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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 사회가 ‘정의’를 찾는 방식

기사승인 2019.08.01  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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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비평] 웹툰 <비질란테>

   
▲ 오수진 기자

지난 2016년, 20대 여성이 만취 상태에서 역주행으로 운전하다 노부부가 몰던 차량과 충돌했다. 사고 피해자 중 남편은 후유증 치료를 받다 숨졌고, 부인은 평생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게 됐다. 가해자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고 풀려난다. ‘양평 아우디 음주 역주행’ 사고다. 사건 후에도 대형식당을 운영하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가해자에 분노한 시민들은 ‘나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식당 불매운동을 벌여 법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처벌을 대신했다.

최근 심신미약자 성범죄 같은 흉악범죄가 국민감정에 들어맞지 않은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 일이 빈발하자 사법부 판단에 관한 국민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부정∙유착 등으로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다크 웹툰’ 인기로 이어졌다.

   
▲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웹툰 <비질란테>가 인기를 끌고 있다. ⓒ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비질란테> 주인공 김지용은 어린 시절 동네 건달 손에 엄마를 잃은 범죄 피해자 가족이다. 가해자는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지만, 그의 범죄로 한 가정의 삶은 망가진다. 웹툰은 경찰이나 사법기관 등 공권력의 심판이 범죄자에게 오히려 관대한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피해자의 고통에 견주어 가해자 처벌은 너무 약하다는 모순된 현실에서 사회가 단죄하지 못한 범죄자를 처단하기 위해 비질란테가 등장한다. 독자들은 열광했다. 지난해 4월 27일 시작된 연재는 7월 현재까지 평점 9.99의 높은 점수로 조회 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웹툰 원작의 인기는 국내 최초로 드라마와 영화로 동시 제작되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흥행에 실패하면 위험부담이 클 수 있지만, 제작사는 소재와 캐릭터, 이야기 등을 종합해 시장의 반응을 가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웹툰 <비질란테> 주인공 김지용은 허술한 법을 대신해 자신만의 ‘정의’로 범죄자를 심판한다. ⓒ 네이버 웹툰

‘어디서 본 것 같은 허구’

독자들은 왜 이 웹툰에 열광하는 것일까? 웹툰 내용은 경찰대 학생 김지용이 허술한 법을 대신해 범죄자를 심판한다는 스토리텔링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데스노트>와 <배트맨 시리즈>처럼 한 개인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악인을 처단하는 ‘자경단’ 소재 물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개인적 차원의 처단이 용납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정의를 내세운다 해도 사적 폭력은 법을 대신할 수 없음을 독자들은 안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웹툰에 등장하는 범죄 에피소드에 빨려 들어간다. 지인의 집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뒤 11만5,000원을 훔쳐 달아나고, 개원 의사가 알고 보니 상습 성범죄자였으며, 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했지만 술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은 일들은 신문 사회면에서 봤음 직한 사건들이다. 한 누리꾼은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소재 고갈은 없을 것’이라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피해자 고통을 담아내지 못하는 사법 판결

이 웹툰을 본 독자들은 ‘현실반영 1,000%’라며 댓글을 통해 분노를 표했다. 독자 다수로부터 공분을 산 지점은 피해자의 고통을 담아내지 못한 우리 법의 현실이다. 범죄 자체도 문제지만, 불합리한 법원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다.

   
▲ 웹툰 <비질란테> 댓글. ⓒ 네이버 웹툰

“이 사건들은 모두 기사화한 사건들이다. 사람을 죽였는데 무슨 판결이 이래? 집행유예? 법은 가해자 편이다. 판사를 AI로 대체해야 한다. 이 웹툰을 판사가 보면 좋겠다.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쓰레기 수준이었으면 사람들이 이 웹툰에 열광할까? 라면을 훔쳐도 6개월이 나오는데, 사람을 죽여도 전관 변호사만 쓰면 집행유예다. 법이 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6월 24일 현재 60회까지 연재된 <비질란테> 댓글 창에는 매회 이런 내용으로 논의의 장이 열린다. 피해자 인권보다 가해자 인권에 더 관대해 보이는 사법체계에 관해 이 웹툰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한없이 약한 법원의 판결은 범죄 피해자에게 2차가해가 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정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독자들은 고민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다름’의 문제로 편입될 수 없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존재한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켜봐 온 독자들은 최근의 사회 분위기나 사회적 영향을 통해 피해자의 고통을 뒷전으로 미루는 듯한 법의 부조리를 고쳐야 한다는 필요성과 함께, 그럼에도 살인이 미화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웹툰에서 기자가 비질란테를 기사화하려고 편집국장을 설득하는 장면. ⓒ 네이버 웹툰

‘자경단’ 소재 물에 등장하는 ‘영웅’ 

논쟁의 여지가 존재함에도 자경단 소재의 다크 웹툰이 인기를 끄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권력 불신에서 온다. 대중문화에서 웹툰이나 영화 형식을 빌려 약한 공적 처벌로 야기된 분노를 사적 제재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소재다. 공적 처벌을 향한 분노가 형성됐을 때 인기를 끌고 등장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강호순, 김길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던 2010년 개봉해 관심을 끌었다.

이 웹툰에 등장하는 흉악범죄, 청소년 범죄, 음주사고 사례들은 거의 각색을 거치지 않은 실제 사건이다. 독자들은 허구적 서사 속에서나마 법을 대신해 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데 대리만족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 비질란테 같은 ‘영웅’이 등장하길 기대하는 이도 상당수다. 이런 현상은 우리 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피해자의 삶과 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대중의 실망과 분노를 보여준다. 독자들이 사적 제재를 상상하며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향한 울분을 댓글 창에서 토해내는 현실이 해소되어야 한다.


편집 : 양안선 PD

오수진 기자 rainmaker-sj@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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