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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가기 전에 다시 듣는 ‘실낙원’

기사승인 2019.10.27  13: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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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현장] 성수대교 붕괴 25주기

찬 바람이 단풍을 재촉하는 10월 끝자락, 성수대교 북단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인데 성수대교가 보이는 언덕 위 나무들은 아직 가을을 맞을 준비가 안 된 걸까? 조금만 더 푸르름으로 남아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어렸던 나무들은 25년의 세월 속에 어른이 돼 희생자 유가족의 현수막을 들고 서있는데, 그때 희생자 중에서도 어린 학생들은 삶과 꿈 모든 것을 멈췄다.

‘엄마는 여전히 기억하고… 아직도 사랑해’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연수’(무학여고 2학년)와 그를 따라간 아버지를 어머니는 그렇게 기억하려 애쓴다.

   
▲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 앞 주차장 옆에는 유가족이 걸어 놓은 현수막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 임지윤

끝내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

25일 찾아간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에는 나흘 전 유가족들이 치른 추모식의 흔적인 듯 꽃바구니 너덧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위령비에 스산한 가을바람이 스쳐간다.

“갑술년 시월 스무하룻날 7시 30분 끝 즈음
비아침 서둘러 나선 등교 길 출근 길에
분하고 원통할사 비명에 가신 이들 애닯다.
부실했던 양심 탓이로다. 옷깃 새로 여미고서
다리 다시 열어 신세기를 기약한 날에도 설운지고.
 (중략)
때로 너무 푸르고 눈부시게 서러운 날에는
이슬 맺힌 한 떨기 풀꽃으로 피어 나소서.
더러는 날개 푸른 물새 되어 쉬다 가소서.” (위령비문)

   
▲ 서울 성동구 뚝섬로 서울숲 끝자락, 성수대교가 보이는 한강 언덕에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가 서있다. ⓒ 임지윤

생성과 소멸, 만남과 헤어짐을 형상화했다는 위령탑 뒷면에는 그날 사고로 숨진 3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학여고 2학년이던 ‘이연수’라는 이름도 보인다. 1994년 10월 21일 비 내리는 오전 7시 40분, 연수는 성수대교와 함께 추락한 16번 시내버스 안에서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갔다. 물에 젖은 채 돌아온 가방 위로 아버지의 눈물이 떨어졌다. 자신에게 매를 든 아버지가 행여나 자책이라도 할까 걱정하는 딸의 마음이 담긴 편지가 그 가방 속에 있었다.

   
▲ 위령탑에는 서른둘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무학여고생 ‘이연수’도 보인다. ⓒ 임지윤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아빠. 저는 요즘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아빠가 저를 때리셨을 때 제 마음보다 백 배, 천 배나 더 마음 아프실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빠! 저를 때리신 것이라 생각지 마세요. 제 속에 있던 나쁜 것들을 때려서 물리치신 거라 생각하세요. 그래서 착한 것들로만 가득한 딸이 되게끔 하신 거라 생각하세요….

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설사 고통과 괴로움이 따를지언정 아빠가 저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또 제가 얼마만큼 더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지날 수도 있었겠지요. 아빠가 얼마만큼 힘드신지도 모르고….

저를 혼낸 것을 몹시도 마음 깊숙이 괴로움이 있으시다면, 아빠, 저를 위해서 한 번 더 마음을 풀어주시지 않겠어요? 아직은 덜 익은 열매이지만 비바람과 천둥 번개 서리를 이겨 낸 아주 멋진 열매로 아빠 앞에 서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빠,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제 마음이 아픈 만큼이나 저도 정말로 아빠를 사랑합니다… 아빠. 저도 잘할게요. 아빠! 꼭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이제부터! 아빠도 파이팅!

94년 10월 20일 아빠를 사랑하는 연수가 드려요.’
(1994년 10월 22일 동아일보)

가혹한 운명의 시간들, 이 끝없는 형벌

화가를 꿈꾸며 전날 밤까지도 학교 축제에 출품할 미술작품을 그리느라 새벽 2시가 돼서야 잠든 딸, 연수는 그렇게 가버렸다. 사흘 전 딸에게 매를 들었던 아버지는 딸의 아팠을 마음도 풀어주지 못한 채 그렇게 보냈다. 평소보다 10분 늦게 나간 딸에게 겉옷도 챙겨주지 못했는데,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연수의 모습에 아버지는 그냥 무너져 내렸다.

아직도 웃고 있을 것 같은 딸을 데려간 가혹한 운명에 순응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나날을 살았다. 그렇게 매일을 벌받는 마음으로 산 아버지는 2년 뒤인 1996년, 결국 간암에 걸려 사랑하는 딸을 따라갔다. 그날 참사를 빚은 사고책임자들은 그대로 살아 숨 쉬는데, 가을 하늘은 잠시 떨어졌던 두 운명을 다시 만나게 했다. 그날의 가을 하늘은 ‘이제는 안다’는 듯 나란히 잠든 부녀의 묘지를 햇살로 비추고 있다. 야속한 세월은 빛 바랜 추모비와 시든 헌화에 하루하루를 더한다.

   
▲ 짙어 가는 단풍 사이로 보이는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탑. 그날의 아픔과 슬픔에 잠시 머뭇거리는 듯 파란 잎들이 남아있다. ⓒ 임지윤

아버지의 속죄가 담긴 노래 ‘실낙원’

그날처럼 가을비라도 내릴 것 같이 흐린 하늘 아래 어디선가 가수 조관우의 ‘실낙원’이 들려올 것만 같다. 연수 아버지가 딸에게로 가버린 지 3년 뒤인 1999년 8월에는 연수와 함께 16번 시내버스를 타고가다 변을 당한 장세미(무학여고 3학년) 씨의 아버지가 딸 곁으로 갔다. 서른둘 희생자 중 무학여중고 재학생의 여덟 부모들이 어찌 다른 마음일 수 있을까? 연수 아버지도, 세미 아버지도, 그리고 어머니들도 하루아침에 자녀를 잃은 이들은 모두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 괴로워하다 위령탑 앞에서 스스로 삶을 접어버린 것이다.

세미 아버지가 딸을 찾아 스스로 떠난 지 넉 달이 채 안된 1999년 12월 가수 조관우는 ‘실낙원’을 타이틀곡으로 한 5집 음반을 내 놓았다. 세미 아버지의 죽음을 소재로 성수대교 붕괴 참사에 딸을 잃은 아버지 마음을 담은 노래였다.

‘실낙원(失樂園)’은 영국 시인 존 밀턴이 지은 대서사시로 ‘잃어버린 낙원’이란 뜻이다. 아담과 이브가 지옥을 탈출한 사탄에게 유혹돼 원죄를 지어 낙원에서 추방됐다가 하느님에게 속죄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고난이나 슬픔, 아픔을 느낄 수 없는 곳이 ‘낙원’이다. 딸을 잃은 부모에게는 고통 속에 눈물로 지새운 나날들이 ‘실낙원’이었다.

   
▲ 조관우의 5집 음반 타이틀곡 ‘실낙원’은 성수대교 붕괴 참사에 딸을 잃은 아버지 마음이 잘 담겨있다. ⓒ VIBE

이제 그 눈물 거두어 마지막 세상을 봐.
다시 깨어난 시린 아침.
그래 함께 하는 거야. 서로의 가슴 안고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고 긴 잠 속으로
거역할 수 없는 건 시작된 사랑일 뿐.
결코 이별은 아닌데
가혹한 운명의 얼굴, 이 끝없는 형벌에
두 마음 쉴 곳 없어.

이대로 떠나가려 해. 늘 쫓겨온 사랑.
비로소 자유로워. 영원한 꿈을 꾸면 돼.
편한 여행처럼. 이제 곧 닿을 세상에서.
지친 가슴 안았지. 아픔에 몸을 떨며.
이미 미쳐버린 사랑.
비웃으며 돌아서는. 이 잔인한 세상엔.
아무런 미련 없어.
(조관우, 실낙원)

   
▲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 성수대교 남단에서 세 번째 상부 트러스트가 무너져 내려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사진은 <조선일보> 1994년 10월 22일 자 1면. ⓒ <조선일보>

곳곳에서 그치지 않는 유가족들의 눈물

가혹한 운명의 얼굴, 이 끝없는 형벌에, 두 마음 쉴 곳 없어 끝내 딸의 곁으로 달려가버린 아버지.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딸도,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고통받다 끝내 딸의 곁으로 달려간 아버지도 더 이상은 없어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게 오래 기억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비극은 되풀이된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개통 테이프를 끊은 뒤 걸어서 다리를 건너며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은 지 15년 만에 성수대교는 무너졌다. 원인은 ‘부실시공’. 당시 건설사인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입증할 자료가 충분했음에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원종 서울시장은 사고 당일 책임을 물어 경질됐지만 수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과 가족만 가슴을 쥐어 뜯고 울부짖었을 뿐 누구도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멀리 남산을 배경으로 성수대교가 보인다(위). 25년 전 무너진 세 번째 상부 트러스트의 지금 모습(아래). 철골구조물을 대폭 보강해 새로 만든 다리위로 버스와 승용차들이 무심하게 지나간다. ⓒ 임지윤

있을 수 없는 대형 사고를 겪고도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았다. 그 사고로부터 1년도 채 안 된 1995년 6월 29일, 지은 지 5년 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9년 광주 클럽 붕괴 등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날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성수대교 밑 한강은 여전히 흐른다. 수달, 가숭어, 저어새, 고라니, 세모고랭이 같은 생물들이 몸을 의탁한 채 살아 숨 쉰다. 성수대교 위에는 많은 차량이 지나다닌다. 모두의 기억 속 그날의 아픔은 까마득히 잊은 채 또 하루가 간다.


편집 : 정소희 PD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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