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한국대학학회 ‘사회 불평등구조와 대학정책 방향’

한국대학학회가 주최하고 학술단체협의회 등이 후원하는 ‘사회 불평등구조와 대학정책 방향’ 심포지엄이 20일 서울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열렸다. 최근 ‘조국 사태’가 벌어지면서 고등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입시 제도의 불공정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기성언론 대부분은 조국 법무장관의 가족 관련 보도에 열중하면서 교육 문제의 의제화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교육 불평등과 대학 서열구조와 맞물려 있는 점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인 만큼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했으나 기성언론 기자들은 토론회장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 <단비뉴스>가 ‘여론광장’을 통해 토론 내용을 자세히 전한다. (편집자).

▲ 20일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한국대학학회가 주최한 ‘사회 불평등구조와 대학정책방향’ 심포지엄이 열렸다. ⓒ 윤종훈

서강목 한신대 영문학과 교수(한국대학학회 회장)는 인사말에서 “촛불혁명 이후 출범한 현 정부에서도 교육부의 고등교육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현재의 대학 정책은 대학 서열화를 더욱 고착화하고, 상위 60%의 자율개선대학에 들지 못한 하위권 대학들을 궤멸 상태로 몰아갈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우리 사회의 교육개혁이 언제라도 늦은, 그러나 항상 가장 빠른 개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치른 대학입시의 관점은 옳은가? 

“조국 사태를 자기 위치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오류들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제도라는 게, 구성원들이 삶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기가 겪은 대학 입시를 상당히 소상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트의 경우, 또 자기가 치른 입시가 공정했어야 혜택이 정당한 게 되는 거죠.”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에 비춰본 한국의 교육문제’ 주제 발표에서 “개혁 담론이 나올 때 대개 엘리트들은 자기가 치른 입시를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 경향이 많다”며 “이런 입시 관련 인지 편향이 조국 딸이 치른 대입 수시 전형을 둘러싼 지금 학생들의 반응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수시제도가 확대되고, 특히 대입 자율화를 표방하며 ‘입학사정관제’가 본격 도입됐다. 그러나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대학입시전형 간소화’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이듬해부터 외부 ‘스펙’을 금지했다. 

▲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조국 사태에서 딸 대입 문제가 엘리트의 입시 관련 인지 편향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 최유진

김 교수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상위권 대학을 간 학생들을 보면 황당무계한 스펙들이 많이 나왔다”며 “구멍 숭숭 뚫린 제도가 등장하면 그에 관한 독해력이 뛰어나고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집단이 몰려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국 딸 역시 당시 입시제도가 열어놓은 기회를 좇아간 집단의 일원일 것”이라며 “이런 행동을 가장 잘 기획하는 집단이 특목고”라고 말했다. 

공정하면 불평등해도 되는가?

“조국 딸 입시가 드러낸 계급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최상층과 상층간의 갈등입니다. 또 하나는 최상층과 상층을 합친 집단과 중간층 이하 집단이 가지는 박탈감이 있습니다. 조국 딸과 우리 출발선이 다르다는 관점은 불평등하다는 거죠. 그런데 서울대학생 집회는 최상층과 상층의 갈등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갈등이 득세하게 되면 공정이라는 담론이 득세해요. 공정하면 불평등해도 된다는 담론이 깔려있어요.”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공정 개념이 납작하고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존 롤즈(John Rawls)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는 공정이 확장되면 정의론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기계 같은 의미론만 가진 한국 사회에서는 공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공정 담론은 조국 딸 입시 문제를 수시전형의 문제로 보는 데서 드러난다”며 “수능 비중을 일정 정도 늘리자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평등을 제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학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막 수용하는데, 그 취지에 맞게 운영하기 위한 비용을 들이지 않습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대학에 모든 자료를 만들어 갖다 바치라고 하지 않아요. 입학사정관을 충실히 운영할 수 있는 비율만큼 수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 교수는 “수시제도가 득세하는 건 전문가들에게 시장이 열리고, 학부모들에게도 수렴되며 중층이나 중하층을 일부 수용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라며 “특목고 역시 전체 인구로 보면 수능에서 항상 승리하는데, 개별로 보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쌓아갈 수 있는 수시가 안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조국 사태를 진단하며 ‘불법성’에 주목하기보다, 수시제도에 관해 다른 계층이 느끼는 ‘박탈감’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고교서열화와 대학입시 개혁으로 축소가 됐다”며 “이마저도 문재인 정부 안에서 사라진 상태고 대학개혁은 입학정원과 고교졸업자 수량적 조정이라고 하는 것으로 한정돼있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교육을 사다리, 징검다리라고 표현하지만 오늘날 한국교육은 무너진 사다리, 떠내려간 징검다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책 펴야 

▲ 박정원 상지대 교수는 조국 사태로 드러난 한국 교육 문제를 지적하며 교육의 지위재적 성격에 주목했다. ⓒ 최유진

박정원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질화된 교육불평등: 대학입시에서 대학재정까지’ 주제 발표에서 “최근 조국 장관 가족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교육제도 자체가 반교육적이며 반민주적으로 설계돼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강력한 대학서열체제가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지위재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2월 새라 솔닉(Sara Solnick)과 데이비드 헤민웨이(David Hemenway)가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원의 교수·학생·조교 등 2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소개했다.

질문 중에는 ‘A: 당신의 자녀는 고졸; 다른 사람들의 자녀는 중졸’, ‘B: 당신의 자녀는 대졸; 다른 사람들의 자녀는 대학원졸’ 중 어떤 상태를 원하는지 고르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56%의 응답자들이 A를 선택했다. 박 교수는 이 사례를 통해 학력이 강력한 지위재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학정원 관리 같은 공급제한 방식으로 인해 지위성은 필연적으로 등급을 낳게 된다”며 “특히 지연·혈연·학연이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등급체계 즉, 대학서열체제가 만들어졌다”고 꼬집었다.

한국 고등교육의 불평등구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박 교수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대학을 균등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다른 대학에 뒤떨어지지 않는 대학이라면 굳이 비싼 사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강남으로 몰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거점국립대를 하나로 묶어 운영하는 정책과 함께 재정지원에서도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 ‘반값등록금 혹은 등록금후불제 등 공적재원 투입’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제고’ 등을 제안했다.

대학기본역량 진단사업, 서열화 부추겨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학 교수는 ‘불평등구조 심화하는 대학구조조정 정책: 대안은 없는가’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윤 교수는 “조국 사태에서 분명해진 것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영속화하는 힘이 바로 대학 서열구조를 기원으로 하는 교육에서의 불공정 불평등 현실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대학기본역량 진단사업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수립한 대학구조조정 10개년 계획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명칭이 바뀌고, 평가범주와 지표를 일부 조정했을 뿐 2015년 당시 학령인구 감소로 불가피해진 대학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대학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는 그대로이며 대학들 사이의 경쟁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조정이 기조라고 할 수 있다. 

윤 교수는 “현 정부 들어와 새로운 대학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되면서 정책 목표를 ‘공공성과 자율성 강화’ ‘시장주의적 경쟁 방식 지양’ ‘지역별 강소대학 육성 및 균형발전 도모’ ‘공정한 교육기회’에 두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같은 정책목표가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거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려면 대학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최유진

“무엇보다 대학기본역량 진단은 상위층 학생들이 주로 재학하는 서열 상위 대학에 국가재정을 집중시키는 반면 중하위층 학생들이 주로 재학하는 중하위 대학이나 전문대에 조정을 집중함으로써 서열화구조와 대학의 부익부빈익빈을 오히려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교육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전혀 바로잡히지 않고 더 심해지는 상황입니다.”

윤 교수는 대학 서열화구조를 완화하고 사학중심의 대학체제를 개편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정책결정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방어막이 ‘여론’이라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대학이 너무 많고 대학생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정리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대학은 키우고 나쁜 대학은 없애라’는 것이 국민여론이라는 것이다. 경쟁력을 공정성보다 더 중시하는 정책입안자들의 의식과 함께 경쟁사회에서 내 자식을 일류대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망도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실제로 더 근본적이면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여론은 우리 사회의 학벌중심 풍토와 서열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임을 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일류대라 불리는 대학에 재정을 집중하고 지방 중소사립대나 전문대에 조정을 집중하게 되면 격차는 더 벌어지고, 소위 일류대에 국고가 집중 투여되는 조건 속에서 대다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국가의 교육지원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그는 “조국 사태로 확인된 불평등한 교육환경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개혁의지가 없다면, 구조조정을 계기로 한국대학의 병폐를 해결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기획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15개 중심대학 목소리만 크게 반영

▲ 박대권 명지대 교수는 “조국 사태를 교육 문제만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최유진

전체토론에서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를 대학입시 문제로 지적하는 건 인과관계가 아니다”라며 “학교는 사회의 거울인데, 사회 문제를 사회가 바뀌려고 하기 보다 거울인 교육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윤지관 교수는 “거울이라고 보면 사실 교육 쪽에서 할 일은 없어질 수 있다”며 “대학의 변화가 사회의 물적 소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윤 교수는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이 엄청난 일 같지만 국고 기금이 투입되기 시작했고, 국가장학금으로 사립에도 돈이 들어간다”며 “직접적 운영비를 주지 않을 뿐, 실질적으로는 지금 사립들도 공영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 교수는 “사립대가 챙길 건 지방교육교부금인데, 일본의 경우 사립대 교원의 임금 3분의 1을 국가에서 준다”며 “초중고에는 돈이 남아서 주체를 못하는데, 정부에서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가기 전에 지원부터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립대가 지역의 중심 역할 해야 한다”며 “지역거점 대학의 교육행정 기관화를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덧붙여 “지금은 대학이 지자체가 아니라 교육부를 직접 상대하는데, 지역과 행정적 연결고리가 없으니 고립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교육이 키워온 능력주의에 관한 허무가 조국 사태로 드러났다”고 했다. ⓒ 최유진

김귀옥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상임공동의장)는 “조국 사태로 능력주의의 허상이 드러났다”며 “교육이 키우는 능력이란 게 무엇인지에 관한 허무가 깊게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교육의 제도성’을 이야기하며 윤지관 교수가 제기한 ‘공영형 사립대학’에 관해 지금의 교육부 예산으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공영형 사립이 왜 안 되는지 살펴보면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100% 총장이 회원인데, 실질적으로 사립대의 경우 총장만이 아닌 법인이 양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교육법은 법인이 실제 오너십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고 여기에 설립자만이 아닌 수많은 국회의원이 들어가 있다”며 “공영형 사립대를 해야 사학비리가 근절되고 교육이 산다고 이야기해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은 겸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2016년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 2018년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사학이사로 활동해 국회법을 위반했다. 지난 4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관료나 교육 소관 상임위 국회의원 등 106명이 대학과 산하기관에서 113개 보직을 맡고 있다. 새로운 대학을 만들어서 지역사업으로 하면 국회의원이 빛나는 ‘정치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공영형 사립대를 위해 투자하면 (국회의원이) 아무런 빛이 나지 않는다”며 “정경유착의 고리가 공영형 사립에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여한 평택대학교 신은주 총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대학구조개혁과 고등교육 정책 관련해 지방 사립대에서도 계속 건의하고 있지만 정부 재정지원을 받는 15개 중심대학의 목소리만 반영하는 것이 문제”라며 “앞으로 구조개혁이 시장주의가 아니라 정말 좋은 대학, 앞으로 지속 가능한 대학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은 보수·진보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극성스런 가짜뉴스 등으로 건전한 여론형성이 힘든 사회입니다. 제대로 이슈화가 안 되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갈등이 잠복하는, 이른바 ‘Non-issue, Non-decision Society’가 바로 한국입니다. 주요 정책이나 법을 결정할 때 공론화 또는 숙의 과정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또는 소수자의 건강한 목소리조차 기성 언론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단비뉴스>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여론광장]을 개설합니다. (편집자)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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