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비례민주주의연대 상근활동가 김현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죠. 선거제 이슈는 시기를 탈 수밖에 없습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정국으로 인식이 높아졌을 때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뼈대로 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안이 지난 4월 국회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달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빠르면 11월 27일쯤엔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전망이다. 그러나 이 법안의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야가 몸싸움과 고소·고발전으로 ‘난장판’을 벌이는 동안 언론은 ‘싸움 중계’에 바빠 꼭 필요한 보도와 해설을 놓쳤기 때문이다. 대신 ‘비례민주주의연대(비례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비례연대 김현우(25) 상근활동가를 지난 6월 13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나고 15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해 운동의 배경과 현황을 들었다. 

‘헬조선 탈출 길은 연동형 비례제’ 강연에 ‘느낌 팍’

▲ 서울 서교동 비례민주주의연대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김현우 상근활동가. Ⓒ 홍석희

비례연대는 참여연대 등에서 꾸준히 시민운동을 해 온 하승수 변호사와 최태욱 한림대 국제정치학과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아 지난 2016년 발족했다. 김 활동가는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 교육을 받다가 비례연대 발족 직후 합류했다.

“비례연대 출범식에 가서 ‘헬조선 탈출의 길은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하 대표님 강연을 들었는데, 딱 느낌이 왔어요.”

그는 한 지역구에서 최다득표자 1명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들의 표가 의석수에 왜곡 반영돼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사회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깊이 공감했다. 예를 들어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은 26%였지만 의석은 123석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했고 자유한국당은 정당득표율 34%로 의석 41%를 얻었다. 정당득표를 반영하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워낙 적은데다, 비례대표 배정이 지역구 당선자수와 연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독일과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정당득표율에 맞춰 전체 의석이 배분되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1위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정당도 국회에 진출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김 활동가는 “그 강연을 들은 후부터 시민운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에게 알리고 책모임도 하면서 하 대표님 강연을 따라다니다가 운영위원 제안을 받았고, 그 뒤 활동가가 됐다”고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 ‘제대로 알리기’ 총력

“선거제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이내 통과되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밖에 나가 조금이라도 더 홍보하겠다고 다짐했죠. 일부 국민들이 왜곡된 정보 때문에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제 개혁안이 무엇이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고 공론화하는 게 우리 역할입니다.”

공동대표를 포함, 총 22명의 운영위원들이 움직이는 비례연대에서 김 활동가는 재정, 조직, 교육 등 다양한 책임을 맡고 있는데 요즘은 무엇보다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이 ‘한국적으로 타협한’ 이 제도의 개념과 산식을 기자에게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어려운 얘기라 강연을 해도 사람들 관심이 금방 꺼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심상정 전 정개특위 위원장은 “국민들이 비례대표 배분 산식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활동가는 “선거법 개정안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가장 큰 장벽”이라며 “이 정보를 어떻게 가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계속 연구하고 홍보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발표 자료를 보여주며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념과 의석배분 산식을 설명하는 김현우 활동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 홍석희

김 활동가는 그러나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자리 잡으면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같은 거대정당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반면 소수 정당이 원내로 진입하기 수월해진다”며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이 원내로 진입하면 국회가 소수계층을 더욱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거대정당간의 이념 다툼으로 본회의 표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 개혁안이 정개특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연말 본회의에서 가결되려면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어드는 지역구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반발을 해소해야 한다. 김 활동가는 “지난해 말 여야 5당이 의원정수 10% 확대에 합의했다”며 “적어도 330석, 가능하면 360석까지 의원 정수를 확대해서 지역구 숫자를 유지하되 세비(연봉) 인하, 보좌관 감축 등 의원 특권을 줄이는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벌’ 포기하고 뛰어든 사회생활

김 활동가는 대학에 다니지 않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입 재수를 하다가 ‘졸업하면 남는 건 졸업장과 빚 5000만원’이라는 기사를 보고 ‘당장 돈을 버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무사 사무실 직원을 거쳐 반도체 공장 생산직으로 일하며 돈도 꽤 모았다. 그러다 청소년 지도사가 되고픈 생각에 학점은행제를 통해 온라인 심리학 강의를 들었는데, 거기서 ‘운명적인 책’을 만났다.

“심리학 관련 서적인 ‘마음의 연대’에 참여연대 이야기가 나왔어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곳인 것 같아 참여연대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죠. 참여연대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모르고 살면 안 되는 ‘사회의 아픔’이 많더라고요. 그곳에 귀 기울여야 하고 진실을 알아야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사회가 바뀐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하승수 대표를 만나 선거제 개혁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그해 겨울, 운명처럼 ‘촛불혁명’이 시작됐다. 그는 “당시 거의 모든 집회에 참여해 마이크도 잡고 토론회도 가면서 선거제 개혁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말했다.

▲ 2016년 말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진 촛불시위. 이 현장은 김현우 활동가가 시민운동을 직접 배우는 교실이 되기도 했다. Ⓒ 홍석희

‘여성 활동가’를 힘들게 하는 현장, 그래도 끝까지  

시민사회운동 경력 4년차를 맞은 김 활동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활동가’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털어 놓았다. 정치개혁 분야에서는 남성 활동가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들 중 일부는 ‘선’을 넘어 과도한 이성적 접근으로 김 활동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불쾌함을 드러내면 연락이 끊기는 등 일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페미니즘 독서모임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진보 정당의 가치를 말하는 친구들이나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애들이나 다 남성 중심적이고, 서러워서 활동을 못하겠더라고요. 침대에서 계속 울었어요. 2주 정도 패닉 상태로 지내다가 굳건하게 마음을 다잡고 밖으로 나왔죠.”

그는 적어도 자신과 활동하는 친구들은 ‘성인지 감수성’에 부족함 없이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고, 이후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지적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 정치개혁을 추구하는 시민운동계에서 여성 활동가는 아직 소수다. 김현우 활동가는 ‘성인지 감수성’이 작동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홍석희

자신은 비례연대에서 상근직으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밥버거를 먹으며 뛰는 시민운동가’도 많다고 지적한 김 활동가는 “그런 청년들을 볼 때마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강의에서 모든 수강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었던 안진걸 전 사무처장 등 시민운동 선배들이 ‘롤 모델’이라는 그는 앞으로도 그들과 같은 사회활동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저는 돈을 벌고 싶을 땐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선거 개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느낀 후엔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청년들도) 그 대상이 사람이 됐든 가치가 됐든 자신이 사랑하는 걸 위해 도전하길 바랍니다.”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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