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마음’

▲ 강도림 기자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너가 하기 싫다고 그렇게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나면 어떡해.” 평소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야단을 치곤 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과 말하게 되면 싫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뾰로통하는 천성은 바꾸기 힘들었다. 이렇게 마음을 다 드러내다 보니 실제로 대인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줬다. 때로는 마음을 감추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임을 깨달아 갔다. 엄마에게 반발해 ‘사람은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해야 한다’며 애써 합리화했는데, 스스로 느낀 인간관계에서는 역시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어른들 말이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건 아닌 듯싶다. 국제관계를 보면 그렇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직설적으로 할 말을 다 한다. 속마음을 감추는 순간, 서로에게 돌아오는 건 손해뿐이라는 계산 때문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을 요구했다. 빅딜이란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다’는 말까지 했다. 서로 양보를 요구할 뿐 스스로 양보하지는 않는다. 서로 할 말만 쏟아내니 우리나라는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Yes면 Yes, No면 No일 뿐 그 사이는 없다. 협상의 타협점도 없다. 그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불편한 마음을 잠시 뒤로 하고, 서로 손해볼 줄도 알아야 말이 통하고 윈윈하는 관계가 된다. 지금은 자기가 느낀 대로 다 표현하니, 서로 상처를 줄 뿐 말이 통하지 않는다. 트럼프와 김정은도 마음을 다 드러내는 건 아닐 것이다. 결정적 카드를 뽑아 내려고 협상의 씨앗은 숨기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런 숨김이 협상의 교착으로 귀결된다면 서로에게 손해다.

▲ 속마음을 숨기는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야 할 때가 있다. ⓒ pixabay

반면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불합리한 계약에도 본사의 식재료를 납품받아야 하는 가맹점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취업에도 실패한 입사지원자들, 문화가 되어버린 ‘태움’ 탓에 속앓이 할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 고민 끝에 겨우 목소리를 냈다 해도 신변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국민청원까지 올려야 했던 성폭행 사건 증인들, 부조리를 고발했다가 일자리까지 잃은 수많은 공익신고자들.

속마음을 숨겨도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보면 읽을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심지어 을이 어렵사리 마음을 드러내도 갑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면 그 둘의 결속은 유지될 수 없다. 공익신고자가 오히려 박해를 받는 사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적과 대치한 전선일 뿐이다. 인간관계도 국제관계도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게 신뢰관계로 가는 출발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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