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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영혼의 가압장

기사승인 2019.07.07  17: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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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② 윤동주문학관

서울 종로구의 간판에는 알파벳보다 한글이 많다. 'Starbucks' 대신 '스타벅스', 'Innisfree' 대신 '이니스프리'라고 적혀 있다. 그대로 옮겨 적은 것뿐인데도 괜히 예뻐 보인다. 사실 윤동주와 종로는 인연이 길지 않다. 연희전문 4학년 시절, 종로구 누상동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넉 달 가량 산 것이 전부다. 하지만 식민지 본국 일본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다 요절한 청년 시인 윤동주의 문학관이 한글이 넘치는 이곳, 종로에 있는 것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언덕을 오르면 기다리는 담백한 문학관

   
▲ 윤동주문학관 앞에 점으로 새겨놓은 시인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 유연지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온다.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 가는 자하문 고개에 내려서 왼쪽으로 가면 회색 빛 윤동주문학관이 보인다. 꽤 가파른 언덕을 올라온 덕에 문학관에서는 청운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남산 서울타워와 고층 빌딩도 보여서 나름대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버려져 있던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는 이 멋진 풍경과 어우러져 우리 영혼을 맑게 해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숲 속에 숨겨진 공간처럼, 화려하지 않고 고즈넉한 문학관 앞에 선다. 그의 사진을 점으로 새겨놓은 건물은 그의 시처럼 담백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대표작인 서시(序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밤에 이곳을 찾으면 정말 ‘별이 바람에 스치울’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본다. 전시장은 다섯 공간으로 나뉘어있다. 시인채(제1전시실), 열린 우물(제2전시실), 닫힌 우물(제3전시실), 별뜨락(카페), 시인의 언덕(산책로).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간 윤동주'가 보인다. 윤동주 문학관은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출생한 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그의 짧은 일생이 나열되어 있다. 사진자료와 함께 전시된 친필원고 영인본에서 섬세한 그의 감정이 묻어 나온다.

내가 들여다보는, 나를 들여다보는 하늘

   
▲ 제1전시실에 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2전시실이 나온다. 물과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유연지

제2전시실로 들어가본다. 두꺼운 철문을 열면 초록색 풀이 보이고 내리막길이 있다. 벽면에 남은 물의 흔적을 보니 첫번째 물탱크에 들어선 것이 실감이 난다. 높은 산지에 있어 상수도 수압이 낮았던 청운동 일대. 수압이 낮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1974년 청운동 뒷산 꼭대기에 수도가압장이 세워졌다. 가압시설로 끌어올린 물을 탱크에 저장했다가 청운동 주택들에 급수를 하는 시설이었다. 가압장을 설치하고 35년이 지난 뒤인 2009년에 아파트 철거 등으로 청운 수도가압장의 본래 역할은 끝났다.

버려져 있던 가압장은 2010년 말,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서 발견된 우물 목판과 모교 의자, 친필 원고 영인본을 전시품으로 모아 임시로 문학관이 됐다. 이후 가압장 뒤편에 있던 두 물탱크를 발견하고 그곳을 추가로 개조해 정식으로 윤동주문학관을 열었다. 지금은 가압장이 제1전시실, 물탱크 2개가 각각 제2, 제3 전시실로 쓰인다.

   
▲ 제2전시실에서 올려다 본 하늘. ⓒ 유연지

'열린 우물'이라는 이름처럼 제2전시실의 하늘은 뻥 뚫려있다. 지붕을 걷어낸 물탱크다. 위를 올려다보며 흐르는 구름과 하늘, 파아란 바람을 마주하게 한 시인의 우물을 상상했다. 자신에게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던 그가, 우물에 다가섰다가 멀어졌다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구석에 앉아 한참 하늘을 보았다.

물탱크의 깊고 어두움을 그대로 둔 '닫힌 우물'

   
▲ 영상을 상영중인 제3전시실, '닫힌 우물'. ⓒ 유연지

무섭다. 컴컴하다. 습하다. 제2전시실의 길을 따라 제3전시실로 들어선 순간 드는 느낌들이다. 윤동주문학관 설계를 맡은 아뜰리에 리옹 이소진 소장은 오싹한 이 공간을 '보물'에 비유했다. 하지만 물 대신 어둠이 가득 찬 이곳은 시인이 짧은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형무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크린도 없이 갈색 물탱크 벽에 11분짜리 영상이 상영된다. 사람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서 잠시 영상 속 시인의 마음속으로 이입된다.

물탱크 사다리가 있었던 작은 사각형 구멍이 '닫힌 우물'인 제3전시실에 빛을 들여오는 유일한 통로다. '하늘' '바람' '별'이 자주 등장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는 '천체 미학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유고시집의 제목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제3전시실에 나 있는 물탱크의 작은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느껴지고 별이 비추이고 시가 흐른다.

   
▲ 제3전시실에는 사다리의 흔적을 타고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이 전부다. ⓒ 유연지

구멍이 작아 하늘로 연결된 빛의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하다. 바람과 별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형무소 좁은 감방 창으로 밖을 바라 봤을 시인처럼 어딘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시인의 일생과 그의 시 세계를 보여주는 영상이 끝나고 다시 제2전시관으로 나와 (아까는 내리막길이었던) 오르막길을 걸었다. 아까와는 달리 그 길이 마치 감옥으로 가는 길처럼 힘겹게 느껴진다.

시인의 언덕을 오르며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빌어 보라

   
▲ 시인의 언덕에 오르다 바라본 윤동주문학관. 나무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신비스럽다. ⓒ 유연지

다소 무거운 기분을 안고 시인의 언덕으로 오른다. 별뜨락 카페를 지나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열린 우물'이 한눈에 보인다. 위에서 보니 영락없는 물탱크 모습이다. 잠시 과거의 모습을 떠올려 보다 다시 산길을 올랐다. 산책로 꼭대기에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파아란 바람이 보이는 언덕 뒤편에는 인왕산이 보인다. 돌산과 소나무는 시인의 꿋꿋함과 비장함을 떠오르게 한다.

   
 
   
▲ 시인의 언덕에 있는 시비(위).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새겨져 있다(아래). ⓒ 유연지

막히고 맺힌 곳을 풀어 주는 영혼의 가압장

다시 내려와서 '윤동주 문학관' 앞에 섰다. 문학관의 스토리텔링 회사 '브랜드스토리'는 이 건물 자체가 우물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아무 때나 와서 물을 길어가고 목도 축이며 쉴 수 있고, 자기성찰도 하는 그런 공간. 실제로 윤동주문학관 안은 소박했지만 사람들의 발길과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청운 수도가압장은 이제 더 이상 물을 보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영혼의 물을 흘려 보내는 문학관으로 바뀌었다. 가압장은 느려진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무언가에 막히고 맺혀서 생각이 흐르지 않고 답답해질 때, 이곳을 찾아 영혼의 가압을 통해 막힌 곳과 맺힌 것을 뚫고 풀어 보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를 찾으며 지치고 힘든 영혼을 달래 보자.

   
▲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보이는 풍경. 마음을 다스리기 좋다. ⓒ 유연지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양안선 PD

유연지 PD ygyoo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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