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성일권 한국어판 발행인
주제 ① <르몽드>가 바라본 오늘의 세계

“겉은 대단히 세지만, 읽다 보면 뒤가 허전한 기승전결이 없는 프랑스 영화 같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르디플로) 성일권 한국어판 발행인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시사 월간지 <르디플로>의 특징을 프랑스 영화에 비유했다. 그는 ‘<르몽드>가 바라본 오늘의 세계’라는 주제 강연에서 “<르디플로>는 프랑스 영화처럼 명쾌한 답이 없지만,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 토론 거리를 많이 남긴다”고 설명했다. 답을 내놓지 않는 신문이 오히려 답을 찾게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모신문인 <르몽드>는 1954년 창간 이래, 특히 국제 이슈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문제 제기로 대표적인 독립 대안 언론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관되게 ‘권력과 자본의 종속에서 탈피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주체성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전세계에 마니아가 많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지난해 10월 10주년을 맞았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성일권 한국어판 발행인이 <르디플로> 신문만의 관점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 afridha putri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잡지’

성일권 발행인은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평가하는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올해 28위를 기록해 전년보다 한 계단 떨어진 사실을 강연 화두로 던졌다.

“조중동은 이를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 복지 문제로 인해서 국가의 경쟁력이 낮아졌다는 논리로 문재인 정권을 비판했어요. 한 단계 낮아졌는데 엄청나게 비판하더라고요. <르디플로> 시각에서는 이런 지표들이 국가경쟁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는 철저히 기업의 입장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서를 매긴 겁니다. 이를테면 규제완화, 고급인력, 시장개방성 등은 국가경쟁력과 상관이 없잖아요.”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9년 4월호. 성일권 발행인은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는 기사의 좋은 예로 ‘미국이 관리하는 베네수엘라’를 꼽았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세계경제포럼(WEF)은 스위스 다보스 휴양지에서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인들이나 친서방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성 발행인은 여기서 발표되는 것도 미국과 미국 휘하에 있는 국제기구의 입맛에 맞춰진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르디플로>는 세계경제포럼은 무시하다시피 해요. 매년 뻔하니까.”

이처럼 기성 언론의 논지를 전복시키는, 다른 얘기를 하는 신문의 기사를 읽고 불편하다고 여기는 독자가 많다. 그는 국내 언론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물신화, 자본화한 경제 질서를 한 번쯤 고민해보자는 게 <르디플로>의 기본 편집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가 가짜뉴스 퍼뜨려?

트럼프는 가짜뉴스를 생산한다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그 점에서는 <르디플로>도 트럼프와 비슷하다. 성 발행인은 “미국 민주당이나 민주당의 견해를 전하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밀러 특검 조사에서 나오는 음모설을 양산한다”며 트럼프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관계하며 국익을 훼손했다는 것, 힐러리 관련 정보를 러시아가 해킹해 폭로하게 했다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르디플로>가 이런 가짜 기사를 지적해왔다고 말했다.

“매우 진보적이고 권위 있는 <뉴욕타임스>를 비판한 이유는 정파의 이념에 매몰돼 진실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거죠. 트럼프를 비판하려면 반이민 정책, 민족주의적인 포퓰리즘 정책 등 트럼프의 ‘정책’을 비판해야지 사생활과 소문에 근거한 확인되지 않은 문제에 관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이 앵무새처럼 언론이 되풀이했다는 거죠.”

<르디플로>는 미국 지식인들조차 지적하지 않는 러시아 게이트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 <뉴욕타임스> 2019년 4월 18일 보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메일을 해킹하고 있는 러시아를 도우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 <뉴욕타임스>

그는 한국 진보 매체의 가짜뉴스도 지적했다.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핫 플레이스’ 같은 삼청동도 다 임대한다고 쓰여 있어요.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있다는 거죠. 적어도 <한겨레> <경향>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일절 안 나와요. <조선일보>에만 나와요.”

다른 면에서 <조선일보>보다 더 정확하게 사안을 전달하는 진보지라도 현상을 그대로 나타내면서 정확한 정책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발행인은 프랑스 유학 당시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지자 프랑스 정부가 19.5%이던 부가세를 5.1%까지 내린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이런 정책을 <한겨레> <경향>에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게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르디플로>가 보는 세계화란

유럽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학자들은 미국의 세계화와 다른 사회적인 유럽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연합은 이러한 낙관주의에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영국도 탈퇴하려고 하고, 프랑스에서도 유럽연합 탈퇴 선거를 하기도 했어요. 유럽연합이 계속 미국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 자체가 팍팍해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옛날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유럽연합이 세계화에 따라 자유무역, 자유시장체제로 나아갈 때 취약한 나라들이 등장한다. 유럽 연합에 가입할 수 없는 열악한 경제 조건에도 유럽연합에 가입해 금융위기를 맞은 그리스가 그 예다. 성 발행인은 “유럽연합도 이제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르디플로>를 유심히 보면 유럽연합을 탈퇴하자는 게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인 유럽연합을 만들자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 그는 “우리나라 신문 국제면은 한두 면이어서 국제 기사를 읽기 힘들다”며 “<르디플로>를 보면서 시각을 넓히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했다. ⓒ afridha putri

성 발행인은 “유럽연합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경제위기감이 생기면서 좌도 우도 아닌 포퓰리즘이 강한 정치인과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적으로 불분명한 트럼프, 마크롱 같은 강대국 정치인들이 전 세계 국제정치를 좌우하지만, 저널리즘도 올바른 길이 헷갈리는 것 같다”며 “언론인은 인문학적 소양을 닦고 토론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구조 속에서 <르디플로>는 늘 본질이 뭔지, 좌·우가 뭔지 고민하고 진보의 허구를 까발리고 비판한다”며 “그러다 보니 난해하고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다”라고 설명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장해랑 하상윤 김준일 김태동 조홍섭 이태경 성일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정소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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