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독립열전] ⑱ 반민특위

광복 74주년, 오늘만큼은 과거 반성을...

<앵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일본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1960년 발표한 단편소설 <우국>입니다. 다케야마신지 중위와 아내 레이코, 둘은 육체관계 후 할복으로 생을 접습니다. 천황숭배에 젖은 허망한 충성의 플롯은 소설 속 허구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키오는 1970년 평화헌법 폐기를 외치며 자신이 지어낸 소설 주인공처럼 할복자살합니다.

소설가 신경숙이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 극우 몽상가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입니다. ‘엄마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가 ‘군국주의’ 부활을 외친 작가를 표절했을까요. 소설가 이응준이 신경숙의 표절을 지목한 대목은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입니다. 천황숭배 군국주의자의 소설 속 여인 레이코는 기뻤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제에 끌려간 조선 소녀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목숨만큼 소중한 인간성을 짓밟혔습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듬으려는 ‘평화의 소녀상’마저 학대받습니다. 침략전쟁과 만행에 대한 반성, 사과도 없이 소녀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참의원 선거 결과, 아베는 전쟁을 위해 필요한 개헌발의 의석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평화헌법’ 개정 즉, 전쟁을 향한 꿈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 과정에 한국에 경제침략, ‘무역 전쟁’의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할복한 유키오처럼, 항공모함으로 날아간 가미카제처럼, 자살골을 향해 돌진하는 아베. 뜻밖에 정체불명의 응원부대가 뒤따릅니다.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의 말은 평화를 갈망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차마 입으로 옮기기 민망해 자막으로만 적습니다. “아베 수상님, (한국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이 말은 전해야겠습니다. “내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도 일본을 용서하겠다.” “한국이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 달라.” 그 역시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일 텐데 말입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실한 발언을 두고,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해방된 이후 정말 민족정기 확립을 이루지 못한 후과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방 이후,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일명 ‘반민특위’가 실패하며 친일청산을 이루지 못한 것이죠.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친일민족반역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추진합니다. 그러나 당시 실권을 쥔 미군정은 법안을 보류시킵니다. 일본 통치에 협력하지 않은 자가 드물다는 이유에섭니다. 독립 운동가들을 멀리하니 친일파만 눈에 보인 것은 아닌지요.

주권을 되찾고 정부를 수립한 1948년 기회가 다시 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키고, 마침내 반민특위가 구성됩니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친일파 박흥식, 이종형, 이광수 등을 체포합니다. 하지만, 다시 방해 세력이 나타납니다. 대통령 이승만은 5차례의 담화문을 발표하며 반민특위 활동에 제동을 거는 데요.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친일 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합니다. 끝내 반민특위를 해체시키고 맙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도 1940년부터 1944년까지 4년을 독일 지배 아래 있었죠. 해방 뒤, 독립운동가 즉 레지스탕스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반역자 즉결 처벌에 나섭니다. 영국에서 임시정부를 꾸렸던 드골의 프랑스군은 군사재판으로 반역자들을 숙청합니다. 무려 35만여 명의 부역자들을 조사해 12만 명 이상을 법정에 세웠는데요. 이 중 1500여 명을 사형시킵니다. 해방 직후 인민재판으로 처형한 9000여 명을 합치면 부역자 1만500여 명을 처단한 겁니다. 또, 3만8000여 명을 감옥에 넣습니다. 불과 4년 독일 점령 기간 동안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렇습니다. (자료 출처 : <민중의 소리> 2016년 11월 24일자>

만 35년을 일제에 지배당한 우리는 어떠했나요? 반민특위가 해산당하기 전까지 취급한 사건은 고작 682명. 형을 받은 친일파는 고작 12명인데, 이마저 6ㆍ25때 모두 풀려납니다.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셈입니다. 오히려 목숨 걸고 투쟁한 독립운동가들 김구 선생과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합니다. 암살을 피해 김원봉이나 독립운동가 가족들은 북으로 넘어가고요.

도올 김용옥은 “우리가 세계의 보편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아베의 퇴행’에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혔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숙연하게 말했습니다.

‘아베의 퇴행’에 빠진 일본에 지지 않는 한국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독일에 지지않는 프랑스의 길은 친독 부역자들 청산에서 시작됐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친구가 된 길은 독일의 무한 반성과 사과가 발판이었고요.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 해 일본의 재침을 받는 현실은 우리 모두 반성할 대목입니다. 광복 74주년을 맞은 오늘만큼은 부족했던 역사를 한마음으로 되돌아보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영상취재, 편집, 앵커: 최유진)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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