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갈 때마다 실망 커지는 전주한옥마을

이번엔 다를까? 1년 전, 기대에 부풀어 전주를 찾았다. SNS에는 전주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인증샷’이 넘쳐났다.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과 여행사 상품 소개 글에도 전주는 ‘맛집’이 즐비한 관광 1번지였다. 그런 유혹보다 단연 마음을 사로잡은 한마디는 ‘슬로시티 전주’였다. 특히 곡선미를 이루는 까만 기와 지붕과, 나무 결이며 색깔이 살아있는 한옥들을 보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았다.

전주한옥마을은 700여채 한옥과 전통 체험 등 한국 고유 문화를 보존하고 있어 2010년 ‘국제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됐다. ‘느리게’를 주창하는 곳에서 낯선 풍경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했다. 무엇이든 ‘빨리’ 변하고 획일화하는 대도시를 잠깐 벗어난 이유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을 맞닥뜨렸다. 전국에 유행하는 먹거리와 즐길 거리가 한옥마을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영혼 없는 슬로시티는 여행자의 설렘을 꺼뜨렸다.

▲ 전주한옥마을은 700여채 한옥과 400년 전통의 향교, 경기전, 오목대 등 조선왕조 유적이 밀집해있다. ⓒ 최유진

전주 사람은 안 가는 ‘전주한옥마을’

“한옥마을로는 사실 안 가죠. 그냥 관광객을 위한 지역이에요. 옛날엔 진짜 사람 살던 곳인데, 10여년 전부터 활성화하면서 상가로 다 바뀌게 됐죠. 골목골목 주민들이 살던 공간까지 다 개발해 상점이 생겼어요. 사실 거기 있는 물건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우리만의 특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쉽죠. 외지인들이 한 번은 와도 또 오진 않을 거 같아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상인 김모(36) 씨는 “한옥마을 경기전 앞 큰 도로를 차지한 상점들에서 파는 게 대부분 서울 명동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며 “자본주의에 물드는 걸 어쩔 수는 없지만 난개발된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전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인데, 비교적 임대료가 싼 시장 안 건물에 공방을 차렸다. 한옥마을 내 상가 임대료는 시내 중심부와 거의 같다고 한다. 

▲ 전주 남부시장 2층의 청년몰은 지역 소상공인들이 입점해있다. ‘황금연휴’ 중인 5월 6일 청년몰 상점가는 한옥마을에 견주어 한적한 편이었다. ⓒ 최유진

실제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6년새 임대료는 2배, 땅값은 10배 넘게 오른 곳도 있다. 지난해 전북 개별공시지가 평균은 3.3㎡당 4만4781원이다. 그중 전주 한옥마을을 낀 완산구는 평균 59만7800원으로 전북에서 가장 비쌌다. 올해 전주시 표준지 중 최고 지가는 한옥마을에서 가까운 완산구 고사동 72-6번지(금강제화)로 695만원/㎡이며, 최저 지가는 완산구 색장동 산 153(대성동 남동쪽 임야)로 780원/㎡이다. 전주시에 따르면 한옥마을 상업시설은 총 575개소로, 숙박시설 203곳과 식음료 관련 시설 183곳, 판매·대여시설 189곳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2010년, 상업시설이 총 100여곳이던 때보다 6배 가량 늘었다. 건축물이 총 947동인 것을 감안하면, 두 집 중 하나가 상점인 셈이다.

‘먹거리 다양성’ 실종, 로컬푸드는 어디에 

▲ 전주한옥마을에서는 꼬치류를 비롯해 유명 외국 간식인 탕후루(윗줄), 지역 특색을 살린 전주비빔빵과 대표 기념품 전주초코파이(아랫줄)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 최유진

“거리 음식들이 별다른 특색은 없는 것 같아요, 한옥마을에는. 그래도 남부시장 피순대는 서울에 없는 거잖아요. 꼭 먹어보려고 하는데… 비빔밥은 사실 좀 비싼 것 같아요.”

‘황금연휴’ 기간이던 5월 6일 다시 가본 한옥마을에서 초코파이를 구매한 이연우(28)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전주국제영화제 관람 겸 관광지들을 구경하려고 서울에서 왔다. 그는 “특별히 전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한옥마을에 많진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옥마을에서 거리 음식으로 주로 판매되는 닭꼬치, 문어꼬치, 스테이크 등은 원재료가 수입산인 경우가 많다. 이는 국제슬로시티연맹의 평가 요인 중 ‘농업, 관광 및 전통예술 보호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GMO(유전자변형식품)을 지양하고 농업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로컬푸드’(지역 먹거리)를 지향해야 한다. 또 ‘파트너십’을 평가하는 데도 친환경 슬로푸드와 얼마나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본다. 이에 부합하는 음식들이 얼마나 한옥마을에서 판매되고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과거에도 한옥마을에서 슬로시티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음식들이 판매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전주시는 지난 2011년 '(한식 외에) 일식·중식·양식 등 외국계 음식을 조리·판매하는 음식점을 열 수 없다'는 규정을 포함한 '전통문화구역 지구단위계획'을 마련했다.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등도 새로 들어설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거리음식에 관해서는 꼬치구이가 연기를 내뿜는 문제를 지적하긴 했지만, 특별히 먹거리 다양성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 전주 남부시장의 한 피순대 전문점 앞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 최유진

“시민과 농민, 나아가 지역선순환경제와 일자리 등 모두를 이롭게 하는 지역먹거리 시스템을 전주푸드플랜으로 만들어갑니다. 이른바 ‘건강’ ‘환경’ ‘사회’를 하나로 묶는 먹거리 전략입니다.”

2015년 전주시는 전국 최초로 대도시 먹거리 전략 '전주푸드2025플랜'을 설계했다. 당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주의 먹거리 소비시장은 연간 1조원 정도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주시내 농민 2만5000여명이 생산한 농축산물 1000억원 중 300억~500억원(약 5%) 가량만 지역 내에서 소비됐다. 이에 지역 먹거리 공급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려, 연 2000억원 규모의 지역 먹거리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6대 전략 과제 중 하나로 ‘시민 먹거리 접근성 보장’을 제시했는데, 하부 정책 과제로 ‘지역상권 연계협력’을 뒀다. 그 대상을 ‘전통시장, 향토마트, 지역음식점 등’이라고 표기했는데, 구체적으로 한옥마을 관광상권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있는 한 보리밥 전문점에서는 ‘셀프 배식’으로 5천원짜리 보리밥을 손님들에게 내고 있다. ⓒ 최유진

한수경(43) 씨는 청년몰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리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한 씨는 “한옥마을이 많이 변한 만큼 월세도 엄청 비싸졌다”며 “워낙 붐비는 관광지가 되다 보니 밥값이며 물가가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 부담을 줄이고 싼 가격에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려고 ‘셀프 배식’을 생각해냈다. 실상 서비스도 ‘비용’에서 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직접 짠 참기름과 국내산 쌀, 야채를 사용하는 등 음식만큼은 고집하는 부분이 있다. 

유유자적 ‘보행권’ 침해하는 탈것들

▲ 전주한옥마을에는 바이크, 보드 등 각종 전동 이동수단을 대여하는 사업장이 여러 곳 운영되고 있다. ⓒ 최유진
▲ 전주한옥마을에서 사람들이 전동 휠을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다. ⓒ 최유진

“전동 보드가 유행인 것은 알지만 이곳에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람들 사이로 가로질러 다니면 위험하기도 하고… 이용하더라도 도로는 잘 구별해서 다니면 좋겠어요.”

한옥마을 물레방아 조형물 앞에서 박승희(28) 씨를 만났다. 박 씨는 경기도 부천에서 1박 2일 전주 여행을 왔다. 잠시 멈춰서 있던 그는 “전동 이동수단들이 보행권을 침해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말하는 중에도 돌 벽으로 구분된 인도임에도 전동 보드를 탄 어린이가 쌩 하고 지나갔다.

한옥마을 입구로 가장 사람이 붐비는 전동성당 앞에서부터 천막 친 전동 바이크가 눈에 띄었다. 4인 가족이 탄 바이크가 사람들을 가로질러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한옥마을 일대는 ‘차 없는 거리’로 차량 출입을 막고 있지만, 전동 이동 수단도 사람과 충돌한다면 중경상을 일으킬 수 있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자전거도로 등을 고려한 ‘인프라 정책’도 슬로시티의 평가 항목으로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전주 한옥마을 일대는 도로 교통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프라에 문제가 있다. 무질서한 전동 이동 수단은 슬로시티가 지향하는 ‘보행권’을 침해한다.  

지난 4월 한옥마을 주민과 상인, 자생단체 회원 등 200여명은 경기전 광장에서 '품격 있는 한옥마을 만들기'를 결의했다. 청결·질서·친절의 생활화, 불법 광고물·과도한 마네킹 전시 등 금지, 건물주와 세입자가 만족하는 임대문화 조성 등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10일 전주시가 '2019 국제슬로시티 어워드'에서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슬로시티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도시에게 주어지는 최고상인 '오렌지 달팽이상(Chiocciola Orange 2019)'을 수상했다. 구도심에 25년간 흉물로 방치된 폐산업시설을 재생한 '팔복예술공장', 조선왕조 역사를 알린 도시공간, 주민들이 함께 한 문화 콘텐츠가 우수 평가를 받았다. 

전주시가지 전체가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되기까지 ‘전주 한옥마을’은 큰 원동력이 돼줬다. 하지만 일부 시민은 빠르게 변해버린 그곳 풍경에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는다. 느림의 미학을 기대하며 멀리서 온 여행자들마저도 허무한 발길을 돌린다. 차라리 ‘슬로시티’를 자처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찜찜한 마음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

편집 : 박동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