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tvN ‘일로 만난 사이’ ‘유 퀴즈 온 더 블록2’

“모든 코미디언이 바라는 대로 나이 들어가는 유재석, 부럽고 존경합니다.”

‘힐링 예능’으로 사랑받는 <유 퀴즈 온 더 블록2> 기사에 최근 이런 댓글이 달렸다. 38화에서 한글날을 맞아 성인 문해학교를 찾은 유재석의 ‘공감’ 능력에 주목한 기사였다. 성인 문해학교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성인이 문자 해득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수업을 제공하고 초∙중등학교 졸업 학력을 부여하는 학교이다. 만학도는 글을 몰라 감정표현이 서툴렀던 서러움과 공부의 기쁨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유재석은 부모뻘 되는 인터뷰이에게서 사연을 끌어내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공감했다. 시청자는 그를 통해 타인의 사연에 비교적 편하게 접속한다.

‘국민MC’ 유재석은 현장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사람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리얼 버라이어티, 토크쇼, 음악 예능까지, 그는 예능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한다. 내후년에 오십 세가 되는 그는 예능에서 뛰기 위해 담배를 끊었고, 식단조절을 해가며 적당히 건강한 체격을 유지한다. 맡은 일에 관해 철저한 프로 의식과 유능함을 보여주는 그는 특히 몸과 마음이 바쁜 프로그램에서 장점이 도드라진다.

노동 앞에 공평한 유재석과 게스트

지난달 9부를 끝으로 종영한 <일로 만난 사이>는 유재석에게 최적화한 포맷이다. 유재석과 일로 만난 적이 있는 게스트가 일손이 필요한 일터에 가서 하루 동안 일을 도우며 대화한다. 게스트와 유재석은 ‘일로 만난’ 옛날 에피소드를 소재로 일터에서 대화를 이어가면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보여준다. 열심히 일하고 받은 일당은 게스트가 생각하는 ‘좋은 일’에 쓴다.

▲ <일로 만난 사이>의 일터는 모두 육체노동이 필요한 곳이다. © CJENM

90분 가까운 방송시간에 게스트와 유재석은 육체노동과 대화를 반복한다. 지금 하는 일뿐만 아니라 근황, 안부, 꿈, 고민 등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일하다가 잠시 짬을 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포맷은 ‘야외 토크쇼’로 귀결된다. 대부분 게스트는 MC 유재석과 방송업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이들로, 유재석은 그들 인생의 일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게스트와 유재석의 과거, 현재, 미래 등 기존 토크쇼에서 듣기 어려운 연예인의 진지하고 솔직한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특이한 것은 게스트를 맞는 ‘호스트’ 유재석도 많은 얘기를 한다는 점이다. 가정, 행복, 경력과 같은 본인 인생 이야기 말이다. 1화의 게스트는 유재석과 국민 남매를 이뤘던 이효리인데, 이효리는 유재석에게 행복한지 묻거나 결혼 생활에 관해 질문한다. MC로서 게스트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역할에 익숙한 유재석이 자기 사생활을 많이 이야기하는 건 흔한 장면이 아니다. 일을 같이 한 경험이 많지 않은 5화의 게스트인 한혜진∙장성규와 함께 있을 때는 방송계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자기 고민과 해답을 정리해 들려준다. 의자에 앉아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구도가 아니라 유재석과 게스트의 눈높이가 수평선을 이룬다.

셀럽’과 ‘노동’의 거리는 딱 ‘하루 일당’만큼

‘노동 힐링 프로젝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프로그램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일로 만난 사이>의 일터는 일손이 부족한 곳의 사연을 받아 정해지는데, 이 때문에 일터와 게스트 간 개연성이 사라진다. 토크쇼이면서 일종의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지만, 일터에서 게스트가 찾을 수 있는 이야기는 오직 땀에 불과하다. 1화 게스트인 이효리 부부는 그들이 거주하는 제주도 녹차밭에서 일을 하지만, 녹차밭은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할 뿐 그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래서 ‘노동 힐링’이라는 단어는 시청자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것인지, 출연자가 노동을 통해 힐링한다는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자극적이지 않은 장면과 대화로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예능이라도, 단순히 일터에서 연예인이 땀을 흘리는 걸 본다고 시청자가 치유되지는 않는다.

게스트가 일을 마치고 일당을 받는 장면도 그렇다. 일당을 받은 게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일당을 쓴다. 10만 원이 채 안 되는 일당은 큰돈을 벌어들이는 연예인 게스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게스트는 육체노동으로 번 일당을 수령하고 ‘못 쓰겠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하루 안에 소진해버린다. 자신이 번 돈을 원하는 곳에 쓰는 건 당연하지만 종일 노동하던 모습을 관찰하던 방송과 달리 일당을 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간과 노력은 소홀히 다뤄진다. 낯선 일터에서 연예인 게스트가 구슬땀 흘리던 모습에 몰입하던 시청자는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콘텐츠의 스토리텔링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 하루 일당을 받은 게스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일’에 돈을 쓰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이나 일당의 의미는 사라진다. © CJENM

다큐멘터리인 듯 예능인 듯 모호한 콘텐츠의 정체성도 선명해질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에는 최소한의 등장인물만 나온다. 게스트, 유재석, 일터를 소개해주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노동자들이다. 90분 러닝타임 동안 노동과 토크가 이어진다. 그들이 일하는 하루를 가만히 따라갈 뿐이다. 특별한 구성이나 기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토크의 흐름을 끊지 않는 편집이 중요한데, 영상 사이에 간혹 게스트와 유재석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인터뷰 영상이 삽입된다. 토크의 재미가 부족한 장면에서는 예능적 요소를 추가하기 위해 자막과 배경음악을 활용한 예능 연출도 덧붙인다.

이러한 연출과 구성으로는 90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채널을 돌리지 않게 만들기 힘들다. 차라리 연출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롱테이크 위주의 영상을 활용한 힐링 다큐멘터리를 만들거나, 쉴 새 없이 일하고 쉴 새 없이 웃기며 여러 코너를 구성해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는 야외 예능을 만들면 어떨까?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노동 힐링 프로젝트라고 하기엔 스타 게스트의 노동 이야기에 온전한 감정이입이 어렵고, 예능이라고 하기에는 90분간 ‘소소한 재미’만 보여줄 뿐이다.

자기장처럼 끌어당기는 마법의 한 마디 ‘자기님들’

올해 4월부터 시즌 2를 시작한 <유 퀴즈 온 더 블럭 2>는 ‘유 퀴즈 레전드 사연’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유튜브 인기 영상 목록에 오른다.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과 조세호가 전국 도시나 개성 있는 동네를 방문해 시민을 인터뷰하고 퀴즈를 푸는 포맷이다. 유재석이 조세호를 부르던 애칭 ‘자기’에서 이름을 따서 유재석은 ‘큰 자기’, 조세호는 ‘작은 자기’, 출연자나 시청자는 ‘자기님’이라고 부른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기님’에게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는 질문을 한다. 6개 대학이 모여있는 서울 회기동에서는 낭만과 청춘에 관한 질문을 했다.

▲ <유 퀴즈 온 더 블록2> 에피소드를 편집한 ‘레전드 사연’ 클립 영상은 온라인에서 인기가 높다. © CJENM

인기가 높은 레전드 사연의 경우 유튜브 조회 수 100만 회에서 260만 회까지 기록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시민들은 자기 인생을 나누고, 동네에 관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유재석은 미취학아동, 노년, 청년, 중년까지 모든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말을 건넨다. 전국을 오가는 유재석과 조세호는 ‘사람여행’을 하며 지역과 동네의 정서에 맞는 주민을 찾아낸다. 동네 골목길 한복판에 캠핑용 의자를 펼쳐놓고 지나가던 시민을 붙잡아 펼치는 ‘토크쇼’는 아날로그 시대 라디오를 듣는 듯 정겹고 소박하다. 시민들이 꺼내놓는 이야기보따리는 무척 다양하다. 갱년기 경험, 미래의 불안감, 장래 희망, 자식 걱정 등 우리네 이웃의 소박한 이야기다.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인생 에피소드들, <유 퀴즈 온 더 블록2>의 레전드 영상은 그렇게 탄생한다.

말이 힐링이 될 때, 유재석이 말할 때!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종종 자신을 ‘헤비 토커’라 소개한다. 일상 스트레스를 동료들과 수다로 푸는 것이 그의 취미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지금 고민은 무엇인지, 미래의 꿈은 어떤 것인지 묻고 듣는다. 유재석이 10년 넘게 진행하는 KBS 2TV 장수 예능 <해피 투게더>의 본질도 ‘토크쇼’다. <해피 투게더>는 스튜디오에서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의 원형에 가까운데, 이 프로그램은 그가 가장 오래 진행한 프로그램이 됐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게스트를 배려하는’, 토크하기 편한 MC로 명성을 얻었다.

사람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장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할 때 일의 효율이 높다고 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록2>와 <일로 만난 사이>를 통해 야외로 무대를 옮겨 연예인이나 시민과 토크하는 유재석을 보며 시청자는 즐거움을 얻는다. 유재석이 시민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그가 행복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출연자가 억울하고 슬픈 사연을 이야기하면 공분하며 감정을 해소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시청자는 <유 퀴즈 온 더 블록2>를 통해 다양한 동네의 모습과 새로운 사람들을 보게 되지만,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유재석의 다양한 반응과 모습도 본다.

▲ <유 퀴즈 온 더 블록2>에서 유재석은 시민의 사연을 듣고 대신 화를 내기도, 함께 울어주기도 한다. © CJENM

현대인은 대화가 부족한 삶을 산다. 교통∙통신 기술이 발달해 사람과 교류하기는 더 쉬워졌지만, 디지털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진 만큼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는 더 드물어졌다. 초연결 시대를 맞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독사, 히키코모리, 우울증 같은 증상에서 볼 수 있듯, ‘단절’이 현대인의 삶을 관통한다. 우리 모두는 외롭다. 토크를 좋아하는 유재석이 끊임없이 시민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자와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이런 시대의 초상 때문이다.

<일로 만난 사이>와 <유 퀴즈 온 더 블록2>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소소한 재미’와 ‘힐링’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평이 많다. 스크린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치유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시청자인 내가 이야기를 매개로 타인과 연결된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평일 밤 11시, 100분간 계속되는 유재석의 길거리 토크쇼는 고독한 현대인을 시끄럽게 위로한다.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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