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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댐비는’ 총여학생회 피했던 그녀가

기사승인 2019.10.13  21: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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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인터뷰] ‘부산 여성·엄마 민중당’ 윤서영 인권활동가

“일본은 사죄하라.”
“아베를 규탄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던 지난 8월 14일, 민중당 내 조직인 ‘부산여성·엄마민중당’ 소속 윤서영(42) 인권활동가가 부산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일렬로 늘어선 경찰관들을 등지고 그가 힘차게 선창하는 구호를 200여명의 집회 참여 시민들이 따라 외쳤다. 주먹을 쥐고 팔을 크게 흔드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일본총영사관을 마주 보고 앉은 ‘평화의 소녀상’은 고요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지역 청년과 ‘미래세대가 세우는 소녀상’ 추진

   
▲ 지난 8월 14일 부산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집회에서 “일본은 사과하라” 등 구호를 외치는 윤서영 활동가. ⓒ 박서정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께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게 지금 저의 가장 큰 꿈이죠.”

지난 5월 23일 부산 범일동의 민중당 부산광역시당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고 이날 시위현장에서 두 번째 <단비뉴스>와 마주 앉은 윤 활동가는 목이 타는 듯 “냉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2016년 같은 장소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사회를 맡았고, 최근 한일 분쟁이 고조되면서 더욱 자주 관련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가 피해 당사자와 상의 없이 ‘위안부 합의’를 도출했을 때, 부산여성회에서 활동했던 그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미래세대가 세우는 소녀상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매일 소녀상이 되어보고 느낀 감동과 울분을 나누는 ‘살아있는 소녀상’ 행사를 하고 기금을 모았습니다. 마침내 소녀상을 세운 날이 잊히지 않습니다. (제막식을 막는 경찰에 맞서 사흘 만에 식이 성사된 날) 사회를 맡게 됐는데, 1천 명 훨씬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죠. 소녀상이 맨발이라 다 함께 신발을 벗는 퍼포먼스를 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10년 넘게 부산 집회현장 누비는 ‘엄마 운동가’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시위 직후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민중당 농성장에 서 소녀상을 세울 당시를 되돌아보는 윤서영 활동가. ⓒ 박서정

이렇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데 앞장서고 있지만, 윤 활동가의 평소 행동반경은 이보다 훨씬 넓다. 그는 여성운동에서 시작해 인권 전반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으며, 지난 10여 년간 부산에서 수많은 집회와 시위를 기획하고 이끌었다. 지난해에는 ‘부산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여는 데 앞장섰고, 양육비 분쟁을 겪는 한부모 가정 문제를 공론화했으며, 주한미군이 탄저균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부산 남구 감만 8부두 철거 시위 등에도 참여했다.

그렇다고 그가 학창시절부터 ‘운동권’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윤 활동가는 총여학생회를 ‘까칠하고 막 댐비는 데’로 여길 만큼 여성문제 등 사회현안에 관심이 없었다. 스물여섯에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아 기르며 ‘시댁’이라는 낯선 문화와 사회적 관습에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시가에서 콩나물을 다듬다가 울컥해, 아파트 옥상에서 친정 쪽을 바라보며 운 날도 있었다.

“시부모님은 인간적으로 좋은 분들인데, 내 자신이 왜 힘든지 몰랐어요. 가부장적 문화의 문제를 깨달으면서 여성 문제가 내 삶과 닿아 있다는 걸 체감했죠.”

그는 부산여성회의 여성학 책 토론 모임에 나가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연이 닿아 부산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2005년에 상담을 맡으며 본격적인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상담소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베개 밑에 칼을 넣어두고 ‘말 없는 협박’을 한 사례 등 온갖 가정폭력의 실태를 목격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영페미’와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열다

윤 활동가는 지난해 5월 ‘부산 끝장집회’를 시작으로 ‘영페미(온라인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운동가들)’와 함께 성차별·성폭력 대항운동에도 활발히 나서고 있다. 2017년 디지털 성범죄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이런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영페미들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쫄지 않아요. 처음에는 ‘(사진) 찍지마!’가 구호였는데, 이제는 그 구호가 잦아들었어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할 때도 본명으로 합니다. ‘뭉치면 힘이 된다’를 함께 경험하고 있어요.”

   
▲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집회에서 관련 조항인 형법 제 269조가 적힌 현수막을 참가자들과 함께 찢고 있는 윤서영 활동가. ⓒ 부산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부산끝장집회는 부산지역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와 여성시민단체가 주축이지만, 성소수자 등 다른 약자를 대표하는 단체들도 참여한다. 부산끝장집회의 올해 목표는 관공서의 성평등 의식 개선이다. 윤 활동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관공서의 인권 감수성에서부터 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부산문화재단은 성폭력 사건과 부적절한 인사로 논란이 됐는데, 시 당국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더욱 비판을 받았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가 대개 전국적인 규모인 것과 달리, 부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참가하다 보니 자주 보는 사람들이 많고 친근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더 많은 편이다. 윤 활동가는 “처지가 달라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뭉쳐서 연대한다는 게 부산이, 우리가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장집회 등을 함께 한 남보리 활동가는 “여성인권을 위한 자리엔 항상 서영님이 있었다”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대사처럼) 서영님은 몸을 사리지 않고 하나의 불꽃이 되어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주장이 아닌 질문으로 회의를 이끌고, 문제가 생기는 현장마다 뛰어다니며 새는 틈을 막는 운동가’로 평가 받는 윤 활동가는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을 보는 ‘큰 꿈’ 외에 소박한 ‘작은 꿈’도 드러내 보였다. 노동운동 등으로 얼굴 보기 힘든 남편 등 네 가족이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편집 : 강찬구 기자

박서정 기자 outsidebox9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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