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
주제 ① 헨리 조지와 한국사회

부동산에 따라 사회적 신분 결정되는 사회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이뤄냈던 나라가 어쩌다 '부동산 공화국'이 되었을까? '부동산 공화국'에서 땅은 서민들의 삶을 옥죄는 것에서 나아가 기업들의 '기업가 정신'마저 감퇴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우리 사회의 소득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요인이지만, 정부는 마땅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고 세습된다"고 진단했다.

▲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강연하고 있다. © 정소희

부동산 문제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토지다. 부동산을 떠올리면 흔히 건물을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건물은 그림자일 뿐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눈에 들어오는 건 건물이지만, 건물은 실체가 아닙니다. 거의 무너지기 직전의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은 감가상각이 다 돼서 실제 가격은 0원에 가까운데 굉장히 비싸죠. 이게 다 땅 값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땅 값이 OECD(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상위 1%가 전체 개인 토지의 31%를 차지할 만큼 토지 소유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건 큰 문제다. 상위 5%로 범위를 확대하면,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비율이 61%나 된다. 법인 토지는 더 심한 편중 현상을 보인다. 상위 1%가 법인 토지의 77%를 차지하고, 상위 5%는 무려 90%를 소유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 요인은 '평등한 토지권'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에 놓였던 많은 나라들이 독립했다. 이 가운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 대표는 기적을 이룬 핵심 요인으로 평등한 토지권을 지목했다.

"한국은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으로 농지개혁을 단행했어요. 이 방법은 지주들에게 우호적인 방식이 아니었죠. 정부는 땅을 매입하면서 지주들에게 돈이 아니라 '지가증권'을 줬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니까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증권 가격이 급락합니다. 이는 곧 지주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완전히 지주들의 나라였다가 아주 짧은 기간에 자연농의 나라로 재편합니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세계사의 기적이기도 하죠."

▲ 1960년 토지 소유 평등도와 1960~2000년 경제 성장 상관관계. © 이태경

이 대표는 또 토지 소유가 평등하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앞서 설명한 우리나라 말고도 토지개혁에 성공한 대만, 중국, 일본 등이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반면, 토지 소유가 불평등한 제3세계 국가 다수가 그래프 하단에 포진했다. 이 대표는 "아르헨티나는 선진국 수준의 GDP를 기록했다가 추락한 나라"라며 "헤매고 있는 여러 원인 중에 '토지 소유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토지 소유가 불평등하면 지주들이 산업화에 반대하고 저항합니다. 지주들이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민주화도 방해하죠. 우리나라는 운 좋게도 지주가 자본가로 변신하지 못하고 소멸한 겁니다."

부동산을 잘 모르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이 대표는 경제학자들을 향한 쓴소리도 이어갔다. 학자들이 부동산 불로소득의 크기를 대체로 과소하게 추계하고 있으며, 소득 불평등에 기여하는 정도에 관해서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주중대사가 쓴 <한국 자본주의>를 보면, 소득불평등의 원인을 시장의 임금 격차로 봐요. 부동산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자산 형태의 부동산은 양극화가 극심한 건 맞지만 소득 불평등에 기여하는 정도는 작다는 거죠. 시장의 임금 불평등이 극심하니 보정해야 한다고 해서 나온 게 소득주도성장인 거고 그래서 최저임금을 급하게 끌어올린 겁니다. 제가 보기엔 패착입니다. 부동산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죠."

▲ GDP 대비 부동산 소득 추산 수치. © 이태경

실제로 이 대표가 강의에 사용한 자료를 보면, 2006년 GDP의 42%를 차지하던 부동산 불로소득은 2016년에 이르러서도 30.9%를 기록하는 등 소득불평등에 기여하는 정도가 적다고 보기 힘들다. 이 대표는 특히 땅 값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경제 성장에 따라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앞으로 불로소득 규모는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소득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문제 해결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관련 정책은 없는 와중에 이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올랐고 그 상승률도 더 가팔라졌습니다. 이러면서 민심이 이반된 거죠."

부동산 공화국’에서는 기업도 힘들다

이 대표는 '부동산 공화국'이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은 기업이 생산성을 향상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것을 뜻하는데, 한국은 이런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면에는 역시 토지가 자리잡고 있다.

▲ 개인과 법인의 10년 간 토지 소유 변화. © 이태경

실제로 2007년부터 약 10년 동안 개인의 토지 소유 면적은 줄어든 반면, 법인의 토지 소유 면적은 크게 늘었다. 특히 상위 1% 대기업들이 소유한 땅의 비중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에 관해 이 대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거나 제품 혁신에 힘을 쏟는 것과 같은 '기업가 정신'이 사실상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처럼 땅만 사 놓으면 돈을 버는 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겠냐”고 반문하며 “그들은 '지주 정신’으로 무장하고 땅을 늘린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예전에 삼성동 땅을 약 10조원 들여서 샀습니다. 그 사이 자동차 시장은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이 등장하면서 재편됐죠.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인데 거기 땅을 사지 않고, 새로운 모델에 투자하거나 이미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을) 선점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했더라면 위상이 달라졌을 겁니다. 현대차는 이런 거 대신 지대 추구를 한 거죠. 현대차의 삼성동 부지 매입이 한국 재벌 멘털리티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헨리 조지 아이디어, 지금도 중요

<진보와 빈곤>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지주가 벌어들이는 임대료를 세금으로 걷고, 나머지 모든 세금을 없애는 '토지단일세'를 주장했다. 실제로 토지단일세를 시행하면 이론상 땅 값은 '0'에 수렴한다. 땅 값의 근거는 임대료이고, 이 임대료의 이자율을 현재 가치로 평가한 게 지가이기 때문이다. 지가의 실체인 임대료를 모두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자연히 땅 값도 없어진다는 논리다.

이 대표는 "현재 조지스트들은 여러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에 토지단일세를 주장하진 않지만 지대 추구 경향을 없애고, 토지 가치를 공유하자는 헨리 조지의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이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정소희

세계 각국에 자리잡은 보유세 개념도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에서 발전해왔다. 그는 <진보와 빈곤>에서 불로소득 차단을 위한 수단으로 '공공토지임대제'와 '보유세'를 제시했다. 공공토지임대제는 공공이 토지를 갖고 민간에 임대해주는 방식이다. 발생하는 지대는 민간이 공공에 납부한다.

"헨리 조지는 토지를 다른 자원과는 다르게 봤어요. 땅은 누가 만든 게 아닌 천연자원이잖아요? 그래서 모두가 평등하게 공유하자는 겁니다. 여전히 중요한 아이디어죠. 헨리 조지는 토지 불로소득을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했어요. 그의 아이디어가 현대적으로 제도화한 것들도 있고요. 모든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긴 어렵지만, 그 정신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장해랑 하상윤 김준일 김태동 조홍섭 이태경 성일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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