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도시공원 일몰제 (상)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서리풀근린공원. 유선 이어폰을 끼고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걷는 60대 남성과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30대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저물어가는 볕을 즐기고 있었다.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고층아파트 사이에 자리한 이 공원의 산책로 중간쯤에서 주민들은 길 한쪽을 가로막은 연두색 철조망과 빨간 글씨 경고문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곧 발걸음을 옮겼다.

“그 동안 주민들께서 등산 및 산책로로 이용하신 당해 임야는 개인의 사유지이며, 사유재산 관리를 위해 출입구를 폐쇄하오니 이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원 산책로에 ‘사유지이니 폐쇄’ 철조망

 
서울 서초동 서리풀공원 산책로 중간에 있는 철조망과 경고문 팻말. 주민들은 산책로 일부가 막혀 길을 돌아가야 했다. ⓒ 양안선

아내와 함께 산책하던 신우식(72•서울 서초동) 씨는 “철조망을 돌아가느라 불편했다”며 “(사유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리풀공원을 일주일에 두 번은 찾는다는 이광원(50•서울 잠원동)씨는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모(62•서울 반포동)씨는 “공익성도 생각해야 할 부분 아니냐”며 산책로에 철조망을 친 지주들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도시공원 일몰제, 즉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원부지로 지정한 땅을 20년간 사들이지 않을 경우 땅 주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공원 지정을 해제하는 제도의 발효가 내년 7월로 다가오면서, ‘우리 동네 공원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약 20만평(약 67만㎡) 규모인 서리풀공원의 경우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내년 7월에 약 3분의 1인 6만여평(약 20만㎡)이 지정 해제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7월 일몰제가 발효하면 전국의 도시공원 중 서울시 전체 면적(605.25㎢)의 약 60%에 맞먹는 363.3제곱킬로미터(㎢)가 지정 해제될 수 있다고 집계했다. 공원 숫자로는 총 1766개소다. 서울의 남산,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도시자연공원도 상당한 면적이 지정해제 대상이며 부산 달맞이공원, 대구 체육공원, 대구 월평공원, 제주 김녕공원, 광주 중앙공원 등 전국의 주요 공원에 대부분 해제 대상 부지가 있다.

대책 없으면 2025년까지 전국 도시공원 53% 해제

이 중 국•공유지거나 경사가 있어 개발하기 어려운 곳 등을 제외한 158㎢은 공원 지정에서 해제될 경우 지주들이 경제성 높은 용도로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 조처 없이 공원에서 해제되면 이 땅은 대지나 자연녹지 등 이전의 용도로 돌아간다. 자연녹지에는 (4층 이하의) 단독주택, 제1•2종 근린생활시설, 교육시설, 의료시설, 공동주택(아파트 제외) 등을 세울 수 있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이행되는데, 여의도 면적의 약 48배(141㎢)에 이르는 공원이 해제 대상에 추가된다. 아무런 대응이 없다면 2025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도시공원의 53%가 ‘순삭(순간 삭제, 순식간에 사라짐)’될 수도 있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추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일몰제 발효로 도시공원이 많이 줄면 미세먼지 피해가 더 심각해지는 등 시민들의 ‘건강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처장은 "도시공원은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를 줄여주고 도심 온도도 낮춰준다"며 도시공원이 줄면 가뜩이나 심각한 우리나라 미세먼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대기오염 분석업체인 에어비주얼(AirVisual)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초미세먼지(PM2.5) 오염도가 높다. 국제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가 에어비주얼의 ‘2018 세계 공기질 보고서’를 분석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공기질이 나쁜 20대 도시’ 중 중국 선양(1위), 방글라데시 다카(2위)에 이어 우리나라 서울과 인천이 3위, 4위를 차지했다.

도시의 ‘허파’ 줄어 국민 건강권 침해

도시공원은 이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탁월한 ‘자연 공기청정기’로 꼽힌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도시 숲은 도심의 미세먼지(PM10)를 25.6%, 초미세먼지(PM2.5)를 40.9%까지 줄인다. 나무 1그루는 연간 35.7그램(g)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 도시공원은 폭염도 식혀준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광장의 표면온도는 여의도공원에 숲이 조성되기 전인 1996년에 주변보다 평균 2.5도(°C) 높았으나 공원 조성 후인 2015년에는 주변보다 평균 0.9도 낮아졌다.

▲ 서울 여의도동의 여의도공원. 아스팔트 도로였던 이곳에 푸른 숲이 조성된 후 이 일대의 표면 온도가 주변에 비해 낮아져, 도시공원이 폭염을 식혀주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 양안선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응해 공원부지를 지키지 못한다면 환경단체들의 지적대로 시민 건강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공원 면적은 10.1㎡(약 3평)지만, 2020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가 발효하면 4㎡(약 1.21평)로 줄어들 전망이다. 사람의 몸집은 그대로인데, 허파가 작아져 호흡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2011~2020)에서 2020년 목표로 잡은 12.5㎡(약 3.7평)는 물론이고,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기준인 9㎡(약 2.7평)에도 한참 못 미친다. 캐나다 토론토(29.7㎡, 약 8.9평), 영국 런던(24.2㎡, 약 7.3평) 등 선진국의 1인당 공원면적은 20~30㎡(약 6평~9평) 수준이다.

‘헌법불일치’ 결정이 낳은 일몰제, 국민 80% 이상 ‘몰라’ 

그렇다면 이런 심각한 문제를 부르는 도시공원 일몰제는 도대체 왜 시행하는 것일까.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공원은 도로 등과 같은 ‘도시계획시설’의 하나인데, 정부는 수십 년 전에 사유지를 포함한 전국의 대규모 땅을 도시공원부지로 지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통해 이를 사들인 뒤 관련 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장기간 땅을 사들이지 않아 토지주가 재산권 행사를 못 하면서 재산세만 내는 문제가 생기자 1999년 헌법재판소는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0년 7월 이 결정을 반영한 도시공원 일몰제가 생긴 것이다.

전국 도시공원의 절반 이상이 해제 위기에 있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달 27일 서리풀공원에서 만난 반포동 주민 강창수씨는 “철조망으로 막아서 통행하는 데 불편은 있었는데 (도시공원 일몰제는)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리풀공원을 찾은 시민 30명을 무작위로 인터뷰한 결과, 27명(90%)이 ‘도시공원 일몰제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환경단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20세 이상 서울시민 1001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기반 ‘공원 일몰제 인식 여론조사’(표본오차 ±3.10%, 신뢰도 95%)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4.8%가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했다.

▲ 도시의 허파기능을 하는 근린공원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 '일몰제'가 내년 7월부터 시행되지만 서울 시민 대다수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양안선

*도시공원 일몰제 (하)로 이어집니다.


편집 : 박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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