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19 아시아미래포럼 ‘지속가능 미래’ 모색

“기후변화가 분쟁을 부르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불법 유해폐기물이 세계적으로 수송되는 것을 보면 유해 독성물질은 고임금 국가에서 저임금 국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환경위기에 더욱 취약한 계층이 있고, 국가별로 좀 더 취약한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환경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번영이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하며 ‘순환경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 23일과 24일 이틀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19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첫날 오전 연사로 나선 마르코 마르투치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태평양환경보건센터장은 기후위기가 불평등의 비극을 가중시킨다고 역설했다.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라는 주제 아래 <한겨레>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 그는 ‘환경위기와 건강불평등’에 대해 연설했다. 

유럽 환경요인 사망자,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의 5배

▲ 23일 오전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19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마르코 마르투치 세계보건기구 아시아태평양환경보건센터장이 ‘환경위기와 건강불평등’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이나경

마르투치 센터장은 자신이 공동연구에 참여한 ‘유럽의 환경·건강 불평등’ 보고서를 인용, “유럽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요인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소득 하위계층이 상위 계층보다 사망 위험이 5배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투발루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바람에 물에 잠기거나 기상이변에 시달리는 등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가난한 나라들이 고통 받고 있다”며 “이런 환경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현실이며,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만 상승해도 인간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며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1도 가량 올라갔으며, 과학자들은 온도 상승폭이 1.5도를 넘어설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생태위기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탄소기반 문명 벗어나 공유경제로 가야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한계비용 제로 사회> 등을 쓴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이날 오전 영상 강연 ‘두 개의 위기, 미래를 위한 선택’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가 기후변화와 불평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두 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석탄·석유를 태우는) 탄소기반 문명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두 개의 위기,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주제의 영상 강연에서 “모든 나라가 탄소기반 문명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이나경

리프킨 이사장은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8명의 재산을 합친 것이 인구 절반에 달하는 35억명의 재산과 같고, 기후변화는 ‘대멸종’을 부르고 있다”고 우려했지만 “디지털 소통혁명이 위기에 처한 시장경제를 공유경제로 바꿀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기도 했다.  

그는 인류와 지구생태계를 구할 수 있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소통)과 재생에너지, 새로운 운송체계 등의 융합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한 사회적 생산기반(인프라) 구조의 변혁이 ‘3차 산업혁명’이라고 소개하고, 최근 일반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용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 가수 싸이의 음악영상을 3개월 만에 30억명이 봤던 것과 대중참여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성공이 ‘한계비용(생산량 증가에 따라 추가되는 비용)이 거의 없는 생산’과 ‘지식의 민주화’ 사례라며 “이게 바로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 제러미 리프킨 이사장의 영상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5백여명의 청중. ⓒ 이나경

리프킨 이사장은 “태양광과 풍력 관련 비용은 이제 천연가스보다 저렴해졌다”며 이들 재생에너지를 쓰는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가 향후 10년 안에 공유서비스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유럽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시티, 즉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을 이용해 교통, 환경, 주거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도시로 전환하는 것이 인류를 빠르게 ‘탄소배출 제로 경제’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스마트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재빨리 이동하는 국가들은 생존하고 번영할 것"이라며 IT 강국이자 문화적 아이콘이 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급증하는 기후난민, 심각한 난제로 부상 

23일 오전 기조강연을 할 예정이었던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건강이 좋지 않아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며 이날 오후 30분가량 실시간으로 화상 강연을 했다.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그는 기후난민으로 전 세계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건강 상 이유로 비행기를 타지 못한 리처드 세넷 교수가 영국 현지에서 화상 통화로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 주제의 강연을 하고 있다. ⓒ 이나경

세넷 교수는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대규모 이주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난화 탓에 특히 수자원 부족이 심각해지는데,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주변 지역은 이미 물을 찾아 떠나는 기후이주민이 급증하고 있다. 세넷 교수는 “이들이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으로 가기보다 유럽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2015년 내전 등 분쟁을 피해 중동 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로 인해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이 큰 홍역을 치렀고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세넷 교수는 “기후난민은 현재 1억7천만명 규모인데, 향후 6억5천만명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난민 당사자는 물론 이들을 받아줄 도시에도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현재 UN난민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자국에서 (정치적·종교적) 박해를 당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기후난민은 이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세넷은 “물이 없어 난민이 되는 이들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문제가 남는다”며 “기후변화는 이미 민주주의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서는 노나카 도모요 로마클럽 집행위원이 '지속가능한 경영은 어떻게 기업의 중장기 경쟁력을 높이는가'를 주제로 연설하는 등 모두 5명이 기조강연을 맡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를 주제로 한 기획세션 등 다양한 토론의 장도 마련됐다. 


편집 :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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