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

▲ 양안선 PD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관찰 예능도, 먹방 예능도 아니다. 시골 할머니들의 한글학교가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가 됐다. 5월 19일 방송을 시작해 6월 9일 종영한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 이야기다. 한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문해학교’는 주로 다큐멘터리 소재였다. 2017년 방영된 SBS 스페셜 <할매 詩트콤: 시가 뭐고?>는 한글을 배워 시를 쓰는 할머니들 이야기였다. MBC <가시나들> 원작도 올 2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다. <가시나들>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소재를 예능 프로그램에 도입해 ‘따뜻한 예능’의 장을 열었다.

▲ 6월 9일 MBC 4부작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이 종영했다. ⓒ MBC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

‘인생은 진작 마스터했지만, 한글을 배우고 싶은 할머니들과

한글은 대략 마스터했지만, 인생을 배우고 싶은 선생님들

짝꿍들의 동고동락 이야기!’

이 프로그램은 한글을 깨치지 못한 할머니들의 문해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한글을 배워 나가는 할머니와, 한글은 알지만 인생을 아직 모르는 연예인 짝꿍이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할머니와 짝꿍들은 급훈을 같이 읽는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이란 급훈을 줄인 것이 프로그램명 <가시나들>이다. 할머니들의 인생에서 가시나들이란 호칭은 부정적인 의미였다. “가시나가 어딜”, “가시나가 이런 거 하면 되나”라는 식이었다. 프로그램 안에서 ‘가시나들’ 곧 할머니들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이며 따스한 시선을 받는다.

프로그램은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설렘을 다루고, 할머니들이 연예인 ‘애기’ 짝꿍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푸근함을 드러낸다. 권성민 담당 PD는 <노컷뉴스> 인터뷰에서 “인생의 어떤 과업은 다 끝났어도 이들에게는 또 하루가 있고, 한글 배우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이 있고, 매일 만나는 친구가 있고, 새롭게 만나는 인간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진행형인 할머니들 삶을 통한 세대 공감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할머니-연예인 짝꿍 ‘케미’ 속 세대 공감

프로그램은 문해학교 수업과 방과 후 할머니들의 일상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수업 시간과 일과중 할머니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은 프로그램의 웃음 포인트다. 갑작스레 발표에 나서게 된 할머니가 얼떨결에 “조졌네, 조졌어”라고 하자 교실은 웃음바다로 변한다. 집에 오자 박승자 할머니는 프로레슬링 시청 마니아 모습을 드러내고, TV 드라마 마니아 소판순 할머니는 드라마를 보며 “희빈마마 큰일 났네”를 연발한다. 할머니들의 모습은 따뜻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연예인 짝꿍들은 할머니들 공부를 돕는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돕기만 한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배울 때 할머니들은 개가 ‘공공’ 짖는다고 대답한다. 이에 다른 출연자들은 함양 개들은 공공 짖는다며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글이 서툰 중국 출신 아이돌 ‘우기’는 할머니와 같이 한글을 배워 나간다. 할머니와 연예인 짝꿍들의 케미가 프로그램 스토리텔링의 줄거리다.

할머니와 연예인 짝꿍은 가족 케미를 보여준다. 손자, 손녀 같은 연예인 짝꿍과 있을 때 할머니들의 진정성이 빛난다. “자자, 우리 애기”라며 연예인 짝꿍을 재우는 모습에서 그 옛날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챙기는 정감을 되새기게 만든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요즘 시대에 울림을 주는 장면이다.

할머니들은 촬영을 의식하지 않는다. 카메라 밖 제작진까지도 손자, 손녀처럼 대한다. 이남순 할머니는 연예인 짝꿍 ‘이브’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카메라 밖 제작진들에게 음료수를 갖다 주라는 것이다. 음료수를 못 받은 사람이 없는지 할머니는 살피고, 이브는 여러 차례 음료수를 갖다 준다. 제작진의 식사를 걱정하기까지 하는 할머니들의 정감 어린 모습과 연예인 짝꿍의 케미는 시청자들에게는 웃음과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문해학교에 공감할 수 있을까?

따뜻한 예능이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좋지 않다. 주말 예능임에도 닐슨코리아 시청률 2.8%를 기록하며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따뜻한 예능으로 시청자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뜻함만으로는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이 드러난다.

방송 프로그램은 시대와의 대화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은 편이다. 성인 기초 문해력 조사에서 국민의 문맹률은 1970년 7%였다. 33년 뒤 2008년에는 1.7%로 낮아졌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 성인은 읽고 쓸 수 있다. 과거 ‘어르신’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여자라는 이유 등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성인 문해교육을 꾸준히 추진해 온 교육부의 노력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1편으로 다루는 것과 예능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문해학교는 대중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소재가 되기 어렵다.

▲ <가시나들> 종영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정규편성을 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따뜻한 예능의 수요를 확인할 수 있다. ⓒ MBC

자극적인 예능이 휘몰아친다. 스타들이 대거 출동하고, 이들의 생활은 속속들이 까발려진다. 맛깔스러운 음식을 한입 가득 먹는 예능이 널려 있다. 이런 예능과 달리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힐링’의 감정을 얻는다. ‘따뜻한 예능’의 소구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골 할머니와 도시 손자‧손녀의 정감 있는 관계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시청률은 낮더라도 따뜻한 예능 하나쯤은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 남은 과제는 문해학교보다 지속성을 담보하는 소재 발굴이다.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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