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독립열전] ⑰ 여성독립운동가 권기옥

최초 여성 비행사 “총독부 폭파가 목표”

<앵커>

시청자 여러분! 화면에 보시는 기념 우표 4점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정부가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3월 15일 제작한 우표입니다. 등장인물을 가만히 보시면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한 우표라는 점입니다. 이번에 기념 우표에 등장한 여성 독립운동가 4명 가운데 특이한 복장의 인물이 있습니다. 비행모를 눌러쓴 조종사 차림의 여성이 눈에 띕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 권기옥입니다. 권기옥의 삶과 항일 투쟁을 권영지 기자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서울 종로구의 북촌 한옥 마을에 나와 있습니다. 한옥 마을 한가운데 서울교육박물관이 자리하는데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다!’라는 특별한 주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대한독립과 결혼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박물관 내부 특별전 전시장 입구에 6인의 여성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대한 독립에 인생을 건 여성 독립운동가 6인의 특별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의 화신과도 같은 3.1운동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김난사, 김마리아, 윤화순, 남자현. 여기에 비행모를 쓴 조종사 차림의 여성이 눈길을 끕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조종사이자 독립운동가 권기옥 선생입니다.

권기옥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애국심이 남달랐습니다. 숭의여학교 재학 중 수학교사 박현숙의 권유로 학교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합니다. 여학교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헌신한 겁니다. 1919년 3.1운동 때 평양 시내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합니다. 이때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철창신세를 집니다. 선생의 독립운동은 철창을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인터뷰)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3.1운동 당시를 거슬러서 가보면 송죽결사대의 일원이었습니다. 평양 숭의여학교 송죽결사대의 일원으로 해서 태극기 제작하고 3.1운동 당시 참여를 했었고요.

권기옥 선생은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적극 나섭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를 대량으로 판매해 임시정부로 자금을 보냅니다. 하지만 끈질기게 선생을 미행한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습니다. 심지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물고문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선생은 수십 번을 졸도하며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인터뷰)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권기옥 선생님은 고문을 분명히 많이 당하셨고, 고문 정도가 많이 심각했던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이분은 결혼은 하셨지만, 평생 자녀를 가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후손분은 양자예요. 큰 집의 아드님.  특히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형무소에 수감되어졌을 때 남성들이 받았던 고문에다가 하나 더 얹어진 부분이 여성이라고 하는 성적인 부분에서의 차별과 고문들이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자극한다든지 다른 방식으로의 고문이 이루어졌는데 권기옥 선생님은 별 그런 것에 많이 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선생은 이제 대륙으로 직접 들어가 독립운동에 투신합니다. 임시정부 추천으로 중국 운남 육군항공학교에, 제1기생으로 입학합니다. 항공학교에 조종사가 되는 것은 선생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선생은 왜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을까요? 비행기를 몰고 조선 총독부를 폭격하려는 목표가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그 당시에 있었던 독립 의식, 의지 이런 부분들이 비행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같이 연결이 됐기 때문에 "내가 비행사가 되면 폭탄을 비행기에 싣고 (일본) 황궁으로 날아가서 폭파하리라" 이런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랬던 것처럼 독립의식, 개인의 꿈이었던 여성 비행사, 이 두 가지를 실현하려고 하신 분이시죠. 대단한 분이시죠.

중국 육군 항공학교를 졸업한 권기옥은 10여년간 중국 공군으로 활동합니다. 1932년 상해 전투에서는 전투기를 몰고 일본군에 기총소사를 퍼붓는 전과를 올립니다.

인터뷰)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그 당시 장개석 총통이 북벌 정책을 폈을 때 항공 사령부에서 같이 가담해서 중국 공군으로 10년동안 복무를 합니다. 그래서 항공대 부비항원으로도 활동을 했고 또 32년 상해 사변에서 비행기로 일본군을 기총소사 해서 중국 정부로부터 무공훈장을 수여 받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조종사’라는 수식어를 불편해한 권기옥 선생. 조종사가 된 이유가 총독부를 폭파하려는 독립운동의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남자도 흉내 내기 어려운 선생의 기개와 애국정신에 성별은 걸림돌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몸으로 독립에 헌신한 공식 유공자만 248명이나 됩니다. 개인의 편안함에만 매몰되는 요즘, 대한의 독립과 결혼해, 인생을 걸고 투쟁한 여성 독립지사들의 삶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단비뉴스 권영지입니다.

(영상취재, 편집 : 권영지 / 앵커 : 임지윤)


편집 : 윤종훈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