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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과 나 - '분노' '잊혀짐'

기사승인 2019.11.12  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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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자들의 시선] ①

'청년기자들의 시선'은 <단비뉴스>를 만드는 청년기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진영논리와 이익추구에 가려져 잊힌, 주목해야 할, 다시 발견해 내야 할 세상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청년기자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이를 찾아내 인간, 평화, 민주라는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연재는 매주 한 주제 아래 청년기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키워드로 정리해 담아낸다. 첫 시선은 ‘2019년 대한민국과 나’로, 지금 한국사회를 ‘분노, 진정성, 잊혀짐, DMZ’ 네 키워드로 바라보았다. (편집자)

<키워드 하나, 분노>

갑작스런 분노란 없다

2019년 대한민국이 분노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의혹으로 청년들이 분노했고, 사법개혁 파동을 바라보며 국민들이 분노했다. 대규모 서초동 촛불시위를 보고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시위 인파가 몰렸다며 놀라워했다. 잘못 봤다. 갑작스런 분노란 없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건 아니다. 당시 평민은 정치에서 배제되고, 세금에 억눌렸다. 불평등한 시기를 지나온 분노의 폭발이었다. 서초동 촛불은 우리 사회에 쌓이고 쌓인 화가 역치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역치란 외부 환경 변화에 반응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자극을 말한다.

   
▲ 갑작스런 분노란 없다. 프랑스혁명도 분노의 역치가 폭발한 것이었다. ⓒ Pixabay

나는 화의 역치가 높다. 웬만한 자극에는 화를 잘 안 낸다. 분노의 역치가 다른 사람보다 높다 보니 애인과도 싸울 일이 별로 없다. 싸우기보다는 한 명이 화를 내면, 한 명이 화를 풀어주는 역할까지 한다. 역치가 높다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센 자극이 주어지면 평온하던 감정 게이지 화살표가 분노로 방향을 튼다. 화가 난 이후 후폭풍은 거세다. 화를 내고 그 길로 관계가 끝난 경우도 있다. 나만이겠는가, 역치를 넘어선 분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분노가 역치를 넘어서면 극단적 상태로 발현된다. 폭력이 대표적이다. 순간적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이는 우발적 범죄, 묻지마 범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강력, 폭력범죄 중 3분의 1이 분노형 범죄다. 운전자 10명 중 5명은 보복운전으로 무차별 위협 운전을 경험했다. 분노가 폭력화, 범죄화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분노의 원인을 성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요구 실현이 부정될 때 더 극단적으로 분노한다.

창조적 분노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창조적 분노가 필요하다. 원인을 성찰하고 대안을 찾는 분노다. 분노는 누그러뜨려야 하는 부정적 감정이 아니다. 분노는 문제인식의 출발점이다. ‘미투 운동’을 보라. 집단적 분노는 사회 구성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대안을 고민하게 만든다. 시민들은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터져 나온 각계각층의 미투 증언과 우리 사회에 물들어 있는 위계에 의한 폭력과 권력에 같이 분노했다. 시민들이 서로의 분노를 확인하며 연대감을 확인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자 사회가 변했다. 대법원 판례에 ‘성인지 감수성’이 등장했다. 사법기관이 피해자를 이해하는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 분노 없이 변화 없다. 창조적 분노는 세상을 발전시킨다. ⓒ flickr

분노 없이는 변화도 없다. 분노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다. 서로 분노를 들여다보며, 삿대질만 하는 형국에서 벗어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화난 사람들과 관계 단절을 원하지 않는다면.

(양안선 PD)

 

<키워드 둘, 잊혀짐>

서초동을 가득 메운, 백만 명 넘게 운집한 촛불집회를 본다. 대중의 분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론 한편에 마음 한구석이 아연하다. 조국이라는 사람. 편법과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 백만 개 촛불을 그 사람을 위해 들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2019년 촛불이 밝혀지기까지 내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수많은 파업들, 눈물들, 죽음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슬프고 외롭게 싸우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 모두가 주목했던 서초동 촛불시위현장, 그러나 이들 촛불 뒤에는 잊혀진 눈물과 죽음들이 있다. © 박지영

잊혀진 눈물과 죽음들

시위현장에 처음 나간 건 학부 1학년 때였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단체였던 ‘알바연대’와 함께였다.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알바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소리치며 알록달록하게 꾸민 피켓을 들고 행진하다가 명동 한복판에 드러누웠었다. 성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을 외치며 가발을 쓰고 진하게 화장한 퀴어 퍼레이드는 떠들썩하고 즐거웠다. 민중총궐기 시위 때는 차벽을 세운 경찰차가 최루액 섞인 물줄기를 뿜어냈다. 물에 맞은 곳이 따갑고 아팠다. 겪어본 적 없던 무섭고 살벌한 현장이었다. 그날, 물대포의 직사살수로 백남기 농민이 명을 달리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겨울에 온몸을 던지며 오체투지로 싸웠다. 도로교통에 방해된다며 경찰에 막혔을 때는, 3시간이 넘게 찬 바닥에 엎드려 버텼다. 우리는 그들에게 외투를 벗어 덮어주며 몸이 굳지 않도록 손난로로 팔다리를 문지르고 주물렀다. 사람 머리 옆에 둔 발을 치우라고 고함지르는 우리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내 또래 젊은 의경의 살벌한 눈초리가 슬펐다. 강남역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포스트잇을 붙이고 국화를 든 채 추모행진을 했다. 그때 수많은 여성들이 매년 무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전해 들었다. 괴로웠다. 세월호를 기리러 거리로 나온 젊은 청년들은 방패로 떠밀려 차도에 넘어진 채 끌려갔다. 팔짱을 낀 채로 누워서 버티던 친구들은 끌려가 유치장에 갇혔고 나는 발만 동동거렸다.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느라 고공농성한 할머니도 만났다. 부당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 앞에 비닐텐트를 치고 수백일 넘게 1인 시위를 이어가는 나이 든 교수도 만났다.

   
▲ 오체투지하는 기륭전자 노동자와 그 앞을 가로막은 경찰들의 발. 한겨울 길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 않고 버티는 이들의 절박함에 지켜보던 사람들도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결국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 노동자 연대 이미진

외롭게, 자신을 던져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자신을 버리고 싸우는 투쟁들이 있다는 것을. 이들은 부당한 기득권에 맞서기 위해 자기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 걸고 싸우고 있었다.

서초동에 촛불이 켜지던 그날도 발전사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청와대 앞에 모여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노무비 착복을 근절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한국도로공사 요금 수납원들도, 삼성해고자 김용희씨도 길에서 하루를 보냈다. 지금 누가 고립되어 싸우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백만명이 함께하기로 결심한, 기꺼이 촛불을 들 만한 ‘더 가치있는’ 투쟁은 그날 서초동에 있었을 뿐이다.

(김정민 기자)


편집 : 김정민 기자

양안선 PD 김정민 기자 yasun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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