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태형 기자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다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는 대결하다가도 협력하고, 전쟁위기까지 갔다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며 가다 서다를 반복해왔고, 그 사이사이 ‘대화’가 이어진다. 최근 2차 북미회담을 포함해 남한과 북한은 70년간 공존과 관련한 대화를 하기도 했지만, 그 성과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 개념으로 설명하면, ‘우리’라는 공동체로 상상하기도 했다가 그렇지 않기도 했다. 민족이란 말에는 같은 유전인자를 가진 이들의 공동체라는 종족적 개념이 들어 있다. 언어적 개념도 들어 있는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집합이란 것이다. 관혼상제 등 같은 제의 풍습을 가진 이들끼리 같은 무리로 인식한다는 문화인류학적 개념도 내포한다.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로 상상되는 단위’가 민족이라는 것이다.

▲ 최근 남북간 교류가 부침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련의 과정을 '상상된 공동체'로 나아가는 단계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상상된 공동체란 민족주의 연구가 베네딕트 앤더슨이 제시한 개념으로, 그는 민족을 '같은 공동체라고 상상된 범위'라고 정의한다. ⓒ pixabay

에릭 홉스봄은 프랑스혁명 이후부터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식했다고 한다. 한스 콘도 민족이라는 개념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정착된 개념이라고 했다. 홉스봄과 콘의 민족주의는 일정한 의식, 목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개념이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쪼개져 있던 독일을 통일할 목적으로 다른 나라에게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대외적으로 다른 민족과 ‘편가르기’를 분명히 했고, 대내적으로는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로 동원했다. 특히 콘의 민족주의 개념은 ‘배타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배타적인 관점으로 인식된 민족은 민족 간의 싸움을 낳았고, 1・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켰다.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는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한다. 민족이란 ‘같은 공동체라고 상상된 범위’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유럽에서만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앤더슨은 유럽 대륙 이외 다른 대륙의 사람들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는 존재라고 상상했다고 본다. “어느 대륙 사람이든 그들은 상대방이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상상했고, 그렇게 상상된 공동체의 범위를 민족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보았다.

앤더슨의 민족은 의도적인 개념이 아니다.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민족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라고 ‘느끼는’ 민족이다.

남한과 북한을 동질성을 가진 공동체로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 전에는 두 지역 간 왕래도 잦았다. 같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구한말을 거쳤다는 점에서 같은 역사적 공동체로 인식했다. 유전인자∙언어∙문화 모든 면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최근에 그렇게 상상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자본주의에 관한 둘의 인식 차이만 보더라도 공동체로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한 사람은 그나마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가지고 자본주의를 대한다면, 북한 사람은 ‘무조건 돈이 최고야’라는 식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언어도 이질적으로 변했다는 등, 70년이 흐르면서 남한과 북한은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기 힘들 만큼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통일 혹은 통일 방법론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고 믿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 베르나르는 자신의 마르지 않는 상상력은 열네 살 때부터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노트를 기록해 오면서 비롯됐다고 했다. 30년 이상 계속 써온 그 노트 속에는 스스로 떠올린 영감,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 발상과 관점을 뒤집게 하는 사건, 생각을 요구하는 수수께끼와 미스터리,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해석 등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상된 공동체로 여기기에는 이질적 요소도 있지만, 서로 대화가 오가면 오갈수록, 대화 과정이 기록과 문서로 차곡차곡 쌓이면 쌓일수록 남북은 상상된 공동체로 진전될 것이다. 그것이 연방제 국가이든 통일 국가이든 멋진 작품이 나올 것이란 말이다. 실패와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판문점선언, 싱가포르선언과 같은 많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길 기원한다. 서로를 상정한 대화도 많아지길 염원한다. ‘오래된 상상’으로 모든 이들이 원하는 결론으로 남북 화합이 이뤄질 그때까지.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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