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돈’

▲ 최유진 기자

“얼마를 주면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까요?” 충남연구원 박경철 책임연구원이 지난여름 ‘농민기본소득제’에 관해 강연하면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곧 금액을 부르는 답들이 터져 나왔다, 마치 ‘입찰가’를 부르는 경매처럼.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이도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 그 학생이 말했다. “영화관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영화관이면 충분할까? 실은 농민이 되는 것보다 농촌에서 잘 살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도시에는 흔한 생활편의시설이 농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농촌지역 생활인프라 보급률’에 따르면, 농촌지역 의료기관수 비율은 2015년부터 3년간 계속 11% 대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주요과목 진료가 가능한 시·군 비율은 2015년 76.8%에서 2017년 71.7%로 낮아졌다. 목욕탕이나 세탁소조차 없는 읍∙면이 많다.

열악한 농촌을 지켜온 이들은 역시 ‘농민’이다. 최근 이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를 벗어나려면 농민이 사라지는 걸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아예 없어지진 않더라도, 자족 기능을 상실하면 ‘지방소멸’에 이른다. 요인은 심각한 고령화다. 정부는 청년층에 귀농을 장려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청년들은 1인당 월 최대 100만원을 지원받고 ‘창업농’으로 살 수 있다. 독립경영 3년이 지나 지원이 끊기면 이후 소득은 미지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7년 도시근로자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중이 56.9%로 떨어질 거라 전망한다.

▲ 농민들이 농사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가을걷이 때다. © Pixabay

“밭에서 금방 캔 양파가 왔습니다, 아주 싸게 드립니다, 헐값에 드립니다.” 구구절절 외치길래 창문 너머로 골목을 내다봤다. 작은 트럭에 빨간 양파망이 가득 실려 있다. 농촌에서 도시까지 싣고 온 건, 농민의 피땀이었다. 고된 노동의 산물을 헐값에 흥정해서야 겨우 팔 수 있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소농, 가족농, 고령농이 농민으로 존속하는 것은 ‘수익’만 놓고 본다면 어려운 일이다. 농사에 매진해도 남는 게 얼마 없거나 빚이 쌓인다. 도시보다 일자리 선택 폭이 좁은 농촌에서는 겸업도 한계가 있다. 농(農)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명감이 아니고서야, 농촌에 머릿수를 채워줄 이가 있을까? 언제까지 농민에게 농촌에서 ‘적게 벌고, 적게 누리는’ 삶을 살도록 방치하고 있을 것인가?

농민은 농촌 땅을 생산수단으로 삼고, 국민의 먹거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 최초로 해남군이 지역상품권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했다. 온전한 ‘농민기본소득제’가 시행된 건 아니지만 논의에 물꼬를 텄다. 앞으로 농민이 ‘공익요원’으로서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연봉 협상’을 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4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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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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