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㉓

GDP를 넘어서

▲ 이재형 박사

국민소득통계는 국제적으로 정해진 회계기준인 국민계정시스템(SNA: System of National Account)에 의해 작성된다. 국내총생산(GDP)은 가장 종합적인 경제지표로서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국가간 경제력을 비교하는 좋은 척도다. 2017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GDP가 가장 큰 국가는 미국이며 약 20조 달러에 이른다. 다음에 중국, 일본, 독일로 순서가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약 1.5조 달러로 러시아에 근소하게 뒤져, 12위에 올라있다. 2018년에는 러시아를 추월하였다고 하니 기쁜 일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GDP란 그 나라 전체가 생산하는 부가가치를 말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GDP가 클 가능성이 높다. 이래서는 GDP가 나라 전체의 경제력은 보여주기는 하지만 국민 개인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풍요하게 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국민 1인당 GDP로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를 부자 나라로, 낮은 나라를 가난한 나라로 본다.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30위로 나타나고 있다.

한·일 1인당 국민총소득, 8배에서 1.3배로 추격

196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80달러였는데, 이때 일본은 약 6배인 471달러, 미국은 일본의 6배가 넘는 2,925달러였으니, 미국은 우리의 40배에 가까운 부자 나라였다. 이 숫자로 본다면 당시 미국이 우리에게 꿈의 나라, 이상향으로 비쳐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때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을 뒤쫓는 부자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은 1인당 국민총소득이 251달러로 우리의 3배가 넘었다.

1960년 초부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본도 고도성장기여서 우리와 일본 간의 경제적 격차는 더 확대돼 1970년에는 1인당 소득이 8배 가까이 벌어졌다. 일본과 미국의 소득 격차는 2.5배로 줄어들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하자 미국 경제가 부진에 빠졌고, 그 후 엔고(円高)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미일간 소득격차는 크게 줄어 1987년에는 마침내 미국(19,752달러)과 일본(20,556달러)간에 소득 역전이 일어났다. 이때 우리나라는 3,467달러로 여전히 일본의 1/6 수준이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 유례없는 대호황을 맞이했고, 1990년대 들어서도 지속적인 호황이 이어졌는데, 일본은 버블붕괴에 이어지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제로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한일간 경제적 격차는 급속히 줄어들어 1996년에는 우리나라 13,077달러, 일본 35,234달러로 그 격차가 3배 이내로 축소됐다. 1997년 구제금융 위기 이후 격차가 다시 확대되긴 했지만 경제위기가 수습되면서 격차는 다시 축소돼 2006년에는 마침내 2배 이내로 줄어들었다. 2017년 현재 격차는 1.3배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1995년 한때 1.5배 정도의 격차로 미국을 따돌렸으나 2001년에는 다시 역전돼 격차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2017년에 미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60,432달러로 일본의 1.5배 이상이다.

발전모델이던 필리핀은 한국 1/10로 추락

1960년대 한때 우리나라의 발전 모델로서 벤치마킹 대상이던 필리핀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이미 우리나라에게 추월당했고, 이후 격차가 커져 변동은 있었지만 우리의 1/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을 100이라 했을 때 다른 나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아시아에서는 일본 133, 홍콩 162, 싱가포르 183, 카타르 213, 이스라엘 140 등이 우리보다 높은 수준이며, 이를 빼면 중국 29, 인도 7, 인도네시아 13, 파키스탄 5, 사우디아라비아 71, 대만 84, 태국 21, 베트남 8 등으로 대부분 우리보다 훨씬 낮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203)과 캐나다(150) 정도가 우리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높을 뿐, 멕시코 29, 브라질 32, 아르헨티나 47, 칠레 50 등으로 대개 우리보다 낮다. 유럽에서는 영국 131, 프랑스 137, 독일 154, 벨기에 146, 오스트리아 161, 덴마크 194, 핀란드 155, 스위스 273, 스웨덴 185 등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우리보다 높고, 이탈리아(110)와 스페인(95)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불가리아 27, 크로아티아 43, 체코 65, 폴란드 44, 루마니아 35, 슬로바키아 58, 우크라이나 9 등으로 동구권의 체제전환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낮다.

GDP나 1인당 국민소득은 경제적 측면의 국력을 나타내지만, 이것이 높은 국가일수록 대개 강국이다.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전체 국력도 강하고, 사회발전 정도도 높은 경향이 있다. 그러나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이지만, GDP는 상대적으로 낮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강국이지만, 국제사회의 발언권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부국에 불행하고 빈국에 행복한 국민 많은 이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경제적 기반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풍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국가의 경제발전 척도로서 GDP는 매우 중요하지만 삶의 질은 결국 인생을 얼마나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경제적으로는 풍요하겠지만 반드시 삶이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러 나라 국민에게 행복도를 물어보면 오히려 부자나라 국민 가운데 불행하다는 사람이 많고, 가난한 나라 국민이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를 지향한다. 경제적 풍요도 좋지만, 건강한 신체, 가족 간 화목, 이웃이나 사회공동체의 화목,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 문화생활, 예술, 여행‧오락 등 다양한 활동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중요한 요소다. 이처럼 사람들이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행복을 추구하는 데 견주어, GDP는 경제적 요소만을 고려한 것이어서 사람의 행복을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의 정도 또는 인간의 행복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행복의 정도를 경제적 지표로 파악하는 GDP보다 인간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와 보람된 삶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행복지수, 웰빙 지수, 삶의 질 지수 등과 같은 다양한 지표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 영국 철학자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지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 pixabay

행복이란 주관적인 느낌일 뿐

문제는 GDP를 넘어 인간의 보람된 삶의 정도를 측정하려는 이런 지표에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어려움에 부딪힌다. GDP 통계는 경제실적이라는 현실을 계량화한 지표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된다. 그렇지만 행복지수라 한다면, 과연 행복이란 무엇이며, 사람은 어떤 요인에 의해 행복감을 느끼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일이 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행복이란 것은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이를 계량화하거나 표준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행복’이란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나 희망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충족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목표에 현실을 맞추는 방법과 현실에 목표를 맞추는 방법이다. 목표가 높다면 현실적으로 아무리 풍요하더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없고, 목표가 낮다면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강조했던 것도 목표를 낮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한 지혜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들을 보면 부자 나라 사람들일수록 불행하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많고, 가난한 나라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불행한 국민이 일본과 우리나라 사람들이며, 싱가폴, 홍콩 시민들도 행복하지 않다. 반면에 소득이 낮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의 국민들은 행복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자락의 조그만 나라인데,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낮은 국가이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나타났다. 10여 년 전 부탄 총리가 이런 내용을 정리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행복지수 관련 국제회의에서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귀화한 당구선수 “캄보디아 가난한 줄도 몰랐다”

한국에서 당구선수로 활동하는 스롱 피아비라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이 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남편을 통해 우연히 당구에 발을 들였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 세계적인 당구선수로 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할 때도 동행해 우리나라와 캄보디아 간 친선의 가교 역할도 했다. ‘캄보디아의 김연아’라 할 만큼 캄보디아에서는 스포츠 영웅이라고 한다. 얼마전 스롱 선수가 어떤 언론사와 한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캄보디아는 매우 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1,300달러로 우리의 1/25에 불과하다. 그런데 스롱 선수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캄보디아가 가난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가난하더라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불만이 있을 턱이 없고, 그러면 경제적 요인에 따른 불행감도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높은 목표를 설정해 항상 불행을 느끼는 것보다 욕심 없이 낮은 목표를 설정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바람직한가? 영국 철학자 밀(John Stuart Mill)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바꿔 “행복한 돼지와 불행한 소크라테스”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 가난한 나라 사람이 행복을 느끼고, 부자 나라 사람이 불행을 느끼는 데는 지식 차이에서 비롯된 요인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다가, 부자의 삶을 알게 된다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들의 행복이 무지의 결과라면 그 사람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인도적 관점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될 수도 있다.

GDP 대체할 행복지표 개발 필요

사람들 삶에서 경제적 풍요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 대신 사람들 행복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통계지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이를 위해 많은 학자들과 정책당국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GDP를 대체해 인간의 행복을 측정할 새로운 통계지표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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