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인문주간] 정이현 작가 북콘서트

▲ 세명대 인문주간 '클래식과 함께하는 북콘서트'에 참여한 청중들. ©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이 주관하는 열네 번째 ‘인문주간’이 29일 충북 제천 세명대 민송도서관 라운지에서 개회식을 하고 ‘클래식과 함께하는 북콘서트’ 등을 열었다. 북콘서트에는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등을 펴낸 소설가 정이현이 초대됐다. 이번 인문주간은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라는 주제로 열린다. 26일 ‘다문화가족 한국역사문화체험’ 행사를 시작으로 11월 3일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예술기행’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에 관한 사회적 요구를 수렴하는 포럼, 전시, 연주회 등의 17개 행사가 준비돼있다. ‘인문 주간’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해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등 전국 39개 기관에서 여는 인문학 축제다.

지역과 시민이 함께하는 인문학의 향연

▲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연 ‘인문도시제천 6행시 공모전’ 대상 수상자가 당선작을 낭독하고 있다. © 정소희

류의 역사는 별빛을 따라 흐르고

학은 청풍 호에 녹아 물결칩니다.

시의 삶은 유서 깊은 의림지에서 숨 쉬어

한 수, 그림 한 폭, 노래 한 자락

림의 둘레길 따라 용두산으로 날아올라

개의 마음을 거슬러 달빛도 넘나드는 아름다운 제천입니다.

개회식 후, 지난 여름 공모한 ‘제천지역 문화자산 UCC 공모전’과 ‘인문도시제천 6행시 공모전’의 시상식이 열렸다. 6행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의림지역사박물관 장은희 씨는 운을 띄우는 청중의 목소리에 맞춰 현장에서 6행시를 낭독했다. UCC 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세명대 국제언어문화학부 2학년 박명주(22) 씨는 ‘대학을 오면서 서울을 떠나 제천에 왔는데,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탐방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며 공모전에 참여한 계기와 수상소감을 밝혔다. 개회식에는 이상천 제천시장 등이 함께해 자리를 빛냈다. 이용걸 세명대 총장은 ‘인문학 소양을 키우기 위해 홀로 있기를 실천하고 책을 읽으면 개인이나 가정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며 ‘인문주간’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소설가 정이현 씨와 함께하는 북콘서트에 앞서, 작은 연주회도 열렸다. 목관악기 오보에, 건반악기 피아노, 두 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로 구성된 ‘라온앙상블’의 5중주였다.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즈의 ‘Ob-La-Di, Ob-La-Da’,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와 <알라딘>의 OST, 얼터너티브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 등 익숙한 대중 음악이 클래식 악기로 연주됐다.

웹소설의 다른 즐거움 인정해야”

북콘서트 사회를 맡은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김기태 교수가 정이현 작가에게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은 디지털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질문했다. 정 작가는 얼마전 자신이 여행한 경험에 빗대 독서의 가치를 역설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거제도에 갈 일이 있었어요. 가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더라고요.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KTX, 고속버스를 탈 수도 있었습니다. 마음먹으면 두세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완행열차를 타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이런 시대에 누군가 책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해 이런 게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했지만 제 생각에는 유일하게 단축되지 않은 것, 똑같은 속도로 해야 하는 일이 책 한 권을 읽는 일인 것 같아요. 100년전 사람이 책 읽는 속도와 지금 우리의 속도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우리에게 여전히 그만큼의 속도가 필요하고, 지켜야 하고 앞서갈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믿고 쓰고 있습니다.”

소설가 박민규는 2018년 발표한 9년만의 장편소설을 웹툰, 웹소설 전문 사이트에 무료로 공개했다. 포털사이트, 웹툰 전문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기존의 ‘등단작가’와는 다른 출발선을 가진 작가들이 등장했다. 김 교수는 “일부 문학계 인사가 ‘작품을 쓰는 작가와 단순히 책을 내는 저자는 구분해야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제가 하는 것이 일종의 순수문학, 본격문학이라고 얘기되지만 그 반대는 비(非)본격문학이나 대중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웹소설에 독자가 많고 이른바 본격문학에서 맛보는 즐거움이 아닌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독자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작품 세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작가의 ‘힘’ 고민한다”

정 작가가 2016년 발표한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표제작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을 엮는 소설집을 발간할 때, 작품 중 대표작을 선정해 표제작으로 삼는다. 이 책에는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없는데, 정 작가가 탈고 후 작품에서 공통으로 얻은 인상을 소설집 제목으로 정했다. 작가가 발표한 최근작은 ‘폭력’을 다루는 것이 많다. 2016년 발표한 <상냥한 폭력의 시대>와 최근작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도 학교폭력을 다룬다.

▲ 2018년 정이현 작가가 발표한 중편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의 소재는 학교 폭력이다. © 정소희

정 작가는 지금 우리 사회가 ‘상냥한 폭력’을 가장해 타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준다는 청중의 질문에 공감했다. 작가는 얼마 전 전자제품 수리기사의 친절도에 만족도 점수를 매기면서 자신이 폭력적인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음을 체감했다. SNS나 온라인 서점에 이유없이 자신의 작품에 악평이 달려있으면, 상처를 받는다고도 덧붙였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폭력을 소재로 글을 쓰며, 작가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정이현 작가는 “저는 종이를 들 수 있는 힘과 타이핑할 수 있는 힘 밖에 없지만, 그 힘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작품 속 도시와 인물 묘사는 르포적 시각”

정이현 작가는 20대 초반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해 대학을 다니다 20대 중반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사회과학도로 훈련한 경험이 있어서, 소설 속 주제들은 사회학적으로 분석 가능한 범주에 있다. 특히 초기작의 경우 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삶, 파편화한 개인, 현대 여성의 내면 등이 주제였는데 도발적이고 대담한 표현방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작가는 30대 초반에 쓴 작품을 지금 보면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회학의 시선에서 르포를 쓰듯, 다큐멘터리를 찍듯 소설을 썼기 때문에 '덤비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클래식과 함께하는 북콘서트’에서 정이현 작가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정소희

행사 말미 정 작가는 책을 고르는 기준과 방법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책이 안 읽히는 시대일수록 지역에서 작은 독서모임을 꾸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기성세대는 당대의 작가와 가장 젊은 작가의 책을 읽고 요즘 세대는 50, 60년대 문학 작품을 읽는다면 세대간 소통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북콘서트에 참가한 제천시민 최숙자(49) 씨는 ‘멀리, 비싼 여행을 가기 어려울 때 책으로 떠나는 여행만큼 행복한 게 없다’며 독서의 즐거움이 더해진 북콘서트 참여 소감을 밝혔다.


편집 :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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