를 해보면 노동자들도 압도적으로 ‘근로자’로 불리길 원합니다.

최: 그러기엔 경제학적으로 ‘침체’란 단어는 어떤 시점에서, ‘위기’란 단어는 어떤 시점에서 써야 한다든지, 기사를 쓰기 전에 정확한 통계를 인용한다거나, 과거 같은 기간과 똑같이 비교해서 분석하는 등 적어도 내 입맛대로 조작하지는 말아야 하는 건 기본 아닌가요?

기자교육에서 인문사회교양이 왜 중요한가?

이: 경제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저널리즘 교육이 시급합니다. 통계를 어떻게 다룰 건지도 배워야 합니다. 기자들 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참 공부들 안 하고 소모적으로 사는 이들 많습니다. 제가 경제부장 때 통계청에 부탁해서 통계교육 좀 해달라고 했더니 좋다는 거예요. 자기들도 통계 왜곡되는 게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랬더니 기자 중에 지망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부탁은 해놨지, 어쩌겠어요? 저 혼자 가서 대여섯 차례 들었죠.

우리나라는 기자들 충원∙교육 과정 자체가 잘못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언론학과는 110개나 있다는데 저널리즘의 표준을 제대로 가르칠 교수님도 소수이고 결국 입사해서 주로 1~2년차 선배인 ‘1진’한테 도제식 교육을 받습니다. 선배들의 문장 스타일과 가치관까지 빨리 닮아가고, 언론사의 논조에 문제가 있어도 순응하는 사람이 좋은 출입처 배정받고 빨리 성장합니다. 저희 스쿨에서는 스킬도 가르치지만 더 중점을 두는 것은 인문사회 교양교육입니다. 그것이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을 키워준다고 생각합니다.

최: 문제는 이런 가짜뉴스가 뉴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는 거예요?

이: 큰돈 안 들이고 쉽게 1인매체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그것이 오히려 여론의 다양성이 아니라 여론의 양극화를 가져왔습니다. 내용이 극단적이어야 충성도 높은 시청자를 모을 수 있으니까 잘 나가는 유튜버들은 거의 양 극단에 포진해 있습니다. 객관주의와 중립은 언론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데 그걸 우습게 아는 매체일수록 팬덤이 생기고 돈이 되니까 사이비 언론이 창궐하는 겁니다.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알고리즘이 또 수익모델이 되는 이 뉴미디어가,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가면 2500년 역사를 가진 민주주의에 어떤 타격을 가할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기성언론 책임이 더 크다

최: 기성언론은 책임 없습니까?

이: 극단적인 유투버들도 문제지만 영향력 면에서 보면 기성언론의 책임이 더 큽니다. 기성언론은 1인미디어가 만든 가짜뉴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팩트체커 구실을 해야 하는데, 종편채널 중에는 그런 걸 이용해서 시청자수를 늘리는 데도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기성언론이 만들어내는 것도 많습니다. 가짜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니까 기성언론은 가짜뉴스와 오보나 과장보도는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데 요즘 과장보도들은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측면에서 가짜뉴스와 비슷합니다. 요즘 보수언론은 정권을 비판하려는 의지가 워낙 강해 경제가 나쁘다는 뉴스를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알다시피 경제는 세 주체인 가계·기업·정부의 의지가 중요한데 자꾸 나쁘다는 기사를 내보내면 실제로 국민의 소비성향, 그리고 기업의 투자의욕과 고용의욕이 떨어집니다. 언론도 경제를 악화시키는 데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최: 가짜뉴스의 범람과 기성매체의 추락,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라고요?

이: 외국도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가 많지만 우리만큼 심한 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이 우리처럼 가짜뉴스가 많은 걸 보면 아이러니입니다. 미국은 헌법 1조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자유로 천명해 놓았죠.

‘지연된 정정’은 정정이 아니다 

최: 다른 나라 언론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이: 우리는 오보에 대해 언론사들이 좀처럼 정정보도를 하지 않습니다. 언론중재위 법원 1,2.3심 올라가서 확정 판결이 나야 귀퉁이에 조그맣게 정정기사를 냅니다. 영국신문 <가디언> 같은 데서는 정정난을 매일 상설해 놓았고, <뉴욕타임스>는 화끈하게 정정 잘해서 권위지가 됐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정부도 언론의 혐오 표현에는 가차없이 대응해서 엄벌합니다. 프랑스에는 규제 담당 공무원이 페이스북 법인에 반년간 상주하면서 인종차별 등 증오가 실린 언급을 페이스북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감시했습니다. 독일에서는 플랫폼에 거액의 징벌적 과징금을 물리기로 했습니다.

우리 언론학자들은 현행법에 따라 소송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개인이 소송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허언증 환자’로 매도됐던 홍가혜 씨가 <조선일보>에서 손해배상을 받은 게 5년 만입니다. 검색해보면 언론이 쏟아낸 홍가혜 씨 관련 기사는 수 천 건에 이르렀지만 다른 언론에는 소송을 걸 엄두도 못 냈고 판결이 나왔는데도 정정기사를 실어준 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하며 확인되지 않은 김대업 씨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가 허위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는데, 대선 몇 년 뒤 정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홍가혜 씨를 ‘허언증 환자’로 몰아간 기사들. ⓒ KBS

최: 청취자분들은 동의하지 못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언론인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단어가 ‘기레기’입니다. 그만큼 한 명 한 명 만나보면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권력감시 역할에 충실하다고 얘기합니다. 독자와 언론인의 괴리, 어디서 온다고 보시는지요?

이: 무엇보다 언론인의 각성이 앞서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위기와 관련해 기성 언론인들은 종종 뉴미디어의 출현 같은 언론 환경 변화를 탓하는데 그것은 상당 부분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언론의 진정한 위기는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는 건 어려운 과제이면서도 언론인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풀 수 있는 과제입니다. 언론인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끊임없는 압박과 유혹을 받고 국민들한테 ‘기레기’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프로들은 이런 언론 환경 탓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언론인 개개인의 각성과 노력을 바탕으로 집단의지를 표출하고 집단행동도 필요할 때는 해야 합니다. 사실과 의견을 엄격히 분리하고 정파성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데스크가 부당한 보도를 강요하면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성씨는?

최: 그렇다면 무엇부터 달라져야 할까요?

이: 선정적 보도라든가 뭐 대단히 많지만 익명 보도 하나만이라도 줄였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 제일 많은 성씨가 뭔지 아세요? ‘관 씨’예요. 이름은 ‘계자’. ‘관계자’가 기사에 너무 많이 등장합니다.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기사 쓰면 제대로 취재 안 해도 되고 자기 주관을 개입시키기도 쉽습니다. 경제부장 할 때 어떤 기자는 기사에 ‘관계자’가 너무 많이 등장하길래 “이 관계자가 도대체 누구냐”고 했더니 이름을 못 대요. ‘관계자’가 자기야. ‘관계자’라고 써주면 말한 사람도 말에 책임 안 져도 됩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일반비서는 ‘관계자’, 수석비서급은 ‘핵심관계자’나 ‘고위관계자’라고 구분해서 쓰고, 부를 때는 핵심관계자를 ‘핵관’이라고도 한다는데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외국 유수 언론들은 모두 익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취재원의 신원을 꼭 감춰야 하는 경우만 허용합니다.

최: 독자나 시·청취자들이 제대로 된 기사를 걸러내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나쁜 미디어나 콘텐츠를 비판하고 좋은 언론을 적극 소비해줘야 합니다. 좋은 독자나 시청자만이 좋은 언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언론 선진국에서는 활발하고 우리는 없다시피 한 게 뭔지 아세요?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입니다. 자체비평은 독자권익위원회 같은 게 있어서 지면평가도 하고 있지만 위원들이 언론사와 똑같은 성향 사람들로 구성돼 있으니까 자화자찬이나 지엽적인 걸 지적하는 데 그칩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성인 추대할 때 후보자의 문제점만 들춰서 얘기하는 ‘악마의 변호인’ 있잖아요. 근데 우리 언론사 독자위원회는 그런 싫은 소리를 잘 못합니다. 미디어 상호비평은 우리 기성언론들 사이에 동업자의식이 강해 거의 하지 않습니다. 영국 진보언론 <가디언>은 매주 미디어 섹션까지 발행하면서 보수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했죠. 언론이라는 공룡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공룡인 언론밖에 없습니다. 기성언론이 못 하니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운영하는 비영리 대안매체인 <단비뉴스>가 나서서 [한국언론을 망친 사람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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