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경쟁자’와 ‘적’

▲ 양안선 PD

경쟁자를 뜻하는 ‘라이벌’(rival)은 강을 뜻하는 라틴어 ‘리부스’(rivus)에서 나왔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관계란 뜻이다. 국경도 대개 강을 경계로 삼았다. 라이벌은 물을 더 끌어오기 위해 경쟁하지만, 홍수 같은 위기 때는 협력하는 사이다. 같은 강을 공유하니 공생할 수밖에 없다. 대립하더라도 공멸할 수 있기에 강에 독을 푸는 극단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발전하는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라이벌 관계다.

▲ 라이벌은 같은 강을 공유하며 경쟁하는 사이다. 보수와 진보는 적(enemy)이 아닌 경쟁자(rival) 관계다. ⓒ Pixabay

지킬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보수(保守)와 진보(進步)는 상대적인 운동성을 지닌다. 보수주의는 진보주의 프랑스혁명에 반대한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가 개념을 정립했다. 태생부터 상대적이다. 프랑스 혁명 초기 보수세력은 왕정체제를 지키려 했고, 진보세력은 시민혁명을 주도하며 왕정을 무너뜨리려 했다. 혁명 후기에 더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등장하자 온전한 공화주의자가 보수세력이 되었다. 시대에 따라 지키고 나아가려는 방향은 상반했지만 보수와 진보는 대항적으로 존재했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화국이 탄생했고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데서 나온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담론은 ‘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보수를 ‘수구꼴통’이라 하고, 진보를 ‘빨갱이’라 부르는 막말의 정치가 횡행한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달창’이라 비하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광주 재방문 의사를 밝힌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사이코패스 수준’이라 했다. 막말은 서로를 향한 혐오로 점철돼 있다. 상대의 존재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적’이 된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 정치를 한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여야 4당합의로 도출된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올라가자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에 나섰다. 선거법과 패스트트랙을 강행한 여당 탓을 하고, 민생처리법안을 막고 있다며 야당 탓을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180만 명,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에 33만명이 동의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국민들이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그 뒤로 석 달째 국회가 표류하다가 잠깐 개원했지만 추경예산은 또 밀렸다. 한일관계의 파탄이라는 ‘홍수’가 났는데도 공동대처를 할 생각은 없고 네 탓 공방에 열을 올린다.

이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보수가 있기에 진보가 있고, 진보가 있기에 보수가 존재한다. 같은 사회공동체를 공유하고 있는 라이벌 관계임을 인정하고 혐오라는 독을 푸는 일을 멈춰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영국 보수당의 성공 요인으로 유연성과 외연 확장을 꼽았다. 노동당은 자유당이나 노동당 정책을 수용했고, 노동계급을 위한 사회개혁도 적극 추진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좋은 것은 내 것으로 만드는 유연함이 200년 가까이 존속하는 정당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 정치세력이 본받아야 할 자세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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