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아버지'

▲ 박서정 기자

아버지는 1960년 부산 주한미군 하야리아 부대 정문 앞에 있는 집에서 다섯 남매 중 넷째이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에 가까웠다.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 직후 20대가 되어 돌아온 그는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굴종해야 한다고 믿었고, 정해진 시간에 일본 방송을 틀고 체조를 했다. 일본어와 영어를 잘해 미군 통역관을 맡기도 했지만, 군국주의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고지식한 면이 많아 6.25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할아버지는 일자리를 얻었다가 잃기를 반복하곤 했다. 거기다 좌절된 사회 진출 욕구를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걸로 채웠던 할머니가 사기를 몇 번 당해, 아버지가 태어났을 즈음 집안 형편은 불안했다. 아버지는 부모가 싸우거나 각자 세상 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이 두 사람에게서 ‘나쁜 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쁜 피’란 유전적 특성만이 아닌, 환경적 특성, 즉 가풍도 포함한다. 아버지는 평생 그 피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

▲ 1954년 하야리아 부대 정문 전경. 아버지가 태어난 집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고, 사진을 찍은 방향에 있었다. ⓒ Google

이 ‘나쁜 피’라는 게 아버지 개인이나 친가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부모에게서 받은 특성을 ‘나쁘다’고 인지한 데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 시대상황에 따른 가난과 문화 단절 탓이 크다. 아마 ‘86세대’ 중에 이런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86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말할 때,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지금 한국에서 86세대 엘리트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고성장 시대 취업한 86세대는 그들 부모 세대보다 더 높은 경제력을 가지게 됐고, 그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반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돈을 벌기가 더 힘들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들어지면서 부모에게 종속되기 쉬운데, 이는 가정과 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것으로 연결된다. 지금 정치권에 청년 대표를 보기 힘든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아버지가 내 또래로 태어났다면 똑같은 노력을 하고도 지금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지금 같은 발언권을 얻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86세대라서 얻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포기해야 했던 것도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혼자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암기력보다는 창의력이 두드러진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이 기질 역시 ‘나쁜 거’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개성을 살리기보다, 시키는 대로 암기하고 억지로 남들 하는 걸 따라했다. ‘나쁜 피’에서 벗어나는 건 사회에서 인정받는 걸 뜻했고, 그게 아버지 일생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처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사회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맡은 일에 집중하도록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한다. 아버지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정체성을 다듬기 더 쉬웠을 터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도 적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지금 한국은 60-80년대보다 다양성을 더 포용하고 소통 교육을 강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아버지의 역사를 알면서도, 아버지의 ‘하면 된다’는 낙관과 무지에 숨이 막힌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낀다. 아버지는 가끔 어릴 적 놀던 성지곡 수원지에 가족을 데리고 간다. 여느 때와 같은 나들이였다. 혼자 멀찍이 떨어져 뒷짐 진 손에 뻥튀기 봉지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산보하는 아버지 옆 얼굴이 전에 본 적 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저 나무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뭐 이런 쓸데없는 공상을 골똘히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서정이 어릴 때 짓던 표정’이라고 부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마음 편히 지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몇 십년이 마음에 걸려 눈물이 핑 돌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서정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