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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 있든 ‘사람’으로 행복했으면”

기사승인 2019.09.27  11: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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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광장] 장애인 탈시설 정책토론회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장애인 탈시설 정책토론회’가 26일 오후 대전 유성구 라온컨벤션에서 열렸다. 학계 전문가와 장애인협회 관계자, 장애인 거주시설 직원뿐 아니라 실제 탈시설 자립생활 당사자까지 한 곳에 모여 ‘대전·충청권 장애인 탈시설과 자립지원 정책의 현주소’라는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탈시설’에 국가적 노력 기울여야

발제자로 참여한 박숙경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전반적인 탈시설 정책의 현황과 과제 및 쟁점’에 관해 발표했다. 그는 “지난 23일 인권위가 보건복지부가 아닌 국무총리실에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 개 정부 부처 수준이 아닌 모든 정부 부처를 아우르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박숙경 경희대 교수가 ‘탈시설 정책의 과제 및 쟁점을 중심으로’라는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도 함께 진행됐다. ⓒ 홍석희

지난 2006년, UN 장애인권리협약이 제61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장애인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고, 그들의 천부적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한 세계적인 ‘약속’이다. 협약 19조에는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 동참’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장애인도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 한다’고 명시돼 있다.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탈시설을 진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권리협약이 채택된 이후에도 손 놓고 있다가, 지난 2014년 UN 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효과적인 탈시설 전략을 개발할 것’을 권고받았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2000년대 초반부터 탈시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후 영화 ‘도가니’, ‘대구 희망원 사건’ 등으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고,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과제로 채택되어 이제야 본격적으로 탈시설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주시설 최대 문제는 ‘사생활 노출’

거주시설의 최대 문제점은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아동양육·노숙인·노인·정신요양 시설은 총 4,331개소이며 총 입소자는 189,782명으로 평균 입소자 수가 43.8명에 이른다. 그들에게 개인적 공간이 보장될 리 만무하다. 지난 9월 4일 대구에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증언대회’에서 뇌병변 장애인 이수나 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ㄱ시설에서는) 네 평 정도밖에 안 되는 공간에 스무 명 가까이 살았어요. 거주인들이 자식처럼 딱 붙어 있었어요. 다 장애가 있는 분들이었어요. (중략) 제 물건이 하나도 없었어요. 시설에 살면 원래 자기 물건이 없어요. 하물며 속옷도 같이 입거든요 (중략) (ㄴ시설에서는) 이전한 날 생활관에 들어간 순간이 기억나요. 거주인들이 사는 방 입구가 유리판으로 되어 있었어요. 정말 동물원 같이요. 시설에 봉사자들이 자주 오잖아요. 국회의원들도 한번씩 왔거든요. 외부인들 방문할 때 동물원 투어하듯이 우리를 구경해요. 그게 충격이었어요. 씻을 때도 다 보이죠. 몸이 다 노출돼요. 여성생활관인데 남성들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어요. 정말 사생활이라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 시설에는 ‘사생활’이 없다. 입소자들이 개인으로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pixabay

거주시설은 대부분 지역사회와 먼 곳에 있다.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는 격리감은 그들에게 고독과 우울을 유발한다. 타의에 의한 거주시설 입소자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2017년 인권위가 장애인거주시설 45개소와 정신요양시설 30개소를 조사한 결과, 자발적 입소는 14.3%에 불과했고 비자발적 입소가 67.9%에 이르렀다. 박 교수는 “자기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퇴행하고 발달지연을 겪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중앙과 지방이 함께 노력해야

현재 국내 탈시설 정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투트랙으로 이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조성’을 약속하였고,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탈시설 지원 관련 계획안’을 3단계로 나눠 내놓기도 했다. 지방정부 중에서는 서울시가 단연 앞서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08년 ‘탈시설 욕구조사’를 시작으로 꾸준히 탈시설 계획을 실행한 결과, 1차 계획(2013~2017년) 실시 이후 시설 거주 인원을 500여명 줄였다. 대구시도 ‘희망원 사건’ 이후 희망원 내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해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박 교수는 “유럽 국가는 행정부, 미국은 사법부가 탈시설 정책을 주도한다”며 “탈시설은 복지부만의 노력으로 추진하기 어렵기에, 국무총리실 산하에 ‘탈시설 국가계획 수립과 추진을 지휘할 민관합동 TF’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정부는 시설거주민이 지역사회로 안정적으로 나와 살 수 있도록 직접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라며 “탈시설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각 지역 실정에 맞춰 ‘어떻게, 어느 규모로, 어느 정도 기간에 걸쳐’ 탈시설을 추진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정책을 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탈시설 당사자 백민지 씨가 다른 참가자의 도움을 받아 ‘탈시설의 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 홍석희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버틴다”

탈시설 당사자인 백민지 씨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는 탈시설에 무조건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백 씨는 “발제 교수님 말씀은 이상적인 것 같다”며 “(힘들지만) 제가 버티고 있는 것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는 그 나라 사정이 있고, 우리나라는 우리 사정에 맞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어떤 기관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피부에는 와 닿지 않기에 시설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솔직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곳에 있든지 장애인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민영 대전근육장애인협회 회장은 상대적으로 탈시설 준비가 미흡한 대전시의 상황을 꼬집었다. 그는 “대전시 5개구 중 자립생활 체험홈은 2개구에만 있으며, 탈시설 정착금은 인상될 기미가 안 보이고, 활동지원 서비스는 서울·경기에 비해 시간이 적다”고 말했다. 서울·경기 지역 활동지원 서비스는 최고시간 기준으로 850시간 이상인데, 대전은 720시간에 불과하다. 정 회장은 “대전시가 탈시설 정책의 확고한 주체를 담당해야 한다”며 “시설거주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하고, 어느 정도 예산 범위로 탈시설의 환경적 조건을 추진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혜련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대표가 대전시의 탈시설 지원 현황을 말하고 있다. ⓒ 홍석희

다른 시·도에 뒤지는 대전의 ‘탈시설’

전혜련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대표도 대전시의 탈시설 지원 현황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2017년 대전시와 대전복지재단이 탈시설과 자립생활 욕구 조사를 실시했는데, ‘자립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67.6%로 우세했다. 전 대표는 그 이유로 “대전의 경우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관한 지원이 열악하다는 걸 시설입소자들도 다 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제1차 대전광역시 장애인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기본계획(2014~2018)’에 따라 5년간 47명에게 탈시설 정착금을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4명에게 500만 원씩 지급해 8.5% 실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는 “한 뇌병변 장애인이 2014년에 자립생활을 시작한 뒤로 간혹 정신적 문제를 보였는데, 당시 주민센터 공무원들은 자신들 업무 영역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며 “공무원들도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로뎀’의 박권석 과장이 시설 쪽 견해를 밝혔다. 박 과장은 “처음 입소자 2명이 자립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실무자인 저는 가능할지 고민했다”며 “활동보조인 서비스도 있고 대전시에서 지원해줄지도 모르니 한번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 그는 “중증장애인을 4.7명씩 맡고 있는 담당교사 한 분이 직접 대전시와 시의회를 찾아가 정보를 얻고 설득해야 했다”며 당시 어려움을 토로했다. 금융기관은 뇌병변장애인인 입소자가 스스로 ‘사인’을 할 수 없다며 대출이나 카드 교부를 거절하기도 했다.

   
▲ 박권석 중증장애인거주시설 ‘로뎀’ 과장이 시설 쪽 형편을 설명하고 있다. ⓒ 홍석희

‘무조건 탈시설’이 옳은가?

박 과장이 자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가능하겠어요”였고, 입소자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선구자는 힘든 거니 조금만 더 힘내자”였다. 힘겹게 자립을 이루었지만, 그는 ‘완전한’ 탈시설에 관해 회의적이다. 그는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는지 잘 알기에 탈시설은 꼭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지역사회에)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탈시설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생활이 가능하도록 시설을 1인실로 정비하고, 개별 지원이 가능하도록 시설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방송에 오르내리는 시설의 악행으로 국민적 시선이 따갑다는 것을 알지만, 장애인들을 위해 진정으로 애쓰는 시설들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발언을 마쳤다.

사회를 맡은 김동기 목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탈시설을 할지 말지에 관한 논쟁은 이제 소모적일 뿐”이라며 “올바른 탈시설을 위해 장애인 당사자, 시설, 학계, 지자체 등의 역할이 무엇인지 터놓고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대전시와 대전시의회 관계자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며 “제도적 성숙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도하는 시설에만 쓴소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권위가 주최하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토론회’는 부산 광주 강원 서울 제주에서 추가로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 부산 토론회는 10월 1일(금) 오후 2시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 121호에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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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권영지 기자

홍석희 기자 mufc1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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