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제1회 글로벌 커먼즈 포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와 국제비영리사회연구단체 P2P(Peer to Peer)재단에서 주최한 제1회 글로벌 커먼즈 포럼이 2일 서울혁신파크 공유동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P2P재단 창립자이자 초대 의장인 미셀 바우엔스(Michel Bauwens)는 ‘21세기의 거대한 전환’ 기조연설에서 기후 위기, 빈부격차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커먼즈를 중심으로 자립적 친환경 공동체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먼즈는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가진 자원을 합치고 공동체가 같이 운영하며 이익을 나누는 사회제도를 뜻한다.

바우엔스 의장은 구체적으로 권역 안에서 연대하고, ‘오픈 소스’(Open source), 곧 무상으로 공개한 소스코드나 소프트웨어로 정보를 공유해 세계와 지역을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지역 플랫폼 차원에서 전기차와 숙박 등 자원을 나누고 협동조합이 생산 결과물을 분배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바우엔스 P2P 의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커먼즈 중심 경제에서 협동조합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 박서정

서울에 태양광 패널과 넝쿨식물 깔리길 기대

김소영 성대골마을닷살림협동조합 이사장은 ‘성대골 사람들: 도시공동체 에너지 전환 운동’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영국 포츠머스 시가 운영하는 빅토리 에너지회사를 참고해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을 꾸려왔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성대골은 약 2만5천 가구가 사는 동네다. 2011년 후쿠시마 사태에 관해 알아보다가 ‘과소비 대도시인 서울도 가해자’라는 결론에 다다른 김 이사장과 성대골 주민들이 전기 과소비를 예방하려고 당시 김 이사장이 관장으로 있었던 성대골어린이도서관 벽에 가구별 전기소비현황을 붙인 게 시작이다.

▲ 김소영 대표가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박서정

성대골 사람들은 이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운동을 벌였다. 성대골 주민의 70%인 세입자들이 태양광 패널 하나 정도는 가전제품처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주민들이 같이 패널을 조립하고, 건물주와 충돌을 빚을 때마다 나서서 설득했다. 설치 가구의 부담을 더 줄이기 위해, 2017년에 동작신협이 미니 태양광 설치 비용을 먼저 내고 설치 가구가 무이자로 상환하는 우리집 솔라론(solar-loan) 금융상품도 개시했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재래시장 침체에 영향을 끼친다고 상인들을 10년간 설득해 협동조합에 참여하게 하는 등 소모임 간 연대를 추진해왔다. 그는 중앙집중형 네트워크보다는 작은 공동체들이 수평적 관계를 맺고 연대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뜻에서, “너나 제대로 하고 서로 연대하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웃었다.

옥상 초원’ 만들면 도시 열섬 완화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는 옥상을 초원으로 만드는 활동을 시작으로 열섬화 현상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옥상을 초원으로 만들면 누수가 생길 수 있고 건물이 초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그 해결책으로 빗물과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해 관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녹색 커튼과 파이프 팜, 빗물 화분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또 아스팔트를 깔면서 물이 땅에 잘 스미지 못하는 게 지구 표면온도가 높아지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본 이 대표는 지난 5월 추진한 다목적 소규모 빗물저류시설 시범사업을 소개하며, 나뭇가지로 턱을 만들어 땅에 물이 스미게 하면 산불 예방과 지하수 저장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2011년부터 주민들을 도와 도시 재생사업을 해온 그는 “세 사람이면 마을을 바꿀 수 있다는데, 그 세 사람을 모으는 게 제 일”이라며 자신이 변화를 이끄는 방식을 설명했다. 그의 사업이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큰 기업이 하긴 애매하지만 기술 없이 깔 수 없는 녹색 커튼을 설치할 사람을 모집해서 기술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답했다.

▲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가 도시농업이 발전해온 여러 갈래를 설명하고 있다. ⓒ 박서정

화상으로 ‘생태적 합의, 협약, 커먼즈, 그리고 시장’을 발제하기로 한 그레고리 란두아(Gregory Landua) 작가는 연락이 닿지 않아, 바우엔스 의장과 김 이사장, 이 대표,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이 소감을 나누고 질의응답을 하는 것으로 1부 발표를 마무리했다. 바우엔스 의장은 커먼즈의 개념이 대도시 위주 아니냐는 질문에, 지금 사회에서 도시와 농촌으로 나누기보다는, 권역 개념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답했다.

나를 찾을 수 있는 피난처, 지역

▲ 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이사장이 춘천 마더센터를 소개하고 있다. ⓒ 박서정

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이사장은 ‘춘천 마더센터: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엄마들의 풀뿌리 운동’을 발표하면서 춘천 마더센터가 엄마라는 정체성보다는 여성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춘천 마더센터는 1980년대 독일 마더센터를 본떠 국내 최초로 만들어졌다. 2013년 7월 가족북카페 마더센터가 마을기업으로 출발했는데 첫 해에 조합원 140명과 1500만원을 모았다.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등하교하고, 식사 장면 등을 담는 뉴스 영상을 만들었다. 성평등강사단을 양성하고 올 1-3월에는 춘천시와 함께 마더박스를 나눠주는 사업을 했다.

▲ 강연자들이 리포팅3.0(Reporting 3.0) 바우어 이사의 화상 발표를 듣고 있다. ⓒ 박서정

암스테르담에서 화상으로 ‘도넛 경제학 조건의 열역학과 윤리에 맞는 생태-지역적 회계’를 발표한 빌 바우어 Reporting 3.0 선임이사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존 회계를 비판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공동책임보고서를 발표한 회사 1만2천개 중 31개사, 곧 전체의 0.258%만이 생태 한계를 고려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열역학 원리를 반영해 금융만이 아니라 생태 자원까지 포함하는 회계 모델을 선보였다. 이 모델은 생태로 지역을 파악하고, 분배와 가치 생산에 집중한다.

▲ 홍동우 공장공장 대표가 청년들이 무엇을 하고 노는지 관찰한 바를 풀어내고 있다. ⓒ 박서정

“청년들에게 고향이 없어요. 저도 아파트에서 태어났거든요. 그 아파트는 재개발돼서 지금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요. 청년 문제의 원인은 공동체 상실에 있다고 봐요.”

이어서 마이크를 든 홍동우 ㈜공장공장 공동대표는 ‘괜찮아마을: 소도시 이주 청년들의 새로운 공동체 운동’ 발표에서 ‘괜찮아마을’이 사회적 기업이 아닌 영리단체, 그것도 주식회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지금 청년세대는 취직을 못해 좌절하고 자살에까지 몰린다”며 “이런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투자를 유치해 쉐어하우스에서 쉬고 학교에서 배우고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괜찮아마을’ 공동체를 만들었다. 지역은 청년에게 ‘널브러질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청년들은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목표로 운영한다. 주소 이전이나 사업자 등록 등 지원의 대가로 뭘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떠나는 것도, 머무는 것도 자유다. 현재 장·단기로 이 마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29명이다.

미국 호주 스페인의 경험 공유

▲ 고렌플로 쉐어러블 대표가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 박서정

공유경제 정보를 나누는 온라인 비영리매체인 쉐어러블(Shareable) 최고 경영자 닐 고렌플로(Neal Gorenflo)는 미국이 이상적으로 여겨 온 가구 형태가 공동체와 연대 없이 한 가족이 오롯이 사는 것인데 이것이 낭비가 심하고 배타적이며 불평등한 사회를 낳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낭비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미국에서 학교와 도서관, 특히 2년제 대학 등지에서 성장하고 있는 팹랩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팹랩(Fabrication Laboratory)은 대량 생산되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작업장을 말한다.

▲ 라르센 이사가 지역에서 오픈푸드네트워크가 연대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 박서정

이어서 오픈푸드네트워크 (Open Food Network) 창립자이자 이사인 커스텐 라르센(Kirsten Larsen)은 오픈푸드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식량 오픈소스 플랫폼을 소개했다. 이 플랫폼에서 농부와 소비자가 정보를 공유하고 소규모 공동체별로 실험을 한다. 그는 또 식량 자주권을 지키려면 기술 자주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멜버른 빅토리아 대학 라모스 박사가 초국적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 경제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박서정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세계화에 관해 강연하는 호세 라모스(Jose Ramos) 박사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1923년 인슐린을 발견한 연구자들이 특허를 1달러에 넘겼으나, 미국에서 제약회사와 보험회사가 개입하면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나날이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2016년 3월 기준 당뇨병 환자가 매달 인슐린에 들여야 하는 돈은 평균 360 달러다.

이와 비슷하게, 현재 플랫폼 경제 안에서는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보면 알 수 있듯, 소수가 자본으로 플랫폼을 세우고 그 이득을 취한다. P2P재단 일원이기도 한 그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할 방안 중 첫째로 ‘P2P 허가’를 제안했다. 이 허가 제도는 특허와 다르게 협동조합 등 풀뿌리단체에게는 이용료를 받지 않고, 영리단체에게는 비싸게 요구해 공동체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는 두 번째로 회계 시스템에 블록체인을 도입해 미시정치적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세번째로 종합병원과 대학 등 인프라가 몰린 거점들을 중심으로 도시 코뮌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스페인 사회운동가인 모렐 박사가 바르셀로나의 환경 시스템 구축을 설명하고 있다. ⓒ 박서정

호주 비영리단체 AUDAcities 창립자 샤론 에드(Sharon Ede)는 화상 발표를 통해 재생가능 에너지원 전환을 토대로 경제∙자연∙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 순환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자신의 활동상을 설명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사회운동가 겸 연구자 마요 후스테르 모렐(Mayo Fuster Morrell) 박사는, 유리천장이 여성이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는 걸 방해하는 것과 흡사하게, 중앙정부와 미성숙한 사회적 합의가 커먼즈 성장을 제한한다며 바르셀로나 지역 시민단체들이 연대하며 활동 보폭을 넓힌 과정을 소개했다.

청중들에게 커먼즈 투신 동기 부여

▲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장이 글로벌 커먼즈 포럼 폐막 인사를 하고 있다. ⓒ 박서정

끝으로, 홍기빈 소장은 9시간 반을 함께해준 청중에게 감사를 표한 뒤, 커먼즈와 관련된 활동가와 학자가 함께 하는 자리가 목표라며, 정기적으로 포럼을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포럼에 참석한 안충구(33) 씨는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에도 가입했는데 최근 홍 소장이 커먼즈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 더 알아보고 싶었다”며 “이쪽 분야에 투신할까 생각 중”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성북구 주민인 이선임 서울icoop 이사장은 김소연 대표의 성대골 사람들 이야기가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성북구에서도 아름다운 가게, 중학교 동아리반, 녹색연합, 생협 등이 녹색성북네트워크를 결성해 간소하게 절전소를 꾸려봤었습니다. 절전소만 하는 단체들이 아니다 보니 3년을 못 넘기고 흩어졌는데 성대골에서 10년 넘게 이끌어가는 걸 보고 다시 추진해볼까 생각중입니다.”

▲ 참가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박서정

한국은 보수·진보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극성스런 가짜뉴스 등으로 건전한 여론형성이 힘든 사회입니다. 제대로 이슈화가 안 되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갈등이 잠복하는, 이른바 ‘Non-issue, Non-decision Society’가 바로 한국입니다. 주요 정책이나 법을 결정할 때 공론화 또는 숙의 과정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또는 소수자의 건강한 목소리조차 기성 언론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네이버> <다음> 포털과도 뉴스검색제휴를 한 <단비뉴스>가 여러분의 목소리를 확성하는 [여론광장]을 개설합니다. 자료를 미리 보내주시면 취재에 도움이 됩니다. (편집자)

편집 :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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