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공유’

▲ 임지윤 기자

‘공존’ ‘공생’ ‘상생’ ‘공유’...... 이제는 지겹게 들릴 때도 있다. 뜨거운 심장에서부터 나오는 말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가 시키는 말을 그냥 받아쓰는 것 같아서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공존을 해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공존’을 저해하는 자들이 이 성스러운 단어를 입에 올릴 때면 내 속에서 거북함이 올라온다.

언제부터인가 뉴스만 보면 ‘4차산업혁명’ ‘AI’ ‘인공지능’ ‘로봇’ 같은 단어가 쏟아진다. 동시에 등장한 신개념이 ‘공유경제’다. 정부는 ‘혁신성장’이란 미명 아래 로봇산업을 미래에 밥그릇을 책임져줄 핵심 동력으로 보고, 언론은 나름대로 대중을 이해시키려 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고, 기업은 규제완화만 외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개 한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바로 ‘일자리’ 걱정이다. 정부는 예전에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며 다시 쓰자) 운동하듯이 ‘공유경제’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럴듯한 소망일 뿐이다. 이미 유럽 최대 무역항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은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부분 하고 있고, 일본 언론은 2030년이 되면 자국 내에 없어지는 일자리를 대략 240만 개까지 추산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2025년 취업자 2561만 명 중 1807만 명(71%)이 ‘일자리 대체 위험’에 직면한다. 이제 로봇과 인간의 전쟁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 될 전망이다.

전세계가 지금 ‘4차산업혁명’에 따른 고용 한파를 걱정하지만 우리나라만 놓고 보자. 우리는 이제 겨우 신분제 사회와 식민지 시대를 넘어선 지 74년밖에 안 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국적, 성별, 경제적 상황 등은 강제 노역의 아픈 역사를 넘어 지금껏 갑을 구조 아래 온갖 부당함을 겪으면서도 참고 일하게 만드는 컨베이어 벨트로 작용했다.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 산재처리 비율은 내국인보다 10배 가까이 낮고,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OECD에서 1위다.

▲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져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부모님 직업으로 ‘왕따’시키는 사례도 흔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공유’란 이름을 입에 올린다. ⓒ Pixabay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져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부모님 직업으로 ‘왕따’시키는 사례도 흔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공유’란 이름을 입에 올린다. ‘자율주행 자동차’, ‘자동화 집’, ‘필요할 때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서비스’…. 이런 신산업은 많은 이들의 돈과 시간을 아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성장한 거대 플랫폼 기업은 다수 저임금 플랫폼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기존 유사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이미 많은 플랫폼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 택시업계가 파업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타다’라는 플랫폼 기업은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량 소유주와 손님 사이에 연결망을 구축한다. 이미 6년 전 자율 주행 서비스 ‘우버 택시’를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정부는 ‘4차산업혁명’이란 거대한 흐름에 다시 한번 발맞춰 나간다. 택시 기사들은 불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고 했지만 택시기사의 분신자살은 우리 사회가 빚은 비극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다.

택시업계가 들고일어났던 현상은 우리가 맞이할 큰 소용돌이의 전조를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알파고 대 이세돌’의 싸움을 볼지 모른다. 흥미롭게만 여긴 로봇 뉴스는 내 삶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 전세계는 이미 인간의 노동생산성에 최소 6배쯤 효율성을 내는 로봇과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본가에게는 아직 흥미로운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에게는 불안한 걱정거리일 뿐이다.

함께 사는 가족, 내 옆에 사는 이웃과도 공존이 어려운 마당에 로봇과의 공존이라. 이건 마치 도망갈 구멍도 만들어놓지 않고, 먹이를 다투는 생쥐들 한가운데 큰 고양이를 놔둔 것과 다름없다. 더 이상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서는 안 된다. 주위를 돌아보고 미래를 질문하며 옆 사람과 공존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두호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