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세 번째 겨울 맞는 포항지진 ‘난민캠프’

꼭 2년 전인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주민 서민희(50) 씨는 남편과 해외여행을 갔다가 오후 1시쯤 집에 돌아왔다. 짐 정리를 마치고 잠깐 누워 쉬고 있던 오후 2시30분쯤 방바닥이 왔다 갔다 하고 천정 전등이 금방 떨어질 듯 흔들렸다. 일어나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휘청거렸고, 냉장고와 찬장에 들어있던 접시 들이 떨어져 부서졌다. 리히터 규모 5.4 포항지진이 그의 집을 덮친 것이다.

급하게 집에서 나온 서 씨는 가족과 함께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갔지만 사람들로 넘쳐나 들어가지 못했다. 흥해읍 남산초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서 씨 가족은 할 수 없이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진 곡강교 밑에 텐트를 치고 그해 12월말까지 지냈다. 12월의 곡강천은 추웠다. 추위를 막기 위해 텐트 바깥에 비닐을 쳐 놓으면 금방 김이 서리고 물방울이 맺혀 주르르 흘러내렸다. 해병대에서 군복무중인 아들이 휴가를 받아 집으로 왔을 때는 세 식구가 좁은 텐트에서 벌벌 떨며 지냈다. 더는 강추위를 견딜 수 없어 금이 가고 부서져 곰팡이가 핀 집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이듬해 2월 11일 리히터 규모 4.6 여진이 발생해 다시 집에서 나왔다.

▲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 포항지진 이재민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아직도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 김현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서 씨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흥해실내체육관 바닥에 설치된 대피소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포항지진 발생 후 3년으로 접어들었는데도 난민 아닌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몇 달이면 되겠지’ 했는데 3년째 ‘난민생활’

지진 발생 후 집이 파손되거나 훼손된 사람들은 서 씨처럼 대피소가 마련될 때까지 친지 집이나 텐트 같은 곳을 전전했다. 고생 끝에 대피소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어 겨우 비바람만 피했다. 최경희 한미장관맨션 비상대책위원은 “지진 나던 해 12월 대피소에 들어와 얇은 담요 한 장을 받았는데 체육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에는 턱도 없었다”고 말했다. 체육관 1층에는 바닥에 매트를 깔고 텐트를 쳤는데, 체육관 2층은 돌바닥 위에 그대로 텐트를 쳐 놓아 냉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진 발생 후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는 이곳 ‘난민캠프’에는 3백평 넘는 넓은 체육관 안에 난방기구라고는 냉방 겸용 온풍기와 전열기 서너 대가 전부다. 냉방 겸용 온풍기는 2층까지 따뜻한 바람이 가지도 않는다. 화재 예방을 위해 전열기를 더 들여놓지 못하게 해서 뾰족한 난방대책이 없다. 체육관에 설치돼 있는 공기청정기 몇 대가 냉난방 기능이 있지만 청정기 근처에만 미지근한 기운이 있고 다른 곳에는 효과가 없다. 집에서 갖고 온 이불을 두 겹 깔고 온수를 가득 담은 패트병을 이불 속에 넣고 자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잠깐이지 새벽이 되면 한기가 덮쳐 온다. 대피소에서 핫팩을 나눠주지만 언 발에 뭐 하기나 마찬가지다. 겨울이면 공기가 건조해져 텐트 위해 수건을 걸쳐 놓는다.

겨울에 추운 체육관은 여름에는 덥다. 대피소 2층 이재민들은 더위를 피해 보려고 찬바람이 나오는 공기청정기 앞으로 몰려 든다. 그나마 냉방 기능이 약해 찬바람을 쐴 수 있는 건 공기청정기 바로 앞에 앉은 사람뿐이다. 선풍기는 식당에만 있다. 개별 냉장고는 없고 식당에 음료 보관용 냉장고가 하나 있을 뿐이다. 시원한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벌서듯 여름을 났다. 지진으로 부서진 집처럼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건 대피소도 마찬가지다. 더위도 더위지만 남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아무리 더워도 옷을 다 입고 있어야 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많아 여의치 않다.

이곳에서 여름 두 번을 지내고 세 번째 겨울을 맞는 서 씨는 벌써 겨울 날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친다. 한두 달도 아니고 벌써 3년째로 접어드는 체육관 바닥 텐트 생활이 끔찍하기만 하다. 그는 지진 발생 후 난민생활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전역한 아들은 대구에서 자취방을 얻어 학교를 다니는데, 자신이 일을 그만둔 뒤로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세를 내고 있다.

▲ 흥해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 텐트. 지진 발생 2년이 넘어 가는데도 일부 이재민들은 아직도 이곳에서 난민 아닌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 김현균

파괴된 일상,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도 이곳 텐트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 가면 줄을 서야 할 때가 많고, 샤워장에도 사람들이 많을 때는 기다려야 한다. 샤워장도 처음에는 수도꼭지 없이 샤워기만 달려 있어 간단하게 손발 씻는 것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서 씨는 “좋아서 하는 캠핑도 사나흘만 지나면 불편하고 힘들다”며 “한두 달도 아니고 2년을 텐트에서 사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나 해봤느냐”고 반문했다.

지내는 것도 그렇지만 먹는 일도 간단치 않다. 서 씨는 이곳에서 지내는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세 끼 끼니는 포항시가 흥해읍에 있는 식당과 계약해서 아침∙점심∙저녁을 날라준다. 반찬은 주로 김치와 나물이고 1주일에 한 번꼴로 고기가 나온다. 매일 삼시 세끼를 식당 밥 먹는 것도 질리는데, 그마저 거의 변함 없는 메뉴가 나오니 밥 먹는 일도 고역이다.

체육관에 설치해준 텐트가 한 평 남짓이어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옷가지들은 당장 입을 것과 필요한 것만 가져다 놓고 나머지는 부서진 집에다 두고 가져다 쓴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라 냉난방과 환기를 안 하다 보니 집에 놔둔 옷가지들은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지진이 난 뒤 물까지 새면서 온 집안에 곰팡이가 피었다. 현금이나 귀중품은 둘 데가 없어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차에 실어 둔다.

텐트에서 지내면 매일 씻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종종 동네 목욕탕 등에 가지만 그것도 매일 갈 수도 없고 사람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 세탁물은 대피소에 있는 두 세탁기를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다 보니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대피소에는 젊은 부부가 있어 애기를 키우는 집도 있는데 남녀 화장실 어디에도 기저귀 교환대 같은 것은 없다.

▲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 붙어 있는 이재민들 생각을 적은 글들. ‘가을인데 겨울보다 더 춥다’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언제까지 방치하나’ 등의 내용이 눈에 띈다. © 김현균

대피소에는 부모를 따라 나와 함께 지내는 초중고생이 10여 명 정도 된다. 아이들은 춥고 덥고 답답하니 오래 이곳에 있지 못하고 대개 집과 대피소를 오간다. 서 씨는 “대피소와 집을 오가며 지내는 아이들은 집에 낀 곰팡이 때문에 콧물을 달고 살고, 건강이 나빠져 학교를 못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생들은 대피소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수선한 분위기도 그렇지만 밤 10시가 되면 대피소 불이 꺼진다. 개인 스탠드를 사용하려고 해도 전기 플러그를 꽃을 곳이 없다. 핸드폰을 충전하려면 대피소에 있는 공용 충전기를 이용해야 한다.

서 씨는 “집 놔두고 나와 사는 게 길어지니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일상이 파괴되다시피 한 것이다. 생활이 아닌 생존 차원의 임시대피소 피난살이가 2년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벽에 금 가고 물 새는데 “보수하면 문제없다”

서 씨 가족처럼 지금 이곳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220여개 텐트에서 지내는 이재민은 90여세대 200여명이다. 거의 대부분이 흥해읍에 있는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다. 정밀진단 결과 한미장관맨션 옆에 있는 대성아파트 4개동은 ‘사용불가’ 판정을 받아 임시주택으로 이주했는데, 한미장관맨션은 ‘수리 후 사용가능한’ 소파(小破; 시설물안전등급 C) 판정을 받자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피소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구조진단업체에 의뢰해 다시 조사한 결과 2개 동은 시설물 안전등급 D등급, 다른 2개 동은 E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주요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해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태’이고, E등급은 ‘심각한 결함 때문에 시설물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을 해야 하는 상태’다. 포항시가 판정한 C등급은 ‘주요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발생했으나 안전에는 지장이 없고 간단한 보강이 필요한 상태’다. 포항시 조사와 주민 자체 의뢰 조사 결과가 다른 이유는 심사기준 차이 때문이다. 포항시는 아파트가 신축됐을 당시인 1988년 설계기준을 적용했고, 주민들이 의뢰한 조사업체는 현재 건축기준을 적용해 조사했다. 주민들은 포항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을 준비중이다.

주민들은 “벽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집을 수리하면 괜찮다며 들어가 살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믿고 들어가 살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자가 실제로 한미장관맨션을 가보니 외관상 위층보다 1∙2층이 많이 훼손돼 있었다. 아래층이 위험해 보이는데 위층은 당연히 들어가 살 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정은 완전히 부서져 단열재가 드러나 있고, 화장실 벽은 길게 금이 가 있었다. 아파트 주변을 돌아보니 건물 주변 땅이 5cm 정도 가라 앉아 있고 사람 손이 들어갈 정도로 건물과 땅이 벌어진 곳도 보였다. 주민들은 아파트 지하에도 하반신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 있고 물 때문에 벽체에서 잔해 같은 것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들어가 보려고 하자 위험하다며 제지해 들어가지는 못했는데, 전문가들은 보수하면 괜찮다고 할지 모르지만 외관상으로만 봐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상태였다.

이런 지경인데 포항시나 중앙정부가 안전진단 결과만 갖고 “보수하면 들어가 살아도 된다”고 하자 주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 들어가 살 수는 없다”며 대피소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대피소 울타리에 ‘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되나?’ ‘엉터리 정밀안전점검 이재민은 두 번 운다’ ‘눈감은 정부, 귀 막은 포항시, 약속 저버린 포항시장 물러나라’는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안전한 주거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 대피소 안팎에 내건 사진과 그림들. 부서진 건물과 금이 간 벽체 등 지진으로 파손된 부분들이 사진에 보인다. © 김현균
 
한미장관맨션 주민에게 제공받은 내부 사진. © 김현균

포항시는 “국회에 계류된 포항지진특별법이 통과돼야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며 우선은 대피소 주민을 대상으로 LH 임대주택 이주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대피소 이재민들 중 일부는 신청을 했으나 상당수는 포항시 조처가 미봉책이라며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임대주택을 배정받아 이사를 가더라도 2년이 지나면 그 곳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지난달 30일 서울로 올라가 국회 앞에서 ‘조속한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5월 발의된 ‘포항지진의 피해 배·보상과 도시재건 관련 특별법’은 △ 지진 피해에 대한 배·보상의 종합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 △ 지진 피해 배·보상 범위를 국내 모든 지역과 국민으로 확대 △ 지진 원인으로 지목된 포항지열발전소의 조기폐쇄 △ 국가가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경제활성화 방안 마련 등 종합적인 지원대책 수립방안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비롯한 다른 포항지진 특별법안은 5개나 올라와 있지만 아직까지 상임위에서 검토중이다. 늘어진 이유는 여야간에 격해진 정쟁과 특별법 일부 조항을 둔 여야간 이견 때문이다.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조항은 이재민 지원금을 '손해배상금'으로 볼 것인지, '지원금'으로 볼 것인지다. 여야의 정쟁과 무관심으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이 시간에도 포항지진 이재민들은 체육관 바닥의 차가운 텐트 안에서 춥고 불편한 밤을 지새고 있다.

(포항/김현균 기자)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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