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㉒

결투 상대 전투력을 수치로 파악한 ‘드래곤볼’

▲ 이재형 박사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무렵 일본 만화 한 편이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아마 이 시대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이 만화 한두 권 보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만화 제목은 <드래곤볼>로 주인공 손오공과 가족·친구들이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들과 싸우는 전형적인 결투 만화다. 강한 적을 겨우 물리치면 새로이 더 강한 적이 나타나고, 손오공과 친구들은 다시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이 만화는 스토리가 탄탄하고 극적인 재미가 있어서 일본이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쳐 40여개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일본에서 1억6천만부, 세계적으로는 3억2천만부가 출판되어 일본 만화 역대 판매부수 2위에 올랐다. 그럼 1위는? 요즘도 많은 젊은이들이 읽고 있는 <원피스>다.

<드래곤볼>을 보면 안경처럼 생긴 스카우터란 기계가 나온다. 이 스카우터를 눈에 끼면 상대방의 전투력이 숫자로 표시된다. 이 만화는 결투를 소재로 한 이야기여서 전투력이란 곧 등장인물의 종합적인 능력을 표시하는 계량적 척도가 된다. 이렇듯 사람의 능력을 하나의 기준으로 계량화할 수 있다면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데 효과적인 척도가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여부는 별개 문제겠지만. 현실에서도 이처럼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는 계량적 지표들이 적지 않다. 대입 수능점수나 토플·토익 점수가 계량적 지표의 하나다. 사람들의 소득이나 재산과 같은 계량적 지표는 그 사람의 경제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국민소득은 국가의 종합적인 경제력 지표

개인의 학습 정도나 소득과 재산의 크기를 보여주는 이런 계량지표처럼 국가의 발전 정도를 객관적‧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계량적 지표가 있으면 국가의 경제운영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 한 국가의 경제적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종합적인 계량지표로서 널리 활용되는 통계가 바로 국민소득(national income)이다. 국민소득은 이미 한 나라의 경제적 발전 정도를 표시하는 종합 지표로서 세계적으로 일반화해 있다.

국민소득은 국민계정(national account)의 한 부분이다. 한국은행이 펴낸 <알기 쉬운 경제지표>에 따르면 ‘국민계정은 경제활동을 포괄적이고 통합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작성되는 일종의 국가차원의 종합 재무제표로서, 경제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경제활동과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종합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수많은 통계표로 구성되며, 이들 각 통계들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국민계정은 ‘산업연관표’ ‘국민소득통계’ ‘자금순환표’ ‘국제수지표’ ‘국민대차대조표’의 5개 경제통계를 체계적으로 연결해 만든 생산계정, 소득계정, 자본계정, 금융계정, 국외거래계정, 대차대조표 계정의 6개 계정으로 구성된다.

국민계정을 구성하는 통계들 가운데 정책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국민들 관심이 높은 것이 바로 국민소득통계이다. 국민소득통계로서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이다. 과거에는 국내총생산(GDP) 대신에 국민총생산(GNP: gross national product)이란 지표를 많이 사용했다. 따라서 나이 든 분들은 아마 GDP보다는 GNP란 용어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총생산(GNP)이란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총부가가치에서 외국인이나 외국인들이 소유한 기업에서 생산된 부분을 뺀 금액을 말한다. 그런데 직접투자, 해외취업 등을 통한 국가간 경제교류의 활성화와 국가간 합작투자 확대로 부가가치 창출의 주체를 국적별로 구분하는 의미가 점차 퇴색되었다. 따라서 부가가치 창출을 어느 국가의 경제주체가 하는지가 아니라 어느 나라의 영토 내에서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GNP 대신 GDP가 주된 국민소득 지표로 정착됐다.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국민소득지표로는 GDP 외에 국민총소득(GNI: gross national income)이 있다. 국민총소득은 우리나라 주거주자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하여 받은 대가에 이들이 외국에서 얻은 소득을 더하고, 주거주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받은 소득을 뺀 금액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GDP와 GNI의 차이는 1%도 되지 않으므로, 그냥 비슷한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문제는 없다.

분식집의 부가가치는 어떻게 산출하나

국민소득은 부가가치의 합계(value added)라 했는데, 그러면 부가가치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생산과정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가치가 부가가치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수많은 기업으로부터 철강, 엔진, 타이어 등 원자재와 부품을 공급받아 자동차를 조립·생산한다. 자동차를 조립 생산하려면 전기 등 기계를 돌릴 에너지가 필요하며, 또 판매를 확대하려면 광고도 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총금액 가운데 원자재, 부품, 전기, 광고 등 다른 기업에서 생산한 금액을 빼고, 순수하게 현대자동차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가치가 현대자동차의 부가가치가 된다. 현대자동차가 만들어낸 부가가치에는 노동이 기여한 부분, 기계나 장비가 기여한 부분, 기업(경영)이 기여한 부분이 있다.

▲ 부가가치란 생산과정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가치를 말한다. 그리고 국민소득은 부가가치의 합계(value added)다. ⓒ pixabay

혼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여사장 김갑순 씨의 예를 들어보자. 마트에서 500원을 주고 라면을 구입하여, 이것을 끓여 학생들에게 3천원을 받고 팔았다. 그러면 이 분식집에서 라면을 팔아 창출한 부가가치는 3천원에서 봉지라면 구입가격 500원, 집세, 전기세, 반찬 등의 재료비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이렇게 원재료 값, 집세 등 이것저것 다 떼어 내고 김갑순 씨 손에 떨어진 금액 1천원이 바로 김갑순 씨가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다.

GDP는 한 나라 안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의 합계를 말한다. 생산활동에는 노동과 자본, 그리고 기업가정신이라는 3가지 생산요소가 투입된다. 각각의 생산요소는 부가가치의 창출에 기여한 만큼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받게 된다. 노동은 피고용자들이 제공하는 생산요소로서, 노동자들은 노동의 대가로 기업 등 생산의 주체로부터 보수를 받게 되는데, 이것을 ‘피용자보수’라 한다. 공무원이나 기업의 직원, 대학교수, 공기업 직원, 편의점 알바 등이 받는 보수는 모두 피용자보수다. 자본이란 기계, 장비, 토지, 건물 등을 포함하는데, 자본이 창출한 대가는 감가상각비란 형태로 보상을 받는다. 기계나 장비 등은 사용할수록 마모되는데, 이것을 회계적으로 계산한 금액이 ‘감가상각비’다. 기업가정신이 창출한 부가가치의 대가는 기업이익(재산소득 포함)이다.

기업이익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올린 이익뿐 아니라, 김밥집 사장, 개인택시기사, 대리운전기사, 오토바이 배달전문 청소년들이 올린 소득도 모두 포함된다. 이들 개인사업자들도 경제적 정의에 따르면 개개인이 모두 기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부장이 받는 연봉은 피용자보수이지만, 분식점 사장님 김갑순 씨가 번 돈은 기업이익이다. 2018년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 부가가치(GDP) 가운데 피용자보수가 45.9%, 기업이익이 25.9%, 감가상각비가 18.8%, 기타 생산 및 수입세가 9.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은 생산, 지출, 분배라는 3가지 측면에서 파악될 수 있다. 생산국민소득이란 각 산업별로 어느 정도 부가가치를 창출하였는지, 지출국민소득이란 창출된 부가가치가 소비와 투자 등에 지출항목별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분배국민소득이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창출된 부가가치가 자본, 노동, 기업에 어느 정도로 분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생산국민소득=지출국민소득=분배국민소득’의 관계가 성립한다.

한국 제조업 비중 29.2%는 선진국 최고 수준

생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산업에서 어느 정도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을까? 2018년 기준으로 서비스업이 60.7%로 가장 비중이 높고, 그 다음이 제조업으로 29.2%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농림어업이 2.0%, 건설업이 5.9%, 전기‧가스‧수도사업이 2.1%를 차지한다. 국민소득통계를 통한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보면 서비스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서비스업은 유통업, 음식료업, 개인서비스업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업종뿐 아니라, 금융‧보험, 학교, 병원, 정부기관 등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건설업 등을 제외한 산업 전분야가 거의 포함된 매우 광범위한 산업분야이다. 그러므로 서비스업 비중이 60.7%라는 통계에도, 우리나라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29.2%를 차지하는 제조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제조업 비중이 30%에 육박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도의 발전단계에 있는 국가로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다. 다른 나라의 산업구조를 살펴보자. 2016년 기준 전세계에서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29.5%)보다 높은 국가는 푸에르토리코(47.3%), 아일랜드(32.1%), 대만((31.6%), 에스와티니(31.4%) 4개국뿐이다. 이들 가운데 우리 경제 규모에 견주어 대만이 1/3 조금 넘는 정도이며 다른 나라들은 경제규모가 매우 작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은 제조업 비중이 28.8%, 세계적 다국적 기업이 경쟁적으로 진출해 있는 동남아 국가인 태국은 27.4%, 말레이시아는 22.3%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제조업 강국이라는 독일과 일본도 제조업 비중이 각각 20.6%와 21.0%로 우리보다 현저히 낮다. 서구 선진국들은 제조업 비중이 매우 낮아 미국 11.6%, 영국 9.0%, 프랑스 10.3%에 불과하다.

대부분 선진국이 국민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낮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두고 우리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의 발전을 통해 서비스업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필자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조업은 부가가치 창출이 매우 용이한 산업이다. 그럼에도 선진국에서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는 것은 비용측면에서 선진국들이 경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쇠퇴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선진국들이 원해서 경제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이동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그렇게 된 측면이 크다. 우리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대단한 행운이며, 그 덕분에 다른 선진국에 견주어 아직은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이제 제조업이 한계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지표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다.

일본 ‘제로 성장’은 제조업 기반 무너진 탓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거의 ‘제로(0) 성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경제의 부진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필자는 가장 큰 이유가 산업 공동화(空洞化)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이후 일본 기업, 특히 제조업 기업들은 더 좋은 사업 환경을 찾아 동남아로, 중국으로 활발히 해외진출을 도모했다. 그 결과 일본 국내 제조업 기반에 큰 공백이 생겼고, 이것이 곧 일본경제의 침체로 연결됐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선진국들은 대개 서비스업 생산성이 높다며 우리도 이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서비스업 분야에서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절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부분도 많지만, 또 많은 부분은 선진국의 서비스 가치가 절대적으로 높은 게 아니라, 우리보다 가격이 높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은행이 발간한 <알기 쉬운 경제지표>와 <우리나라 국민경제체계>를 참고했으며, 우리나라 국민소득통계는 한국은행의 경제통계포털인 ecos, 해외 국민소득통계는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인 KOSIS를 참고했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박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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