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파리넬리’ -거세된 예술가의 비극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포기했지만, 목소리를 얻고 거세당한 남자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7~18세기 바로크 시대에 남성 거세 가수 ‘카스트라토(Castrato)’가 전성기를 누렸다. 카스트라토는 ‘거세하다(Castrate)’란 말에서 유래된 ‘거세한 가수’를 말한다. 남성이지만 소프라노, 알토와 같은 여성 음역 소리를 낼 수 있다.

18세기를 풍미한 실존 인물 파리넬리

알몸 소년이 거세를 피해 투신하며 영화가 시작한다. 18세기에 여성은 교회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여성은 교회에서 침묵할지니라’(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는 성경 구절을 말 그대로 해석하여 여성은 교회 무대에 설 수 없었다. 여성 역할은 카스트라토가 맡는다.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기에 가난한 가정에서는 아이를 카스트라토로 키우려 했다.

주인공 파리넬리(스테파노 디오니시 분)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도 그 길을 걸었다. 18세기를 풍미한 실존 인물이다. 남자아이의 변성기가 지나기 전에 거세하면 2차 성징과 후두의 성장을 막아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다. 파리넬리는 그 과정을 거쳐 고운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

▲ 백작 부인은 “여자의 마음은 당신이 열고, 사랑은 형이 나눈다”며 파리넬리를 유혹한다. ⓒ <네이버> 영화

파리넬리에게 ‘여성’은 이성적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여성은 ‘품을 수 없는 대상’이다. 아름다운 노래에 끌린 여성들은 그를 찾아가지만, 서로 감정교류만 할 뿐 육체관계는 맺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시대상과 형제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장치다.

예술로 승화한 콤플렉스

▲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 파리넬리. 내면적 갈등을 암시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 <네이버> 영화

형 리카르도(엔리코 로 베르소 분)는 그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란한 기교뿐인 곡이었다. 형은 동생이 자기 곡만 부르게 했다. 동생의 노래 없이는 무대를 이어 나갈 수 없었던 탓이다. 형의 노래만 부르던 파리넬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기교만 있는 곡을 만드는 형에게 실망한다. 자신을 후원하겠다는 헨델의 제안도 거절한 그였다.

결국 음악적 견해가 다른 형을 떠나 최고의 음악가인 헨델의 악보를 훔쳐 마침내 무대에서 부르게 된다. ‘진정한 음악’을 추구한 그는 헨델의 곡을 통해 음악적 갈망을 분출한다. 이 무대에서 그는 비로소 거세당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파리넬리의 무대가 시작되기 전 헨델은 그를 만나 말한다.

“어릴 때 형이 약속한 오페라를 기억하는가? 오페라를 이야기한 건 거세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을까?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 자네를 거세한 형에게 자넨 인생을 바쳤어. 형제의 결속을 위해 나에게 침까지 뱉었지.”

유쾌하지 않은 두 형제의 갈등 해소

▲ 형은 동생을 카스트라토로 키우기 위해 아편으로 마취한 뒤 거세시킨다. ⓒ <네이버> 영화

파리넬리가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부르기 시작하자 형은 과거 동생을 거세시키던 때를 회상한다. 작곡가인 형 리카르도는 노래 실력이 뛰어난 동생 파리넬리를 소년 시절 아편으로 마취한 뒤 거세시킨다. 형의 바람대로 동생은 유명한 카스트라토가 되어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작곡가 헨델 또한 동생을 탐내지만, 형은 동생을 뺏길까 불안해하며 자기 곡만 부르게 한다. 동생은 자기 곡을 부르는 ‘악기’였다.

두 형제는 한 팀을 이뤄 유럽 순회공연을 펼치고 큰 성공을 거둔다. 무대만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게 아니었다. ‘여자’ 또한 함께했다. 노래에 끌려 동생을 찾아온 여자들과 육체적 사랑은 형이 나누었다. 파리넬리는 수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지만, 사랑을 나눌 수 없어 열등감에 시달린다. 형은 거세가 동생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순회공연은 성공하지만 형은 작곡가로서 한계에 절망한다. 거기에다 자기 욕망을 위해 동생을 희생시켰다는 죄책감에 자살을 시도한다. 가까스로 살아난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동생을 대신해 동생의 아내와 동침해 아이를 잉태시키고 떠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네게서 뺏은 걸 이제 돌려주마. 네 인간의 몫 말이다. 오페라 악보는 태워버렸다. 그 음악과 과거는 이젠 없어졌어. 하지만 내가 마지막 남긴 것, 그것은 우리의 공동작품 아니니?”

오페라 악보를 태웠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작곡가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형제간 갈등은 비로소 해소되고, 파리넬리는 헨델을 만나 예술적 영감을 마음껏 쏟는다.

▲ 형은 동생을 위해 아이를 남기고 떠난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동생 파리넬리에게는 열등감의 해소이자 형과의 갈등해소이며 치유였다. ⓒ <네이버> 영화

예술영화의 스토리가 비슷한 이유

19세기 이후 맥이 끊겨 이제는 특별한 훈련을 통해 고음역을 내는 ‘카운터테너’만 남아있다. 영화는 두 형제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 인간의 욕망과 본능, 음악사를 이야기한다. 파리넬리는 주인공인 프로타고니스트로서 당대 최고의 예술가이지만, 다른 예술영화와 마찬가지로 안타고니스트인 형과 갈등하고 내면의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비극적 삶을 산다.

예술영화의 스토리가 대개 비슷한 이유는 칸트가 주장한 ‘천재’의 개념이 예술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작곡가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형의 현실적 욕망과 동생의 천재적 영감이 엇갈린 이중주를 그린다. 불협화음의 해소가 윤리적 측면에서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야기 구조는 탄탄하고 음악은 긴 여운을 남긴다.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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